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의 알 지사와 피카르디의 에뎅 정원
중세 이후 서양 문명에서 물을 유도하는 기술은 아랍과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습니다. 중세 초기 시칠리아 지역의 팔레르모에는 알 지사(Al-Zisa)라고 하는 궁전이 남아 있는데요. 이 궁정의 볼거리는 거대한 물의 정원입니다. 알 지사(Al-Zisa)는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건축물에 적용된 기술과 양식은 무슬림 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칠리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입니다.
'지중해의 배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시칠리아는 고대에는 그리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이후 로마의 일부가 됩니다. 로마가 동서로 갈라지고 서로마가 멸망한 후에는 동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 후 벨리사리우스가 이끄는 동로마 제국군이 반달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탈리아를 다시 로마에 편입시켰습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은 사산조와의 전쟁, 페스트, 이슬람 제국의 등장으로 쇠퇴하며 이탈리아에서 후퇴합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는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 간의 다툼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변화를 겪습니다.
9세기에는 아글라브 왕조에 의해 시칠리아 토후국이 세워졌고, 팔레르모를 중심으로 문화가 번성합니다. 그러나 11세기 초에 동로마 제국이 시칠리아를 재정복 하려는 시도를 할 때, 노르만족이 등장합니다. 로베르 기스카르와 루지에로 1세는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정복하고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지요. 이로 인해 시칠리아는 가톨릭이 주된 종교가 되었고, 로베르 기스카르의 아들 로제 드 오트빌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알 지사는 12세기 노르만족의 웅장한 사냥 오두막이자 여름 별장의 용도를 가진 궁전으로, 1165년경 노르만 정복자인 시칠리아 왕 윌리엄 1세의 통치하에 아랍 장인의 설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당대에 완성되지는 못하여 윌리엄 2세의 통치하였던 1189년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궁전은 북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알 지사가 여름 별장이란 것을 생각해 보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온대 바람을 마주할 수 있는 방향입니다. 건물 내부 상부 공간에는 건물 전체에 일정한 공기 흐름을 만들기 위해 하부와 연결된 환기 덕트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은 내부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야외공간에는 분수대와 중앙수로가 있습니다. 본관 내부와 직접 연결된 수공간은 여름철 뜨거운 햇살의 열기를 식혀주면서 적정한 습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궁전 정원에 관개 시설을 제공하는 역할도 하고, 이 공간은 건물을 방문하는 이들이 입구에서 건물로 들어오기까지 야외공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오락과 여가의 여유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알 지사의 수로가 호화로운 왕실 연회에서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와인병과 기타 다과를 배달하는 데 활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갑자기 아는 곳이 떠오르지 않나요? 규모는 다르지만 한반도에도 이런 곳이 있잖아요. 경주 포석정 말입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포석정의 석구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위한 것입니다. 4세기 위진남북조시대의 서예가 왕희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유상곡수연은 물이 흐르는 수로 위에 술잔을 올려놓고 그 술잔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설계가 매우 정교하여 술잔이 떠내려가는 동안에도 기울거나 부딪히지 않았다고 하죠. 술잔이 떠내려가는 동안 시를 짓고, 시를 못 지으면 벌주 3잔을 마시는 등의 노는 방식으로 유상곡수연을 즐겼습니다. 또한 수로를 꼬아서 물이 더 오래 흐르도록 하고 수로의 깊이를 계산하여 설계하여 시를 지을 시간을 더 벌었다고 합니다.
포석정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알 지사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제 건물 내부로 들어가 봅니다. 1층에는 수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실내 수로 위쪽으로 고개를 들어봅니다. 벽 안쪽으로 조각을 해 놓은 부분 보이시나요? 이슬람 건축에서 돔, 하프 돔, 입구 등에서 주로 보이는 장식된 둥근 천장의 한 형태로 '무카르나스'라고 부릅니다. 이슬람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토속적인 이슬람 건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카르나스 천장은 건물의 주요 부분을 구별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며, 벽에서 돔형 천장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합니다. 추상적인 기하학적 형태로 빛을 분산시켜 이슬람 장식의 미적 감각에 매우 적합한 형태입니다.
중세 유럽을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및 이후의 시대에 비교하여 '암흑시대'라 부르며 전반적으로 문화의 측면에서 쇠퇴했다 보는 시각이 있지만, 한 시대를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 중 하나일 뿐입니다. 문화의 교류가 일어나고 지역 간의 서로 다른 기술에 융합이 일어나는 특별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중세 프랑스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3세기 후반의 프랑스 피카르디 지역의 에뎅(Hesdin)은 유럽에서 가장 초기이자 가장 광범위하게 수도 시스템이 도입된 곳입니다. 원정에 떠났던 십자군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다른 지역의 기술을 가지고 온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들의 기술 수준은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날 수력 시스템과 장치를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에뎅 지역의 수도시스템은 기존 수도시스템의 특징과 더불어 수리공학 원리를 혁신적으로 재해석하는 사례를 보여주는데, 무슬림 아랍 문명에서 볼 수 있는 알 자자리가 개발했던 자동기계장치들과 유사했습니다.
여기서 알자자리를 잠시 이야기하고 갈까 합니다. 알 자자리는 1136년에 태어난 아랍인으로 무슬림 출신의 박식가이자, 발명가, 공학자, 장인, 예술가, 수학자로서 다재다능한 사람입니다. 본명은 바디 아자만 아부 리즈 이븐 이스마일 이븐 아라자즈 알 자자리(1136-1206, بديع الزمان أَبُو اَلْعِزِ بْنُ إسْماعِيلِ بْنُ الرِّزاز الجزري)인데,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이름이 가장 깁니다.
알 자자리는 1206년에 <<독창적인 기계장치에 대한 지식을 담은 책(The Book of Knowledge of Ingenious Mechanical Devices, الجامع بين العلم والعمل النافع في صناعة الحيل)>>을 저술했는데, 이 책은 기계장치 100종과 다양한 종류의 마술 선박 80종을 묘사하고 제작하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알 자자리는 "이슬람 황금기"로 알려진 시기인 12세기 동안 아르투키드 궁전에서 왕실 기술자로 일했습니다.
에뎅에는 에뎅 샤토라는 성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에 정교한 기계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알 자자리가 개발했던 것과 유사한 것들로요. 2200에이커(약 9km2)에 달하는 놀이공원 개념인데, 좀 고약합니다. 기계식 동물, 새, 악기 및 분수로 장식한 정원이었는데, 낭만적이라기보다 짓궂었습니다.
에뎅 샤토와 정원에 설치된 장치에 대해 남아 있는 가장 상세한 설명은 부르고뉴 공작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부르고뉴 공작은 에뎅을 개조하고 유지 보수하는 데 큰돈을 썼던 인물입니다. 특히, 1432년 기록 중에는 콜라르 르 볼르라(Colard le Voleur)라는 화가에게 1,000 리브르를 지급하면서 개조하거나 새로 설치한 기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남깁니다. 아래는 에뎅 샤토 및 정원에 있었다고 하는 기계장치들의 일부입니다.
물을 뿜는 동상
왜곡된 거울
반지를 뽑으면 흑연이나 가루를 반지를 뽑은 사람에게 뿌리는 장치
사람들이 문을 통과할 때 머리를 가격하게 고안된 기계
비, 번개, 천둥 및 눈을 포함한 인공 날씨를 만드는 방
말하는 나무
사람들을 물속으로 떨어뜨리는 다리
아래쪽에서 물을 뿜는 파이프(특히 '여성을 젖게 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음)
사람들에게 가루를 뿌리는 파이프
어떤 사람이 창문을 열려고 할 때 자동으로 열려 그 사람에게 물에 뿌리고 갑자기 닫히는 창문
말하는 기계 부엉이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람을 골탕 먹이고 재미있게 놀기 위한 장치들로 여기 적힌 것은 있었던 것들의 일부입니다. 실제로는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15세기에 에뎅이 개조되면서 다양한 "트릭"이 추가된 물 분출 장치가 도입됩니다. 이로 인해 물의 동적인 힘을 공급하기 위한 수도관과 제어 시스템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14세기 프랑스의 시인 마쇼(Guillaume de Machaut)는 <<행운의 치료법(Remede de Fortune)>>이라는 글에서 에뎅 정원에 대해 썼습니다:
"높은 벽으로 에워싸여...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나는 여태 본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식물들 사이를 걷는다. 더 이상 이보다 아름답고, 고우며, 즐겁고, 기쁜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안에 포함된 기이한 것들, 즐거움, 기술적인 것들, 자동화된 것들, 물의 흐름들, 경이로운 것들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후 이탈리아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Villa d’Este of Tivoli), 프라토리노의 빌라 메디치(the Villa Medici at Pratolino), 바냐이아의 빌라 란테(the Villa Lante of Bagnaia) 등에서도 발전되었으며 파이프, 운하, 연못, 분수 및 게임의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아르투아 백작 로베르 2세(1250-1302)에 의해 건설된 에뎅 샤토와 정원은 16세기에 철거되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중세인들의 재미와 짓궂음, 기술력과 정원 꾸밈새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없어졌으니까요.
중세 분수는 물 공급 시스템을 확장시켰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로마 시대에 즐겼던 공중에서 물을 이용하는 관행을 되찾았고(예: 시에나와 피렌체의 대규모 시민 분수와 수도관 개조), 또 다른 경우에는 물 시스템을 개인 정원으로, 심지어 왕자들의 궁전과 식탁으로 가져왔습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의 1365년 판화는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데, 작품에는 본문과 무관한 분수의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분수는 육각형 기둥, 동물 머리 모양의 세 개의 물줄기, 그리고 맨 위에는 노출된 여성 인물(아마도 아프로디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620년에 인쇄된 판본에서도 유사한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인적 상상인지 아니면 저자가 직접 발명한 디자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원 분수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를 예견하는 초기 징후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물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 프리다이빙-
[알로하 프리다이브]
- 인스타그램: @alohafreedive
- 알로하프리다이브 홈페이지: https://www.kimwolf.com/freed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