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껍질 Mar 19. 2024

낭만적인 삶을 산다는 건

떠남과 머무름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날, 비행기 시간이 임박해 피카소 미술관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쉬운 대로 기프트샵을 구경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야기가 가득할 것 같은 한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나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계셨고, 그 옆에는 무엇이 들었을지 궁금해지는 신비로운 상자들을 가득 실을 자전거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중 몇몇 박스들이 오픈되어 있었는데, 그 속에는 나무, 돌, 조개 등 자연물로 만든 액세서리들이 그 어떤 보석보다도 예쁜 빛을 내며 진열되어 있었다.

자전거 상점

너무 예쁘다며, 감탄사를 내벧자 모두 직접 만든 수작업품이며 자전거에 싣고 바르셀로나 어디든 돌아다닌다고 했다. 날이 좋으면 종종 액세서리가 아닌 꽃을 싣고 어디든 머무르며 판매한다는 말을 들으며, 바르셀로나를 누비는 가장 자유롭고 아름다운 자전거 상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바라왔던 인생의 모습을 만난 느낌이었다. 어떤 목표나 사회적 시선에 매이지 않고 오늘을 만끽하는 자유가 부럽기도, 동시에 그렇게 사는 모습을 알게 해 주어 고맙기도 했다.


항상 인생의 화두가 자유롭게, 나답게 사는 법이다. 끊임없이 어떻게 나의 개성대로 자유롭게 살까 고민하는 건 지금 그러지 못하고 있어서라는 생각도 든다. 여러 불만족 지점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지금의 생활을 당장 그만두지 않는 건,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지금 뛰고 있는 레이스에서 탈주하면 다시 뛰러 오기는 어려울 거라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다. 예측가능한 하루들이 주는 안락함도 머물고 있는 세상 밖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여행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여행이 끝나면 잠시간 자신의 삶이 나쁘지 않다는 위안을 받고 그 힘으로 다시 불만족스러운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제법 호화롭고 여유롭게 살고 있다는 자랑, 다채롭지 못한 일상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단시간에 쏟아 넣는 자극적인 새로움들이 여행의 목적이 된 것 같다.


스페인이 끌렸던 건 태양과 열정의 나라는 점이었다. 내 안에 가장 작은 방에 갇혀 잊히고 있는 즉흥성과 호기심이라는 불꽃이 꺼지지 않게 숨통을 트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현실과 멀어지면서 항상 나를 따라다니던 갑갑함을 덜어내고 숨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스페인 피카소 미술관 앞에서 세상 온갖 아름다운 걸 팔고 있던 자전거 상점의 아저씨를 보며, 나도 그처럼 하루하루가 끝나지 않는 긴 여행의 일부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카소 미술관의 엽서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의 트루먼 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