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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야 Mar 30. 2023

작은 거슬림에 집중하지 말자

좋은 것에 집중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기

 '거슬리다.' 


 아무리 작아도 온 신경이 그곳으로 쏠리는 그 기분. 물론 좋은 방향 말고. 아무리 좋아도 작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부정의 함유율이 몇 퍼센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맑은 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면 그 물은 얼마 안 가 잉크로 뒤덮인 물이 되듯. 손톱 옆에 나있는 거스러미(까시래기)같은 것들. 그러고 보니 거스러미는 거슬림과 단어 생긴 것도 비슷하네. 


 포르투에서의 여행은 99%가 좋았다. 딱 1% 아쉬웠는데, 사람은 이상하게 그 작은 거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포르투 재래시장인 볼량 시장에 방문했다. 기념품을 사러 넓은 시장을 한참 구경했다. 다른 지역에선 마그넷 정도 샀지만, 포르투에선 작은 와인, 코르크, 엽서 등 더 다양한 물건들을 샀다. '기념품들을 볼 때마다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많이 나겠지?' 해서 샀지만, 사실 기념품보단 일기가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결국 이렇게 글 쓰는 것도 기록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니까. 


프란세지냐

 기념품을 이것저것 담아 한 손에 쥐고 '프란세지냐'라는 걸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갔다. 처음 들어보는 음식 이름, 뭔가 프란체스카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음식은 포르투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한다.

 비주얼만 봐도 헉 소리가 나는, 칼로리 폭탄 음식.. 마치 큰 햄버거를 치즈에 두르고 기름에 튀기고 치즈를 붓고... 어떻게든 자극적이게 만든 듯한 느낌. 콜라 없이는 절대 못 먹을 것 같다.

 생긴 대로 짜긴 했지만,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기에 배부르게 잘 먹었다. 함께 시킨 샐러드가 속을 달래준 듯.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들어가서 쉬었다. 저녁까지 이어질 우리의 일정을 위해 에너지를 미리 충전시키는 과정. 그렇게 침대에 들러붙어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한다. 




 첫 번째로 간 곳은 렐루서점. 조앤롤링이 해리포터 영감을 받았다는 장소로 유명하다. 그걸 위해 비행기를 타고, 도시 간 이동을 하는 동안에 틈날 때마다 해리포터를 봤지. 친구는 해리포터를 보지 않았다길래, 렐루서점에 오기 전까지 해리포터를 어떻게든 같이 봤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장소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티켓을 사서 줄 서다 들어간 렐루서점은 생각보다 좁았다. 책이 선반에 끼여있는 느낌이 이런 느낌 일까. 삐걱대는 나무 바닥에, 벽은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중앙에 있는 이 움직일 것 같은 계단. 역시나 유명인사답게 계단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의 첫 번째 거슬림은 이 렐루서점에서 만났다. 키가 190 넘어 보이는, 마른 체격의 노란 머리 남자는 계단에서 하루종일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세 낸 것처럼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던 사람. 계단에서 내려오길래 이제 가는가 했는데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


 "제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발 끝은 화면 밑으로, 얼굴 작게 나오게, 기울어지지 않고,... "


 열심히 자신을 어떻게 찍어줬으면 하는지 설명하길래, 얼른 찍어주고 보내려 했다. 하지만 한참 찍고 나서 어떻게 찍었는지 확인한 후 표정이 굳었다.


 "여길 보면 잘렸잖아요.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찍어주세요, 다른 사람들이 안 나오게 찍어주시고,... "


 내가 전속 사진작가도 아니고, 뭐 하러 그렇게 해야 하나. 기분이 상했다. 대충 찍고 핸드폰을 돌려주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 뒤로도 서점에서 계속 마주쳤지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렐루 서점에서 더 구경하고 다른 곳도 둘러보고 하고 싶었지만, 그 장소 자체가 싫어졌다. 둘러볼 기분도 아니고, 기념품으로 책 하나 사가려다가 사면 계속 그 사람 생각날 것 같아 사지 않았다. 서점에서 책을 사면 입장료값만큼 빼준다는 걸 알면서도 구입하지 않았다. 언짢은 건 친구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냥 나갈래?"




 나와서 파란 하늘의 포르투를 보니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 동 루이스 다리와 도우루강의 풍경을 보러 전망대 역할을 하는 수도원에 올라갔다. 오르막길이라 조금 힘들었지만, 올라가서 강을 내려다보니 좋지 않았던 감정들이 모두 씻기듯 내려갔다. 

낮의 포르투 전경

 파란 하늘에 파란 강, 오밀조밀 모여있는 빨간 지붕의 집들. 오후의 해를 받아 집의 하얀 벽이 노르스름해지던 그 시간대. 철제로 만들어진 흔한 다리일 수 있지만, 직선의 다리와 그 뒤에 곡선으로 흐르는 강과 아기자기한 마을들의 느낌은 '와'소리가 절로 났다.

 다리 아래쪽에는 자동차들이, 다리 위에는 사람과 지하철이 다녔다. 열심히 돌아다니는 사람들, 나도 저 중 한 명이었겠지. 어떤 생각을 하며 내딛는 발걸음들일까. 바람에 울렁이는 강의 흐름과 간혹 강을 떠다니는 배들까지. 그 순간을 액자로 담고 싶었다. 한참을 난간에 기대 넋 놓고 강을 바라봤다. 


 아무리 날이 풀렸다 해도 아직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강가에다가 높은 곳에 올라가니 찬 바람이 꽤 많이 불어 추웠다. 한참을 바라보다 찬 바람이 내 품에 더 세게 들어왔을 때, 밑으로 내려가자 했다.





 포르투에선 와이너리 투어를 해야 한단다. 와인은커녕 맥주도 못 마시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해봐야 한다니 따라갔다. 가이드하시는 분이 와인 공장 같은 곳을 지나가면서 엄청 큰 와인통도 보여주시고, 어떻게 만드는지 과정들도 설명해 주셨다. 사실 큰 관심은 없어서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와인을 정말 좋아한다면 귀 쫑긋 했겠지만..

와이너리 투어에서 와인 시음

 마무리는 카페같이 생긴 곳으로 가서 와인 시음하는 단계였다.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로 대화를 나누던 곳.

 와인엔 입만 깔짝대고 말았지만, 와인잔을 짠 부딪히는 그 소리에도 매료가 되었다. 와인을 마시지 못하는 게 참 아쉬웠다.


 해질 때 다리와 강을 봐야 한다 해서, 슬슬 일몰 시간 다가올 때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 부근으로 올라갔다. 어떤 노부부와 함께 탔다. 어색한 분위기에 각자 케이블카 창문 너머로 풍경을 보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지붕의 붉은빛을 태양이 모두 머금었다. 

해가 질 때 케이블카 안에서 본 포르투
저녁의 포르투 전경

 다시 보는 강의 전경, 아까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불빛으로 수놓은 다리와 마을, 어두워질수록 하나둘씩 켜지는 가로등. 낮에 왔을 때보다도 바람이 훨씬 많이 불고, 저녁이라 너무 추웠다. 야경 보다 감기 걸릴 뻔했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내일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에 더 오래 보고 싶었다. 전망대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야경을 보고 있는데 그 흥을 깬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단체 관광객이었다. 강과 다리까지 같이 예쁘게 나오는 난간에 한참이나 서있는 몽골 단체팀.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떠들면서 같은 자리에서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이내 거기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미 사진을 찍은 뒤라 다른 곳에서 구경을 했지만,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행복했던 감정이 또 금방 사그라들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뒤에서 구시렁거리면서 언짢은 티 내기 뿐. 물론 그건 이미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었다.

밤에 더 가까워진 포르투

  한참을 떠들다 야경이 시시해졌는지, 우르르 내려갔다. 처음보다 훨씬 어둠이 드리운 때에 고요함도 함께 찾아왔다. 다시금 바라본 포르투의 야경. 강 너머에서 가로등 밑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마저도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는다. 그들에겐 우리가 잘 보이지 않겠지. 


 가까이서 본다면 "민폐 관광객을 만나 기분이 언짢았겠군!", 

 멀리서 본다면 "저 위에서 보면 야경이 예쁘더군!"이라 하겠지. 


 잠깐 뿐인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겠다. 우리만 알고 있는 불편함이더라도, 그 작은 거슬림에 온 신경을 다하는 건 낭비다. 심지어 눈앞에 이런 풍경이 있는데도 말이다. 




 포르투가 이렇게 좋을 줄 알았다면, 3박이고 4박이고 넣었을 것 같다. 지금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포르투라고 단번에 얘기할 정도. 조용하고 소박하지만 흥이 있고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참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돌아보면 거슬렸던 부분이 참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때는 그걸로 언짢아하고, 기분 상해하며 여행을 했을까. 


 그래도 아쉬움보단 행복함과 만족감이 훨씬 컸던 포르투.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봐야지. 다음에 간다면, 작은 것에 너무 신경 쓰고 연연하지 않고 좋은 것에 집중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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