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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의 숲

황제펭귄의 글다방

by 황펭

몽환의 숲


초등학교 3학년 가창 시험 날, 내가 노래를 부르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곤 3초 뒤, “깔깔깔” 웃음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어리둥절해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은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쉬는 시간에 내 자리로 온 한 아이가 “야, 너 노래 부를 때 음은 안 높아지고 목소리만 커져!”라고 말했다. 아, 그 순간 나는 음치인 걸 깨달았다.


노래 부르는 걸 피하게 된 건 이때부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상황은 피할 수가 없었다. 우선 가창 시험은 1년에 한 번은 꼭 있었다. ‘빵점을 받아도 되니 시험을 보지 않겠다.’라고 말해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중3 땐 음악 선생님이 가창 시험이 끝난 후 나를 지목하셨다. 그러고선 “얘는 정말 용기가 대단한 아이야.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니. 박수!”라고 말하셨다. 용기와 점수는 다른 걸까. 박수는 받았지만 내 점수는 최하점인 10점이었다.


또 피할 수 없는 게 있었으니 바로 노래방이다. 중학생이 되자 노래방은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가는 곳이었다. 나만 내빼기도 어려웠다. 그 나이 때가 그렇듯 무리에서 이탈하는 걸 겁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습하기 시작한 게 랩이었다. 랩은 내가 판단하기론 음 변화가 가장 적은 장르였다. 랩도 너무 빠른 건 연습해도 교과서를 빨리 읽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적절한 속도의 곡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것이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이었다. 매일 몽환의 숲을 틀어놓고 집에서 연습했다. 언니가 시끄럽다고 스피커를 내던질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연습하던 어느 날, 노래방에 가게 됐다.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왔다. ‘아-드디어 나도 노래방에서 한 곡 정도는 분위기를 깨지 않고 부를 수 있겠군.’ 싶었다. 친구들이 너도 빨리 한 곡이라도 부르라고 채근할 때쯤 곡을 예약하려 리모컨을 짚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몽환의 숲이었다. 다른 친구가 몽환의 숲을 이미 예약했던 것이었다. 이런! 더군다나 엄청 잘 불렀다. 나는 결국 집에서 급히 찾는다며 노래방을 빠져나왔다. 다른 노래를 부를 자신도 없고 기운도 빠졌다. 누군가 이미 잘 부른 몽환의 숲은 이제 내 노래가 될 수 없었다. 내겐 즐기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필요했던 게 아니라 아무런 시선도 받지 않은 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필요했던 탓이다.


내가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게 된 건 21살 때다. 우연히 내가 노래 부르는 걸 녹음해서 듣게 됐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음성파일을 들은 친구도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문득 노래로 감동을 주긴 힘들어도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소화할 수도 없는 노래를 잘 부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콤플렉스 탈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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