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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이 Mar 05. 2023

헤드헌터에게 온 메일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



얼마 전 메일함을 열었다가 헤드헌터에게 메일이 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의 구직사이트에서는 이력서를 모두 내린 걸로 기억하는데 뜬금없이 메일이 와 있어서 고민해 보니 아마도 링크드인을 통해 연락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이후 자세한 업무 내용이나 조건들에 대해 메일을 한 번 더 주고받았고, 직급이나 연봉이 생각보다 높아서 솔깃했다. 게다가 내가 한 번쯤 일해보고 싶던 분야라 좀 더 오랜 시간의 고민을 거쳤으나, 고사의 뜻을 전하려 한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서 소일거리나 하며 쉬던 작년, 갑자기 해당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 열심히 CV를 만들고, 지원도 해보았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여행이나 다니던 중 돌고 돌아 다시 여기 오게 된 것이다. 이제야 마음을 다잡고 잘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연락이 오다니? 하지만 나는 변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다 취미면 몰라도, 일에 관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하고 싶다. 제안받은 일은 내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 선뜻 도전할 엄두가 안 난다. 해당 분야는 나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 싶어 마음을 비웠고, 베트남을 떠난 이후의 계획까지 조금씩 세워두고 있는 과정에서 갑자기 온 이 오퍼메일은 나를 심란하게만 만들 뿐이다.


그래도 내 이력서를 보고 흥미를 가져준다니 고맙고, 덕분에 자신감도 한 번 더 충전했다.




나는 다양한 분야의 일을 경험해 봤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대학 동기들이 다 안정적인 회사에 취업하고 결혼하는 모습을 보며 불안하기도 했고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특히나 우리 언니는 해외로 최종면접을 보러 가는 나의 비행기 티켓 값 때문에 적금까지 깼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거나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괜스레 혼자 눈치가 보여 방에 틀어박혀 맞춘 천 피스 퍼즐만 여러 개다.


그 시간을 거치며 내가 깨달은 점이 있다.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고 우울할 때가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해 보고 또 나를 즐겁게 만드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거창할 필요는 없고, 나처럼 퍼즐을 맞추거나 연예인을 좋아하는 일도 상관없다. 나는 실제로 '덕질'을 하면서 통번역 실력을 키웠고, 그 과정에서 친해진 사람에게 일을 소개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지난날의 많은 기쁨, 슬픔, 고민과 번뇌 등이 쌓여 지금의 '나'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는 이후 겪게 될 다양한 일과, 만나게 될 사람들로 인해 또 변하게 될 것이다.

삼십 대 중반이 되었어도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사실 뭐 그런 건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오늘의 내가,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헤드헌터에게 받은 메일 하나 가지고 어쩌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한동안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세스코의 삼수벌레 관련 답변이 있지 않나

'저장식품 해충 중에 화랑곡나방이 있습니다. 요 녀석은 환경조건(먹이, 온도 등)에 따라 유충기간을 2주에서 300일까지 조절이 가능하며 성충으로 우화한 이후에는 다른 녀석들과 동일한 수명을 지닙니다. 지금은 남들보다 조금 늦을 수 있지만 그 이후는 동일하거나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두에게는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있다. 다만 그 시점이 각기 다른 것일 뿐.

그리고 약간의 위기와 고난이 있어야 하이라이트가 좀 더 빛나보이겠지.

우기가 지나고 건기가 오듯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고난 뒤에는 행복이  ٩(๑❛ᴗ❛๑)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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