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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마음 Feb 27. 2024

엄마랑 여행은 안 맞아, 안 맞아!

엄마와의 국내여행 2


이번 여행은 총 2박 3일 동안 함께 하기로 했는데요. 두 번째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부산에서 거제도를 다녀오기로 했기에 서둘러야 했어요. 그렇지만 자기 전에 내일 아침에 각자 8시까지 준비하고 출발하자. 먼저 깨우지 않는 거야.라고 약속을 하고 잤는데요.


그렇습니다. 저희 엄마는 새벽 5시 30분 ~ 6시에 일어나는 새벽형 인간의 여자. 저는 사실 새벽 5시에 잠드는 야행성 인간의 여자. 피곤했기에 잠이 들긴 했지만 원래 잠을 자지 않는 시간이라 이리저리 뒤척여 깊은 잠을 못 잤거든요.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이리저리 왔다 갔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티브이를 보며 새벽부터 저를 깨웁니다. 진심으로 엄마와 싸울 뻔한 첫 번째 고비... 그렇지만 내가 알아서 8시까지 준비할게, 조금만 놔둬...라는 말로 무사히 첫 번째 고비는 넘어갔습니다.



거제도로 출발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바람의 언덕에 갔어요. 연휴 기간에 방문해서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고요.. 날씨도 흡사 여름... 수준의 날씨여서 더위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그래도 엄마는 오랜만에 딸과의 나들이가 좋은 것 같아 함께 즐겨주기로 합니다.


작가님들과 여행 갔던 여행기를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심해어족이거든요. 10보 이상 걸어야 하면 무조건 무엇이라도 타야 하는 그런 사람인데... 높은 곳에 올라갔다 내려오기 엄청 싫어하고요.ㅎㅎㅎ 그런 제가 엄마의 요청으로 바람의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왔습니다. 저에게 이것은 흡사 등산과 같은 것...ㅎㅎㅎ (작가님들과의 여행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브런치북을 보세요!ㅎㅎ)


https://brunch.co.kr/brunchbook/writertrip



“엄마! 너무 더워. 이제 커피 타임이야!”

덥다고 징징거리는 저를 보며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전에는 엄마와 함께 티타임을 가질 여유가 없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엄마와 티타임을 자주 하니까 엄마의 취향을 알겠더라고요. 커피는 산미가 있는 원두를 더 선호하고, 음료는 주스나 에이드보다는 차를 더 선호하고요. 달달한 케이크나 쿠키 같은 디저트도 생각보다 좋아하더라고요.


여행 중간중간마다 엄마와 티타임을 가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저는 참 좋았어요. 엄마는 저 장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저 장소의 역사를 엄마는 찾아보고 왔구나, 엄마에게 이곳은 추억이 있는 곳이었구나 등등.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하고는 했습니다. 아마 그동안 엄마는 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의 신호를 모른 채 했던 것 같았어요.



거제도에 있던 김영삼 대통령 생가도 잠깐 들렀다가 매미성도 들렀다가 바다 앞에 앉아 휴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생각보다 체력이 좋았고, 딸은 생각보다 저질체력인 관계로...


엄마와 딸의 또 다른 점! 엄마는 쉴 틈 없이 다니고 보는 것을 좋아하고, 딸은 중간중간 앉아서 사색하고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제가 분명 엄마 배에서 태어난 딸이 맞는데 왜 이렇게 안 맞는 것이죠. ㅎㅎㅎ



“엄마, 우리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바다 보면서 쉬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렇지?”

“응. 이것도 해보니까 좋네.”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엄마와 함께 처음으로 사색을 즐겨봤습니다. 사실 엄마는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딸이 좋다니까 엄마도 좋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나이가 들 수록, 제가 바빠질수록 이런 시간을 함께 공유하기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는 일부러 더 엄마와 오래 앉아있었던 것 같아요.



바닷가가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또 모래해변을 조금 걸은 뒤에 숙소로 돌아왔어요. 숙소에는 욕조가 있었는데 피곤했을 엄마를 위해 따뜻한 물을 받아 족욕을 권했습니다. 족욕을 권했더니 반신욕을 하는 우리 엄마. 정말 나랑 안 맞아, 안 맞아.ㅎㅎ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엄마는 극 T, 저는 극 F였습니다. 어쩌면 엄마가 T였기에 섬세하고 예민한 저를 이렇게 키울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같은 F였으면 아마 저의 모든 행동과 말에 같이 반응하느라 더 힘들었을 수도 있잖아요.


“엄마, 오늘은 같이 잘까?”

고등학교부터 거의 혼자 지내온 저는 누구와 같이 자는 것을 불편해하는데요. 그것이 가족이라도 불편합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엄마의 발을 한참 주무르다 엄마의 주름진 손을 잡고 잠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의 아침은 부산에서 유명한 전복죽 집으로 향했습니다. 전복죽을 먹기 전에 다양한 해산물이 나오는데 지금 사진작가님께서 알려주신 곳이죠. 해산물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전도 부쳐 먹을 수 있는데요. 제가 한 번 부쳐 보았습니다. 물론... 엄마가 불안한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았다는 것은 안 비밀.ㅎㅎㅎ 엄마는 아직도 다 큰 딸이 불 앞에 서면 불안한가 봐요.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안 낳아본 저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ㅎㅎㅎ



마지막으로 압력 밥솥에 가득 나오는 전복죽입니다. 전복이 아주 많이 들어있어서 맛있어요. 아침을 먹은 후에도 부산을 여행하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각자의 집으로 복귀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나니 엄마를 이해하는 데는 여행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나이 들어 힘들어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더 많이 떠나야겠다고 다짐했고요. 집으로 가는 길, 엄마는 저에게 함께 여행해 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일이 그렇게도 없나. 괜히 더 미안해지더라고요. 엄마와 헤어지는 길, 괜히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웃으며 인사를 했어요. 물론 금방 예전으로 다시 돌아올, 아주 잠깐 철든 딸의 눈물이었지만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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