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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was well Apr 01. 2023

07. 음악이 들이친 파도에 숨이 막혀

소리의 바다


원하는 때에 거의 모든 음악을 스트리밍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청취자들은 오히려 쏟아지는 음악들 속에서 길을 잃었다. 한해에만 50만 곡 이상의 음악이 발매되고 있고 작업자의 드라이브에 있는 미공개 음악들까지 감안한다면 우리는 음악 속에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바늘구멍을 뚫고 사람들에게 들려지는 음악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를 본 여러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전문 큐레이터, AI, 인플루언서 등을 내세워 알려지지 않은 음악들로 구성된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했고 이미 음악을 디깅하는 노력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은 제공자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있다.


음악 플랫폼이 아닌 영상 플랫폼에서 플레이리스트가 흥하게 된 이유는 음악의 소비가 단순히 소리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멜론의 멜론 DJ나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터가 제공하는 플레이리스트도 어떠한 주제를 통해 그에 맞게 구성된 음악들로 청취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지만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소비하는 시청자의 관점은 조금 달랐다. 소비의 형태를 청취자와 시청자로 나눈 것도 각 플랫폼의 성격에 따라 음악을 포용할 수 있는 영역의 차이를 두기 위함이다.


유튜브의 플레이리스트 영상엔 각각의 컨셉이 존재하고 통일된 컨셉을 아우르는 채널이라는 세계가 존재한다. 시청자들은 음악을 듣는 동시에, 어쩌면 청각이 반응하기 이전에 시각적, 언어적 또는 다른 요소들을 통해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은 배포자의 한정된 경험으로 제공된다는 한계가 있지만 음악이 다루는 영역엔 한계가 없다. 같은 음악으로도 여러 형태의 플레이리스트가 제작된다는 점이 그 증거이다. 시청자들은 채널이라는 세계에서 제공하는 플레이리스트를 경험하는 구성원이며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여러 채널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일찍이 온라인 매체를 통해 세상이 연결된 시점부터 타인과 정보를 나누는 행위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수동적인 소비 형태라는 다소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우울할 때 듣기 좋은 음악', '드라이브할 때 듣기 좋은 음악'처럼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배경으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두는 경우가 많아졌고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급자의 입장에선 이를 염두하여 음악을 제작하기 때문이다. 음악 도입부에 힘을 주거나 4곡 이상의 앨범 대신 싱글 음원을 발매하는 등 음악을 제작하는 방식과 과정에서도 변화가 보이고 있다.




나는 음악 산업의 이러한 변화들과 플레이리스트 문화에 긍정적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음원 차트에 쌓였던 피로도를 해소할 수 있는 여러 유통창이 생겨나 더 많은 음악과 아티스트들이 세상의 빛을 보고 있다. 


'All was well' 채널로도 많은 작곡가분들이 자신의 음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 메일을 보내오며 나는 이런 메일들이 반갑다.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고 그만큼 음악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지기에 작곡가의 모든 음악들을 성심성의껏 청취하고 고민한다. 물론 채널의 톤과 어울리지 않는 음악들은 정중히 사양하고 있다. 오랜 노력으로 완성한 음악도 듣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채널을 채워준 구독자분들이 없었다면 음악을 추천받는 일 또한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나는 이들을 만족시킬 의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음악인들의 노력과 시간이 물거품이 되지 않길 바라며 지금의 작은 마음이 언젠간 가장 높은 곳에 닿길 바란다. 가장 높은 파도만이 빛을 보았던 음악 시장에서 플레이리스트 문화는 방파제의 역할을 하며 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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