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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Nov 03. 2024

청약에 당첨되다

짧고 쉽게 쓰는 생각 #8

그토록 바라던 청약에 당첨되었습니다.


7~8년간 집 값이 폭등하던 시기 청약은 합리적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습니다. 희망을 안고 10여 년 전부터 청약통장을 만들어 열심히 저축하였고 어느덧 그 금액이 천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2023년부터는 청약에 의한 분양가도 폭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례로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019년에 청약을 했는데,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었습니다. 그러나 2024년 11월 현재 거래가격은 분양가의 2배를 넘었습니다. 현재 인근 분양하는 아파트들도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거래가격보다도 비싸게 분양을 하고 있습니다.


집이 없는 불안감과 계속 오르는 집 값을 보며 절망에 휩싸이다 보니, 나날이 높아지는 분양가 9~10자리(digit)의 숫자가 얼마나 큰 금액인지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렇게 감각이 마비되고, 욕심이 탐욕으로 커져갔을 때 인근에서 아주 좋은 입지의 아파트를 청약하였습니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입지의 비슷한 분양가 아파트에 청약을 하고 싶었지만,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청약을 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덜컥 어떠한 영문인지, 세이렌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홀린 듯 청약에 넣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 '집 값은 계속 오르니까' 이것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는 자포자기한 심정이 있었습니다.




청약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청약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자정이 되어 청약 발표가 되었고, 마음 졸이며 청약 어플을 켰습니다. 경쟁률이 5:1 정도 되었기 때문에 당첨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첨자 화면에는 동/호수가 나왔습니다. 청약에 당첨된 것입니다.


기쁨과 절망이 동시에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그토록 바라던 청약에 당첨되었고 동/호수도 고층에 나쁘지 않았기에 그리고 중도금도 후불제이기에 일단 계약금만 내고 버텨볼까 싶었습니다. 부동산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입주할 때쯤 되면 20% 이상 오를 것이라고 계약금만 내고 버티라고, 정 안 되겠으면 본인이 전매제한이 풀리는 1년 뒤에 팔아준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청약을 포기하려고 하면 10여 년간 부었던 청약통장이, 그리고 인생에 단 한번 있는 특별공급의 기회를 물거품처럼 날려버릴 상황이었기에 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청약당첨 후 계약 마감일 약 일주일 간 아내와 치열하게 집의 가치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논의를 하였습니다.


결국, 청약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청약을 포기하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집을 투자의 수단을  생각하지 않는 원칙입니다. 1년 뒤에 만약 분양가보다 거래가격이 낮아진다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남게 될 것입니다. 물론 1년 뒤에야 분양가보다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집이 투자의 수단이 아닌 이상 아이들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리스크를 짊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우리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의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무리해서 집을 산다고 한들 이자에 쫓겨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 것 같았습니다. 집을 살 때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그렇게 해야만 여유롭게 살아가며 안온하고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아쉽고 아까웠지만, 그렇게 청약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분명히 제 이전 글 <무소유>를 보면 무리하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정작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청약 당첨과 포기의 경험으로 인해 생각하는 것보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결심하는 것보다, 그 결심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글을 쓸 정도로 결심도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청약의 유혹은 참았지만, 두 번째 청약 유혹에 넘어간 것처럼 매 순간마다 결심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지 않는다면, 결심은 지표면 근처로 떨어져 녹아버리는 눈의 결정과 같이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강인한 정신력과 신념, 그리고 결심으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때로는 위인으로, 이 시대의 영웅으로, 그리고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글로벌 기업의 창업자로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하지만 저 같은 소시민에게는 그러한 영웅들과 같은 강인한 정신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결심하지만 곧 후회하고, 다른 길로 유혹되나, 다시 처음의 선택을 아쉬워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렇게 실패하고 후회하는 경험을 통해,

부디 신념과 결심을, 그리고 자신을 믿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변에서 들리는 수많은 유혹에도, 내 마음속 탐욕의 속삭임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평온하고 안온한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설령 틀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정말 그것이 틀렸는지 오랜 시간에 걸쳐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계산하기보다는 마음을 담아보시길 바랍니다. 계산은 조건에 따라 쉽게 변하지만, 마음의 핵심가치는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묘비에는 그가 생전에 미리 써놓은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I hope for nothing.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I fear nothing.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Είμαι λέφτερος.

I am free.

나는 자유다.


부디 탐욕과 욕심을 버리고, 무수히 많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정한 자유를 찾기를. 그로 인해 '나의 결심과 신념'을, '나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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