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브문 Mar 27. 2023

단풍 나라로의 도피

대학생 3학년, 나도 이젠 도망쳐야겠다.

"걔도 이번에 외국 나간다잖아. 교환학생으로."


하필 내가 외국어 특화 대학교를 다녀서일까? 2학년 2학기 정도 되니 웬만한 선배들부터 동기들까지 다 한 번씩 외국 살이를 하러 떠났다. 아님 어쩌면 이 나이 정도 되면 다들 외국에 나갔다 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친구들 또는 그 건너의 사람들의 외국 나간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는 걸 보니.


원해서 온 대학인지, 아니면 가야 해서 온 대학인지 모르겠었으나, 어쨌든 들어와 공부를 하다 보니 3학년을 앞두고 있었다. 특별한 꿈이 없었다. 대학교에서 뭘 배웠는지도 시험을 치고 나면 다 까먹어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 나, 3학년이 되어도 되는 걸까? 문득 겁이 났다. 3학년 때부터는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던데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고 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이 대학의 시간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2018년 1월,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남들이 다 외국 나간다는 게 부러워 혹시 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입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워홀을 진짜로 준비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또 흘려보냈다. 3학년 2학기를 앞두고 있던 나는 어느 날 무심코 카페 앱을 열었다. 예전에 가입했던 워홀 카페가 눈에 띄었다. 외국 살이에 대한 욕망이 계속 커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학 생활에서의 도피를 이상 미룰 없었다고 느꼈때문일까. 카페에 들어가 워홀 신청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2018년 선발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작년 2017년 11월부터 시작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거의 끝나간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2019년 선발할 때 넣어야겠네. 그때의 나는 4학년이겠지. 그런데, 꼭 그렇게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나? 2018년 선발에 한 번 지원하고, 떨어지면 2019년 선발에 또 지원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면 대학생일 때 지원할 기회가 2번이나 있는 거잖아.


라고 생각하자마자 (진짜 거짓말 안 하고) 가슴이 뛰었다. 이거, 내가 진짜 해도 되는 건가? 싶으면서도 여권을 찾기 시작했다. 여권 만료 날짜는 2018년 5월이었다.


순간 김이 팍 식었다. 여권 새로 발급받아야 하네, 아 광복절까지 껴서 다음 주에나 나오겠네. 매주 인비테이션 승인을 하니까, 이번 주에 안 되면 거의 안 된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여권 나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생각이 많아졌다. 카페 캐나다이미 있는 사람들의 글을 보았다. 재미있어 보였다. 정말 한참을 들여다본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신청 홈페이지에 계정을 만들고, 여권 사진을 새로 찍고, 새 여권 발급 신청을 하러 갔다.




2018년 8월 20일, 가평 여행을 갔다 와서 피곤한 몸이었지만 바로 여권을 수령하러 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짐을 풀지도 않고 캐나다 워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프로파일을 제출했다. 그 이후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메일을 확인했고 언제쯤 연락이 오나 기다렸는데... 일주일 만인 8월 27일 인비테이션(Invitation)도착했다. 순간 너무 놀라서 속으로 소리를 왁! 질렀다. 왜냐하면 보통은 인비테이션이 오는 데에 몇 달이 걸리는 게 기본이고, 아예 인비테이션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청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넣었던 거기 때문에 솔직히 안 될 줄 알았는데, 일주일 만에 인비테이션이 오다니!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아무나 자국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 신체검사 내역과 범죄 이력 조회 내역 등의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인비테이션을 받은 바로 다음 날인 8월 28일, 나는 병원에서 VISA 건강검진을 받았고 가까운 경찰서에서 범죄를 저지사실이 없다는 서류를 발급받았다. 그 외 영문 이력서를 작성하고 캐나다 워홀용 증명사진과 여권 사본, 가족 관계 증명서 등도 함께 인터넷으로 제출했다. 이런 서류 준비는 오래 걸릴수록 머리만 더 아파질 뿐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빨리 끝내버렸다.


나는 무사히 붙을 수 있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메일함과 홈페이지를 들여다본 것 같다. 인비테이션을 받으면 거의 됐다고 봐야 하지만, 혹시나 최종에서 떨어질까 봐, 그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았기에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최초 지원 후 18일 뒤인 2018년 9월 7일 나는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최종 합격을 했다.




드디어, 나도 이제 대학 생활에서 도망칠 수 있게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