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매거진에서는 제조업 중소기업 경리 회계직을 맡고 있는 1985년생 마흔의 워킹맘이 직장에서 좌충우돌 일과와 생각들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소속은 '경영지원팀' 대리입니다)
작년 가을에 매거진 1화 글을 쓰고 갑상선암 발견으로 멘털이 나갔다가 수술 후 이제야 마음잡고 2화를 써요. 너무 잘 쓰려고 해서 아무것도 못 썼던 것 같아요. 가볍게 읽어 주세요~^^
10년도 더 된 일이에요.
지난 1화에서 비현실 적인 사장님이 경력도 자격증도 없는 저를 열정 하나만 보고 채용 해주셨었지요. 심지어 전산회계 자격증까지 딸 수 있게 돈 쥐어줘 가며 학원도 보내 줬어요.
그래서 얼떨결에 저는 이력서 한 줄이 추가되었지요.
<전산회계 1급> 자격증 소지자.
경리 경력 4개월.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열정.
닥치는 대로 집에서 동선이 가까운 지역 위주로 이력서 제목에 회사명만 바꿔가며 이력서를 넣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먼 곳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서울 기준 서쪽에 살 때는 남들과 출근길에 같이 복작대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시내 중심부와 정 반대로 가는 쪽으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회사,직장을 구하면 지하철을 정말 여유롭게 탈 수 있었어요.
'역행자'였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도 너무너무 귀찮았어요. 지하철은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되잖아요? 숨이 너무 차더라고요. 계단을 내려가서 교통카드를 찍었는데 또 내려가야 돼요~
"그래, 버스로 한방에 갈 수 있는 곳으로 지원하자!"
그래서 버스정거장과 멀지 않은 곳 위주로 40분 내로 출근할 수 있는 곳으로 알아봤어요. 아직도 생각나는데요, 금요일 오후 6시 정도에 저녁 먹을거리 시장을 보고 있었거든요.
생선 파는 가게 앞에 도착했는데 전화가 걸려 온 거예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엄청 급해 보이는 말투로 쏘아붙이듯이 얘기하더라고요. 여러 명의 이력서를 두루 보았으나 다 면접을 볼 수는 없고 그중에 몇 명만 면접을 볼 생각이라며 그것 만으로 운이 좋은 거라는 거예요. 대표님이 아니라는 감은 있었지만 자신을 이사라고 소개하며 이 회사에서 영향력이 있다며 묻지 않은 자기 PR을 늘어놓더라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네,, 네네.. " 하며 빨리 끊고 싶다, 여기는 합격해도 피곤하겠다, 생각했어요.
" 나 예스 씨는 월요일 오전 9:00까지 면접을 보러 오세요. 이력서, 주민등록 등본 반드시 지참하시고."
네네 하다 끊고 나니 저희 집에는 프린트기가 없었어요. 동네 PC 방을 다 뒤져 봤지만 프린트 가능한 곳이 없었어요.
금요일 저녁 주민센터 문 닫은 시간에 면접 제의 전화를 받았는데 월요일 아침 9시 면접에 무슨 수로 등본을 지참하고 갈 수 있겠어요? 면접 보는 날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등본을 지참하고 취업포털 사이트로 지원한 이력서를 보고 전화 줬으면서 면접 당일 이력서를 챙겨 오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당장 문구사에 가서 옛날 느낌 물씬 나는 이력서 양식을 사서 손글씨로 잡코리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부분 부분 베껴 적고, 등본은 지인의 스포츠 학원 사무실에서 출력해서 면접을 보러 갔어요.
면접 당일 과묵한 사장님은 손글씨를 쓴 이력서가 마음에 드신 것 같았어요. 저의 브런치 구독자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손글씨가 평소엔 악필인데요, 마음먹고 한 땀 한 땀 쓴 이력서라 글씨가 평소보다는 디자인이 된 거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회사는 더존 회계프로그램으로 기장도 직접 하는데 매일 그 걸 모두 두꺼운 장부책자에 볼펜으로 옮겨 적어야 퇴근할 수 있었어요. 알아볼 만한 글씨여야 했지요. 선임은 드디어장부를 쓸 후임이 들어왔다고 기뻐했어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할 수 없지요.
저는 그때부터 글씨를 연기하게 되었어요. 예쁜 글씨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ㅋㅋㅋㅋ
(이미지출처: 오피스트리)
선임은 정말 일 잘하는 임산부였어요.그런데 채용한다는 소식도 못들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제가 채용되었고 곧 만삭이 되고 출산 하러 가면 선임의 책상은 어떻게 되는 건지 불안해 보였어요.
심지어 나이 서른에 무경력인 경리 후임이 뽑혔다고 왜 부서 면접도 없이 사람을 뽑는지 알 수가 없다고 얘기하기도 했지요. 똑띡딱 일 잘하는 선배는 모든 면에서 빠르고, 프로페셔널했어요. 가끔 공장에서 느작느작 서류 협조가 안되면 쌈닭이 되기도 했지요.
경영지원부는 인원수에 비해서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보였어요. 왜냐면 회사의 모든 일은 경영을 위한 것이고, 경영을 지원하는 경영지원팀은 모든 일의 담당자였어요. 담당자가 없는 애매한 모든 일을 조사하고, 검토하고 합당해야 돈을 지급할 수 있으니까요.
영업부는 돈을 벌어 오기 때문에 성과급이라도 있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경영지원부는 특성상 회사 돈을 쓰는 부서이고 아껴야 되는 부서이기 때문에 부서장은 자기 수하의 직원 급여 인상은 커녕 연장근무 수당이라도 달라는 말도 못하는 형편이었죠.
평소보다 비용이 많이 나왔다면 반드시 사유를 기재하고 대표님에게 설명을 해야만 했어요.
해외 영업부가 따로 있는데 왜 우리부서가통관료 많이 나온 이유를 알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관세 환급가능한 원자재 코드도 알아야 했어요.
영업부가 어떤 업체는 어음 대신 할인율 적용해서 현금으로 해 오기도 했는데요.천만 원중에 부족한 5만 원을 왜 의심받아야 하는지 서럽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대표님은 경영지원팀이 왜 바쁜지 진심으로 모르시는 듯했어요.
야근하고 있으면 "너 뭐 바쁜데? 뭐 할거 있어서 남는데?" 라며 파티션 너머로 보고 가셨고
"내일이 급여일 이잖아요. 5일이 급여일인데 공장에서 생산직 출퇴근카드 실물도 오늘 배송받았어요. 연장수당 정산 해야 해요. "
대표님이 다 할 줄 아는 일을 단지 손이 부족해서 뽑은 부서가 경영지원부 같았어요. 맨날 골머리 앓느라 야근하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 뭔지 아시죠.
언제나 감정기복이 없으시고 말 수도 적은데 미국과 중국지사 출장을 자주 가셨지요. 새벽 3시에 자금일보 메일 읽으시고요. 피곤 한 티를 하나도 내지 않으셨어요.
게다가 선임한테는 거의 두 달 내내 혼났어요.
회계 업무가 완전 처음이고 보니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실수를 지적받으니 또 굳어버려서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요. 선임도 점점 만삭으로 불러오는 배를 잡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손 발이 심하게 부어갔어요. 저도 꾸중 듣다가 울음을 참지 못해 화장실도 다녀오기를 반복했어요.
설명해 주는 것을 모두 메모해야만 그 많은 일들을 선임이 출산휴가 갔을 때 제가 실수 없이 할 텐데 속사포로 알려주는 업무 방법은 들을 때는 알 것 같은데, 해보라 하면 못하겠는 거예요.
"제발 적지 말고 들어요. 그거 며칠 적길래 놔뒀는데 적은 거 다시 안 보잖아요. 쓰느라고 못 알아듣는 거예요. 볼펜 내려놓고 모니터를 보세요!"
너무나 이치에 맞는 말씀이었지만 예전부터 메모 의존증이 심했던 저는 '적지 말라'는 명령어 앞에서 멘붕이 왔어요.
사람 성격이 다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누가 다그치면 주눅 들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성격이에요.
반대로 누가 '잘한다, 잘한다' 하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하는 축에 속하지요.
그렇게 양수가 터질 때까지 일하다가 갑작스럽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들어가게 된 선임은 마지막 날까지 제가 일 못할 까봐 걱정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각성을 하고 일머리가 돌기 시작했어요
메모를 많이 하면 메모만 믿고 기억하는 것에 소홀해지는 것처럼 일 잘하는 선임이 있을 때는 선임만 믿고 있어서 실력이 안 늘었지요. 더 이상 의지 할 사람도 없거니와 이제 돈 송금 한번 잘못하고 급여계산 하나 잘못하면 100% 제 책임이니까요.
예전 메모와 선임의 음성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천천히 해 봤어요. 되더라고요. 이제 받아 적은 선임의 말이 아니라 제 식으로 다시 메모를 정리할 수 있었어요.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일이 잘 되는 거예요.
급여계산이 제일 어려줬어요.
갑자기 중국으로 입국하러 가냐 한다는 취업비자 조선족 근로자, 베트남 근로자, 수시로 바뀌는 주재원 직원들의 기본급 정산, 연차수당, 30분 단위로 체크해야 하는 약 40명의 연장근무 수당정산, 그리고 촉박한 정산기간이 힘들었어요.
제가 다닌 중소기업들은 보통 급여를 당월 1일부터 말일까지 근무분을 익월 10일에 지급받았었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급여일이 매월 5일이었어요. 아마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급여를 5일만 묵혀서 준다고 엄청 기뻐했을 겁니다. 하지만 급여를 계산하는 입장에서는 '급여일이 제발 매월 10일이었으면' 하고 탄식하는 저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매월 20일은 어음 결제일인데 '어음을 결제한다'라고 하지 않고 '어음 막는다'라고 하더라고요.
자금사정이 빠듯하니 돈이 없다가도 급여일이나 어음 결제일에 마음 졸이다가 들어오고, 다시 한번 가슴 쓸어내리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우여곡절 끝에 경리 경력 없이 취업하고 지지리도 일 못해서 혼나다가 드디어 '일을 좀 할 줄 아는' 제가 된 썰을 풀었네요~ 다음 매거진에는 외상매입금과 외상매출금에 대한 글을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