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국인이죠
블로그 운영을 꽤나 오래 했지만 일회성으로 소비하게 되는 단순한 정보성 글을 포스팅한 게 대부분이라 내 얘기를 적어보려니 조금은 어색하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특이한 내 경험과 일상을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용기 내어 시작해 보기로 했다.
소제목을 비롯해 제목에만 4개국이 들어갔는데 어느 나라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풀어야 할지 조금 고민을 해봤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건 기본값이니까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치고, 남은 3개국 중 나와 가장 관련이 깊은 건 아무래도 중국이 아닐까. 어린 시절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대학도 중문과를 나왔다. 중국에서 생활한 건 약 3년 정도? 중국에서 보낸 학창 시절 에피소드도 몇 개 있는 편인데 이건 나중에 천천히 얘기해 보는 걸로. 마지막으로 중국 본토에 다녀온 지는 10년이 지났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앞으로도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직 가보지 못한 여러 나라를 하나씩 다녀보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잠꼬대도 중국어로 할 정도로 중국어가 편하고 익숙한 사람이다. 중국어와 관련된 다양한 일도 해봤고, 내가 지금까지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중국어 덕분이다. 중국어를 구사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게 되자 영어에 대한 욕심이 생겼지만, 영어는 이상하게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더 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엔 나 자신과 타협하게 된다. 그냥 놀러 가서 의사소통하는데 불편함만 없으면 되지 뭐! 라고. 물론 아직도 살짝 미련이 남아 괜스레 영어공부 어플도 다운 받아보고 인스타에서 다양한 계정들을 팔로해서 보고 있는 중이지만.
그리고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항상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의 좌절 끝에 20대 끝자락에 베트남에 오게 되었고, 대역병의 시기동안 잠시 한국에 들어갔다가 얼마 전 다시 돌아왔다. 베트남에서는 꽉 채운 3년을 살았고 이제 4년 차에 접어든다. 그런데 내가 할 줄 아는 베트남어는 간단한 인사말과 얼마예요?, 직진이요, 빨리요, 그리고 숫자가 전부이다. 여기에서 알게 된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베트남어를 배우는데, 나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사실 베트남어와 중국어에 비슷한 점이 많아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더 배우기가 쉽다고 하는데 알면서도 하기가 싫었다. 그리고 베트남어를 못해도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기에 더 그렇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곳에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떠나기 전까지도 배울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배울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충분하고, 배워두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난…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먹지 못했고, 결국 내 마음은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된다.
베트남어를 애써 외면하고 있던 중 나의 마음에 꽂힌 언어는 바로 태국어! ‘사왓디카. 찬 츠 젠이 낙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젠이입니다.‘
요즘 화상과외를 통해 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너무 어렵지만 그만큼 정말 재미있다. 4년을 베트남에서 살아놓고, 이제 고작 배운 지 2주 되는 태국어로 할 줄 아는 말이 더 많다.
각 나라에서 대역병의 심각성을 조금씩 느끼고 있던 그때, 베트남은 전면 락다운이 되어 집 앞 마트도 제대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집에서 넷플릭스 보기가 다였고 그러던 중 한창 유행이던 ‘보이프렌즈’라는 태국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남x남 커플의 얘기인데 너무 오글거리면서도 웃겼던 데다, 주인공들이 잘생겨서 끝까지 다 봤다. (참고로 이 둘은 나중에 태국판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면서 태국어가 굉장히 귀엽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사왓디카, 코쿤카가 내가 알고 있던 태국어의 전부였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이 넘치는 언어였다. 그렇게 이틀 만에 드라마 정주행을 끝낸 뒤 이렇게 생각했다.
‘방콕에 가서 어학원을 다녀야겠어!’
당시의 나는 꽤나 진지해서 방콕의 여러 어학원과 원룸까지도 알아봤었다. 몇 달만 더 일하면 은행 잔고가 내가 목표했던 금액에 도달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 금액만 달성하면 한국으로 돌아가 한두 달 가족과 지내면서 계획을 실천으로 옮길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행길이 전부 막혀버렸고, 방콕은 커녕 한국도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자 마지막 전세기를 타고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기약 없이 시작된 나의 백수 생활. 그리고 목표금액 달성은 커녕 잔고만 축내며 무한 휴식시간에 들어갔다. 결국 방콕 생활에 대한 계획은 잠정 보류.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2023년 3박 4일 일정으로 방콕 여행을 가게 되었다. 이게 나의 첫 태국 방문이었고, 카오산로드에 들어서는 순간 내 심장이 말했다.
그래, 여기야. 방콕에서 살아보자던 그 계획, 다시 짜보자고!
이게 바로 태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좀 더 구체화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하고, 언제 어떤 식으로 태국에 갈지, 거기 가서는 어떻게 돈을 벌지 등등 생각할 것도 많고 모아야 할 돈도 많지만 (숙연) 서른 중반이 되었는데도 배움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요즘의 나는 정말 기쁘다. 사실 삼십 대 초반에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와서 뭘 새로 배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런데 많은 인생선배님들이 말씀하시더라. 배움에 늦음이란 없다고. 그래서 시작했고, 역시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정말 하고 싶은 게 있고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시작해 보라고.
태국어 복습할 때 머리도 쥐어뜯고 내가 이걸 왜 시작했지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실은 정말 즐겁다. 그럼 그것만으로 충분한 거 아닐까? 쓰다 보니 길어졌지만, 이게 바로 내가 <베트남에 살면서 태국어를 배우는 중국어전공의 한국인>이 되어버린 이유이다.
그리고 태국어를 배우는 것과 더불어 한 가지 다짐을 또 하게 되었는데, 바로 시간과 통장잔고가 허락하는 한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는 것!
나는 전문적인 여행가도 아니고, 여행을 제대로 기록할 수 있는 영상촬영 스킬이나 글쓰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앞으로 펼쳐질 나의 여행기는 물론, 그간 겪어온 여러 에피소드를 이곳에 하나둘 정리해 봐야지. 2023년이 되어 내가 벌인 일이 한두 개가 아닌데.. 뭐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싶다. 지금 당장은 매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내가 되길 바라며 첫 글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