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잡을 수 없을 만큼 깎아내던 연필이 그립다. 다들 그러한가 묻는 일조차 예술가 코스프레를 견뎌야 하다니.
무한의 색이 섞여 온통 흑이 되는 세상이 오면 빛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사이에 내 자리는 없으면 좋으련만 시간에 떠밀려온 나 자신도 추억을 낭만이라 부르는구나.
향이 멈추지 않는 골목에 이야기를 풀어내고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내가 이 시대에서 낭만을 찾는 방법이다.
낭만주의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길을 따라 걸으라 말한다. 초록이 아닌 것들을 보라 말한다. 그래서 모든 걸음은 부단하고 아프다. 새긴 발자국은 마침표이자 결과가 되었다. 숨은 쉬지만 쉼은 없다. 낭만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낭만이라 부르는 것들은 객관성과 효율성과는 조금 떨어진, 유형보다는 무형에 가까운 것들이다. 꼭 숨이 차지 않아도 잠시 숨을 고르며 길을 이탈할 수 있고 그래도 되냐는 질문에 웃어 보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올라온 길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다음 걸음을 무겁게 만들지만 하늘에 가까워진다는 마음은 가벼울 것이다. 낭만이란 그런 것들이다.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면 잠시 멈추었을 때 걸어온 길들이 보일 것이다. 아직은 낮지만 파란 하늘이 보일 것이다. 이것들은 내가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이자 다시 달릴 수 있는 희망이다.
낭만이 넘치는 시대를 바라진 않는다. 오히려 부족함이 만들어낸 빈 공간들이 없었다면 소복이 쌓인 먼지를 제거하는 일도,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일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결핍이 있기에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잊혀지는 것들이 있기에 기억을 쫓는 이들이 있다. 자칫 미련과 후회가 남아 지나간 시간에 갇히기도 하지만 내가 조금씩이나마 흘려보낸 것들은 기어코 하늘에 닿는다. 나는 하늘을 보며 걷는다. 돌에 걸려 넘어질 것이 두려워 땅을 보며 걷기 시작하면 그 시야에 파란색은 없다. 상처투성이길 자처한 나는 낭만주의다.
상처를 보듬어주고 내게 쉼을 준 것이 음악이다. 음악은 파랑을 더 파랗게, 초록을 더 짙게, 무채색인 세상에 색을 칠해 주었다. 검은 바다는 보기에도 두려웠지만 푸른 바다엔 옷이 젖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음악은 나에게 낭만이고 글을 쓰게 해 주었고 사람을 연결시켜 주었다. 더 많은 것들에 닿기 위해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었고 그로 인해 내 세상도 더욱 밝아졌다. 1미터만 떨어져도 닿을 수 없는 너에게 내 모든 낭만을 다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