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지상직 5년차, 영어코디가 되다.

아이를 낳으니 이제야현실

by Foreen 포린

애초에 내가 영어프로그램의 코디가 된 길은 아주 우연적이다.

공항에서 지상직으로 5년을 일했다. 공항에서 처음 면접볼때, 차장님이 했던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는 다 '백조'야. 겉으론 화려하지만 밑에선 미친듯이 움직여야해" 일을 해보니 이 말은 진실이었다. 티켓을 발권해주는 카운터에서부터 게이트업무, 비행기안에서 일하는 캐빈잡까지 모두 섭렵하니 결국 duty잡을 맡은 5년차 공항직원이 되어있었다. 초반 공항에서의 나의 생활은 버티기였다. 이상한 선배들과 이상한 손님들사이에서도 무단히도 섞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버텼다. 그 때는 그렇게 일해야만 하는 줄 알았으며 으레 말하는 '인생은 원래 어려워'가 당연한 줄 알았기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는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돈이라도 많이 줬으면 지금 이렇게 화가나진 않을텐데 ...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최저시급이었으며 오버타임을 했기때문에 그래도 생활이 가능한 수준에 돈을 받았던 것 같다. 매일 새벽비행기 띄우려고 새벽 5시20분 첫차틀 타고 출근했던 나의 공항생활은 코로나로 공항이 stop되면서 그제서야 나도 스스로 stop하고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예쁜 유니폼입고 공항패스차고 다니는 모습이 멋있어보였는지 일하면서 '언니처럼 되려면 무슨 공부해야해요?'라는 질문도 참 많이 받았다. 그래서였나? 그 때는 공항을 떠나면 안된다는 생각을하며 살았다.


그러나 아무도 겪어보지 않았던 재앙이왔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코.로.나'

코로나로 공항이 멈췄다. 비행기도 멈췄다. 역시나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무급휴직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는 조치이긴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사실 참 좋았다. 지쳐있는 나에게 이 휴직은 무급이라도 기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쉬면서 많은 생각을 가졌다. 새벽근무, 적은 월급, 진상손님 등등,,,, 마치 마법에 걸렸던 내가 깨어난 듯 잡코리아를 뒤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공항이 아닌 다른 직군으로-


그러나 이제는 이직의 기준을 정했다.

1) 집에서 가까워야한다. (통근시간 30분이내)

2) 무조건 지금 공항보다 돈을 많이 줘야한다.

3) 워라벨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세개가 다 가능한 직군 한 유명영어프로그램의 코디로 지원하게 되었다.

1)집에서 차로 10분거리

2)공항보다 돈 많이 줌.

3)야근 없음. 외국인선생들많아서 칼퇴가능


열심히 면접봤고 결과는 합격

드디어 나 공항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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