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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Oct 24. 2023

경리 회계직 이렇게 시작했어요.

1. 서른살 초짜 경리, 경력없이 취업하기.

이번 매거진에서는 제조업 중소기업 경리 회계직을 맡고 있는 30대 후반 워킹맘이 현재 직장에서 좌충우돌 일과와 생각들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소속은 '경영지원팀' 대리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위 얼굴은 제 얼굴이 아니고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AI 이미지입니다. 모든 왕년의 여성이 그렇듯 10년 전에는 저런 미모를 하고 있었겠으나 현재의 제 모습은 초2 아들이 엊그제 그려준 아래의 모습과 같아요~^^ 
(책보는 엄마를 안그리고 폰 보는 엄마를 그린 아들)

저는 중소기업에서 경리 회계일을 시작한 지 10년째입니다.  

20대 때는 대부분 음식점에서 홀서빙을 하는 일을 했었고요, 전공은 호텔조리과였으니 '경리', '재무', '회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9살에 처음 '경리'라는 직무에 관심을 가지고 집 가까운 중소기업에 지원을 했어요. 왜 생전 안 해 본 일을 뒤늦게 지원했느냐. 어느 회사건 돈 만지는 사람은 무조건 있는 거지요. 이 직업으로 부귀영화를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밥 굶고 살 걱정은 없겠다 싶었어요.

 저는 저의 위치와 스펙을 잘 알고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때 가장 싫어하고 자신 없던 과목이 수학, 영어였고  여전히 지금 마흔이 되도록 기본적인 산수에도 약합니다. 심지어 키보드(자판)로 입력하는 속도도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에요. 키보드를 수시로 보고 쳐요.

그런데 어떻게 중소기업 경리로 10년 동안 살아남았을까요?
첫 번째. 엑셀 실력을 키웠어요. 

축키와 기본적인 메뉴바를 잘 다루는 효율성을 발휘하면 수년동안 잘못 길들여진 키보드 보고치는 버릇을 고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어요. 그리고 키보드를 보면서 입력하는 것도 가면 갈수록 빨라지더라고요. ^^ (가끔 영타로 한 문장을 치고 있는 허점이 있지만요 ㅋㅋ)

 기본적인 업무 처리 속도가 느리다면 일을 효율적으로 해야 해요. 계산기를 은행원처럼 빠르게 누를 필요도 없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엑셀과 친해져야 해요. 


첫 사무직을 26살 때 시작하고 그 해 동네 문화센터에서 엑셀의 실무에 대해 수강했어요. 엑셀 실무나 자격증반 교육과정을 이수한다고 빨리 느는 것은 아니었어요.  생존문제가 걸려야 해요. 첫 사무직은 엑셀을 아주 고급으로 다루는 쇼핑몰 회사였기 때문에 제가 느려서 일마감실적을 제출하지 못하면 퇴근을 못했어요. 저만 못하면 상관없는데 선임도 퇴근을 못해요. 그래서 점점 실력이 늘었었지요.


계산은 계산기와 엑셀이 해주고, 무언가를 컴퓨터를 이용해 입력할 때는 [Ctrl] +[C][Ctrl] +[V]를 적극 활용하면 수에 대한 큰 개념이 없이도 경리, 회계 직무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이든 글자든 복사해서 붙여 넣기를 잘해요. 그 정도는 누구나 한다고요? 그렇다면 첫 번째 소양은 갖추셨군요~



면접 볼 때  "자녀계획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라는 뻔한 질문에 "아, 아이 생각은 당분간은 없고 신혼을 3년 정도 가지면서 커리어를 쌓을 생각입니다. 능력 없이 아이만 낳고 싶지는 않거든요."라고 했었어요. 일반적으로 이런 대답에 면접관 썩 미덥지는 않지만 일단 믿어볼까 말까 하는 심리 상태일 겁니다.


그러나 이 사장님은  "왜요? 아이가 생기면 낳아야죠, 하늘이 주신 선물인데~ 요즘 사람들은 늦게 가지려고 하는데... 생길 때 낳는 거예요. 만약 혹시라도 다니다가 3년이 안되었는데 아이가 생기면 지우지 말고 꼭 낳으세요~."라고 까지 하셨던 분이에요.


생각해보면 차변, 대변도 모를 때 경리로 뽑아준 권 사장님께 가끔씩 엄청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열정하나 보고 뽑으셨거든요. 사장님이 당시 29살인 저를 가르쳐 보려고 업무 시작 전에 처음 물어보신 질문 2가지가 생각이 나요.


1) 차변 / 대변 들어봤니?

2) 1억은 '0'이 몇 개인지 아니?


도대체 저는 무슨 자신감으로 <경리 구함>에 지원했던 걸까요? 1억이라는 돈을 세어본 적이 없었어요.

단지 모든 회사에는 돈을 다루는 부서가 있기 때문에 경력을 쌓으면 무난하게 취업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만 가지고 지원했었거든요. 더군다나 저는 엑셀 중급 실력자였으니까요. 주변 컴알못 지인 중에서는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때로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도움이 되었네요.


위에 적은 사장님의 1번 질문의 답은 "... 아니요~^^;"였어요. 

낭창하게 대답했지만 심장이 졸아들었어요. 잘리는 건가? 하고요.

모범적인 답안을 10년이 지나 이제야 생각해서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아요.

 "차변은 우리 회사에게 들어오거나 들어올 것이고 대변은 돈 등이 나가거나 나갈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현금, 보통예금, 외상매출금 등의 자산, 또는 각종 비용은 기본이 차변 계정이고, 대출의 원금이나 줘야 할 돈인 외상매입금과 미지급금, 자본, 매출 외의 각종 이익 등은 기본이 대변인 계정입니다." 


2번 질문의 답도 개념 없었지요.  "어..... 잠시만요..."  해보다가 종이에 100,000,000 적어보면서 '0'을 뒤에서부터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육성으로 일, 십, 백, 천, 만.. 읽다가 1을 포함한 자릿수를 세어 "아홉이요~"라는 오답을 선사해 드렸지요. 그땐 통장에 천만 원 구경도 못해봤는데 1억이라니요 ㅎㅎ


  입사 후에도 열의만 있고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2주가 넘어가자 사장님은 결단을 해 주셨어요.

 "안 되겠다. 여기 근처에 직업전문학교 있거든? 퇴근하고 거기 가서 <전산회계> 교육을 들어. 일주일에 두번정도 할거야~ 교육비 결제하면 내가 줄 테니까."라고 하시는 거예요. 공짜로 공부를 시켜주네요.  퇴근 후 주 2회 <전산회계 1급 자격증반>을 수강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자격증 시험 결과는 합격이었어요. 


그렇게 회사의 지원으로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시스템이 잘 안 잡혀 있는 회사에서 스스로 하기에는 너무 막막하고 일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배울 수 있는 선임도 없고 기장은 세무사무실에 간소하게 맡기고, 종이전표에다가 실장님이 손글씨로 쓰고 있었으니까요.  몇 개월 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어요. 처음 계약대로라면 수습기간이 세 달이었는데 2달만 수습하고 3번째 달부터는 본 월급을 주겠다고 말씀하셔서 예정보다 80%의 급여받는 달이 한 달 줄어들기도 했었는데요. 사장님의 모험과 투자를 생각하면 제가 생각해도 먹튀가 따로 없었어요. 그래도 어째요? 


 당시에 저희 회사는 소셜커머스에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위*프, 티*에 비해 쿠* 정산이 너무 답도 없이 어려웠어요. 정산 시스템이 부족한데 장사만 잘 된 거예요. 지금처럼 쇼핑하게 좋도록 되어있지 않았고 일 1~2주일 단위로 '딜'형태로 판매하고 실시간으로 잔여시간이 카운트되는 그런 시스템인데 20분 만에 연결된 쿠*정산팀에 전화를 걸어봐도 '사실 저희도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던 걸요.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퇴사하는 마당에 정말 이런 사장님은 없었어요. 회사 다니면서 면접 있으면 면접 보러 다녀오라고 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저는 또 일하던 중에 면접 보러 다녀옵니다. 무려 두 번이나요.ㅋㅋㅋ 

"어~ 면접 잘 보고 왔니?'

"아니요, 저 떨어진 거 같아요. '전산회계 1급' 있다고 했더니 경력이 없다네요~"

 "그래, 또 지원해 봐~" 하시며 응원까지 해주시는 정말 감사하고 비현실적이신 사장님이었어요.

경리 업무담당자로 입사를 해 놓고 실질적인 경리 관련 업무는 거의 안 하고 고객 응대와 온라인 발주 처리만 한 채로 그 회사를 나오게 되었어요.

'전산회계 1급' 자격증만 있고, 29살 기혼자인 제가  회계실무 경력도 없이 어떻게  다시 [경리/회계] 분야로 취직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다음에 진짜 회계 업무를 몸소 배우고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회사를 만났어요. 

물론 '현실적인' 사장님도 만났지요관심 있으신 분은 매거진 구독 부탁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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