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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Sep 05. 2024

지금을 바꾸는 건 싸울 각오다

짧고 쉽게 쓰는 생각 #6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었습니다.


존스 씨가 운영하는 매너농장의 동물들은 현재의 삶에 불만을 가지고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농장의 주인인 두 발로 걷는 인간을 몰아내고, 네발로 걷는 동물들이 농장의 주인이 되는 것이지요.

혁명 이후 돼지, 말, 염소, 닭, 오리 등 농장의 동물들은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기 혁명의 의도와는 다르게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던 교활한 돼지들은 이내 농장의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농장동물을 호도하여 자기들만 잇속을 누렸지요. 그중 나폴레옹이란 돼지는 자신의 반대 세력에 있던 스노볼이란 돼지를 크고 힘이 센 개들을 이용해 무력으로 물리치고, 진정한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독재자를 돕기 위해 스퀼러라는 돼지는 나폴레옹의 결정과 행동에 이익이 되도록 농장동물을 현혹시켰고, 염소들은 토론의 중요한 순간마다 훈련받은 의미 없는 구호를 외치며 토론을 난장으로 만들어 농장동물들이 올바른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힘이 세고 우직한 말 복서를 비롯하여 많은 동물들은 그저 독재자와 그 일당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일하는 등 착취를 당하였습니다. 또한, 어쩌다 독재자에 반대하는 농장동물은 모두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결국 신시대를 꿈꾸었던 동물농장은 혁명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간인 존스가 운영하던 때보다 음식도 적게 배급받고, 휴식도 없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혹사만 당하는 인간이 운영하던 매너농장 시대보다 더 힘겨운 사회가 됩니다.


<동물농장>을 읽으면서 같은 동물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는 독재자와 그 일당들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상황에서 아둔하게 독재자의 명령을 따르고, 뉴스매체와 같은 스퀼러의 말과 혼란을 만드는 프로파간다 역할을 하는 염소들에 의하여 현재 상황이 나쁜지 스스로 판단하지도 못하며, 그 상황을 빠져나오려고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 농장 동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심지어 당나귀 벤저민은 글을 읽을 수 있어 돼지들과 그 일당들이 농장동물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동물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침묵으로 방조하였습니다.




어느 날 광역버스를 탈 일이 있었습니다.


하차벨을 누르고 목적지에서 내리려고 하니 버스기사는 어디를 가는데 벌써 내리려고 하냐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내리려고 한다고 대답하자 여기는 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타는 버스였는데 정류소를 착각했던 것입니다.

광역버스이기에 다음 정류장은 고속도로를 타고 30분 정도 지난 곳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전 원래 내리려던 정류소 앞에서 다행히 버스가 신호에 걸려 섰습니다.

황급히 버스기사에게 내려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버스기사는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내려주면 신고가 들어온다며 거절하였습니다. 신고가 들어오면 내가 책임질 것이며 연락처를 알려준다고 하였으나, 그것마저도 단칼에 거절하였고, 30분 지나서 나오게 될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는 방법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버스기사는 동물농장의 나폴레옹과 같이 버스 안에 군림하는 독재자 같았고, 어떠한 대화와 타협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몹시 강압적인 태도였습니다.


충분히 버스 정류장 근처여서 물리적으로 내려줄 수 있었고, 타 승객들에게 피해를 끼칠 상황도 아니었고, 비슷한 번호의 버스가 서로 다른 정류장에 서서 처음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오인할 수 있었고, 버스가 고속도로로 들어서기 전에 안내방송을 통해 다음 정류장이 매우 오래 걸린다는 고지도 하지 않았음에도, 30분 넘는 시간을 버스에 감금되도록 강요하는 현재의 상황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더 이상의 설득과 요청은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이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용기를 내어 스스로 버스에서 내리는 방법뿐이었습니다.




거인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이야기를 그려낸 인기 만화인 <진격의 거인>의 오프닝 OST "홍련의 화살(紅蓮の弓矢)"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踏まれた 花の 名前も 知らずに

짓밟혀버린 꽃의 이름조차 모른 채

 

地に 堕ちた 鳥は 風を 待ち侘びる

땅에 추락한 새들은 바람을 애타게 기다린다

 

祈ったところで 何も 変わらない

아무리 기도를 해도 변하는 건 없어

 

いまを 変えるのは 戦う 覚悟だ

지금을 바꾸는 건 싸울 각오다



 

어쩌면 우리는 땅에 떨어져 바람을 기다리는 새처럼 타인이 나의 상황을 바꾸어주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타인의 배려나 친절 혹은 이타심에 의해서 나의 상황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단지 운에 의해서 나의 삶이 변할 것이라고 하는 허황된 신기루에 불과할 것입니다.

결국, 지금 나의 상황을 바꾸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려는 나의 의지와 노력, 현재와 싸울 각오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부끄럽지만 동물농장의 동물들처럼 많은 순간을 순종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불합리하더라도 내가 아닌 누군가 그 상황을 바꾸어 주기만을 바랐습니다.

때로는 타인의 동정심 혹은 이타심에 기대어 현재의 안 좋은 상황이 바뀌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동적인 태도는 상황 개선시킬 수 없고,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버스기사에 기대서만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랐다면 나의 운명은 어느 버스기사의 손에 있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나의 인생이 아니게 됩니다. 어쩌면 저 역시도 동물농장의 동물들이 독재자에게 탄압받듯 버스에서 강요와 불합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순응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을 바꾸기 위해 바람이 불어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두 발을 높이 뛰어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처럼 내 힘과 의지로 지금과 싸울 각오로 버스에서 내렸기에 비로소 불합리한 상황을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이 X(트위터) 서비스 차단을 결정하자, 레거시 언론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X를 생각하고, 표현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이에 반발하여 위성통신 서비스인 스타링크를 무료로 개방하여 브라질 국민이 스타링크를 통해 X에 접속하여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일런 머스크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을 스스로 싸워서 개선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인물일 것입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인물이지만, 부당함과 싸우려는 그의 모습은 순종적이고 순응적인 동물농장의 동물들이, 동물농장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을 누군가가, 현재를 바꾸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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