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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쌤 May 06. 2023

눈치를 삼킨 교사

Part 2. 특수교사 한샘의 교단일기

수업 중 눈치를 삼켜버렸다. 학생보단 '그분'에게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여기서 말하는 '그분'은 '특수교육실무사'를 뜻한다. 특수교육의 특이점이다. 현장에는 특수교사와 특수교육실무사가 짝꿍처럼 함께 일을 한다. 특수교육실무사는 특수교사의 전반적인 교수학습 활동이나 신변처리 등의 특수교육 대상자의 교육 및 학교 활동에 대해 지원의 역할을 한다.  

   

특수교육실무사는 특수교사의 교육 파트너라 할 수 있다. 교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늘 동행한다. 교사가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몸은 1개이기에, 일당백을 하는 학생들을 홀로 커버하긴 어렵다. 그래서 특수교사에게 특수교육실무사란 너무나 소중하고 든든한 지원군이다.     


7년 차 특수교사인 나는 특수교육실무사에게 잊지 못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감사한 분들이 계시다.      


사실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수교육실무사는 중년 비율이 많다. 과거, 갓 구워낸 따끈한 식빵처럼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젊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온전히 상대의 몫이었다. 현장은 이론과 달랐기에, 변수가 많았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어리숙하고 실수투성이인 나를, 그래도 교사라고 높여주시며 따라와 주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담임교사를 맡던 시절, 임신하신 특수교육실무사분과 함께했던 적이 있다. 당시 입덧이 심하셔서 고생이 많으셨다. 학생들을 데리고 이동하다가도 "선생님 잠시만요!" 하면서 멈칫하는 상황이 올 정도였다. 배려는 필수였다.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을 드리거나, 해야 할 일을 내가 좀 더 도맡아서 한다던가 등. 내가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신경 써보려 했다. 한편으론 과한 배려는 독이라고. 직업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과 책임은 쥐어드리는 것이 맞다 생각했다. 적당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런데 사람 자체가 너무 선하고 좋으셔서 오히려 눈치가 보였다. 뭐든 "괜찮다", "좋다" 하시고 힘들고 지친 내색을 안 하시니까 내가 배려를 잘해드리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눈치가 참 없다) 앞에선 티를 안 내시니, 오죽하면 뒤에선 나를 험담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1년이 무사히 지나고, 무사히 순산하셔 잘 지내고 계시다.  

   

눈치도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을 위한 긍정적인 눈치. 내가 어떻게 하면 좀 더 그 사람이 기분이 좋고 편해질까 하는 적당히 신경 쓰이는 눈치 말이다. 스트레스는 없다. 오히려 더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올 뿐.    

  

교과 교사를 맡던 시절, 나는 담임교사처럼 한 반만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닌, 여러 반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들어갔다. 반마다 특수교육실무사가 배치되어 있기에, 나는 다양한 특수교육실무사와 함께 수업을 해야 했다. 반마다 학생들도 달랐지만 특수교육실무사도 달랐기에, 학급별로 분위기가 달랐다. 타고나기를 '기'와 '에너지'가 넘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시다. 기와 에너지가 강하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잘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분들과 퍼즐처럼 잘 맞지 않는 타입이다. 괜히 날 선 경계를 하게 되고 적당한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런 분들 중에 내가 수업이 서툴다는 이유로, 본인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내가 더 잘 안다'라는 이유로 "선생님,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하며 학생들 앞에서 불쑥 과하게 선을 넘으시는 경우가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다음 날부터 그 반에 수업하러 가기가 꺼려지고 눈치가 보였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어떻게 대처하지?' '내 수업이 형편없다고 평가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강조하지만,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아주 어쩌다 나오는 한 번씩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눈치로 느껴진 나는 속앓이를 하며 괴로웠다.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나쁜 인상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감이 하락하고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나? 하고 불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눈치를 수 백번 삼키며 시간과 경력이 쌓이니 내 안의 변화가 생겼다. 무장한 방어기제가 깨지기 시작하며 내면에 철판이 생겼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 갈 길을 간다! 느낌으로 학생에게 집중한다.   


조금은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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