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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껍질 Mar 14. 2024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사람

우리 할머니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사람, 하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사촌 언니가 신발을 신으려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 사람이 이렇게 작을 수 있냐고, 이렇게 귀여운 사람 처음 봤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원래 150센티 언저리의 작은 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줄고, 깜빡깜빡 자주 잊어버리면서 멍 때리는 빈도가 늘어났다. 그렇게 할머니는 만화 캐릭터처럼 개성이 분명한 사람이 되어갔다.

제일 좋아하는 건 큰아들, 하루 일과는 노인 유치원 버스를 타고 돌봄 시설에 가서 또래 할머니 두 분과 삼총사처럼 모여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 지나고 조용한 혼자의 시간이 되면, 마음에 우울이 찾아온다. 심장 수술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픈 곳이 많아, 자주 죽고 싶다는 말로 딸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어떤 때는 아이 같다가도 또 동시에 쌓여온 시간만큼 무거운 몸과 피로한 마음이 공존하는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신정애 씨는 38년생이다. 어마어마한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큰아들을 서울대, 막내딸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냈다. 어느 집안처럼 말썽쟁이도 있었다. 머리가 제일 좋았던 둘째 아들은 공부와 점차 멀어지며 속을 썩이기도 했다. 신정애 씨는 그런 아들의 위해 환경을 바꾸면 공부할까 싶어, 학교를 여러 차례 옮기며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했다. 종종 전학을 위해 아들 대신 학교에서 책가방을 챙겨 왔던 기억을 회상하며 지금은 젤 이쁜 아들이야,라며 가장 행복한 표정이 된다.


그런데 정작 신정애 씨는 그 시절 많은 여자아이들처럼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11살에 뒤늦게 입학한 초등학교는 10리 길이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비 오는 날에는 그저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빗길을 걸어서 집까지 갈 생각을 하면 울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어둑해져 새카매진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옷과 책이 모두 물에 흠뻑 젖어버렸다.

그래도 학교는 가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농사일, 집안일로 바빠 학교를 몇 주간 가지 못할 때도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 반장, 그리고 반 친구 이렇게 세 명이 집으로 찾아왔다. 학교를 계속 다닐 거면 학교에 와야 하고, 아니면 퇴학 서류에 도장을 꾸욱 찍어달라고 했다. 평소에 딸은 배울 필요 없다고 믿었던 신정애 씨의 아빠는 냉큼 찬장에 넣어놓은 인감을 꺼내왔다. 퇴학 서류에 도장이 찍혔던 그날 저녁 신정애 씨의 엄마는 밤새 울었다고 한다. 딸이 자신과 같은 힘든 삶을 물려받을 것이 불쌍하고, 몇 시간이고 걸어서 다녔던 학교에 한 순간에 못 가게 된 것이 안쓰러워서 터져 나온 울음을 들으며 신정애 씨도 옆에서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와 딸이 누워서 울다 지쳐 잠들었다.


시간이 흘러 손주들과 함께 바닷가 어느 카페를 방문한 날, 갑자기 내리는 비를 보고 시작된 할머니의 이야기는 5번은 반복되고 나서 끝이 났다. 매번 새로 말하는 것처럼 그 시절 속상하고 힘들었던 마음을 가득 담아 몇 번이고 반복해 말해주는 할머니의 모습은 손녀의 눈과 기억에 오래 남을 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신정애 씨의 이야기는 항상 반전이 있어 재미가 있다. 그렇게 서럽던 밤이 지나고, 결국 신정애 씨는 학교에 가게 된다. 심지어 또래보다 몇 살이고 많은 복학생에 대한 학교의 배려로, 학년을 건너뛰어 학교를 다닌 지 1년 만에 6학년 반으로 진급한다. 너희 할머니가 2년 만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야, 전무후무해라는 외삼촌의 말처럼 역시 예측 불가한 것이 인생이라는 걸 몸소 알려주는 우리 할머니, 신정애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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