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lexity, aesthetics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칵테일.
에비에이션을 정의할 수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술을 굉장히 즐겨 마신다. 향에 항상 민감했던 나는 20살이 지나갈 무렵, 우연한 기회와 호기심에 이끌려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 세계 곳곳의 술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주’력과 경험치를 쌓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같이 숙취에 시달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부어라 마셔라하러 길을 나서는 그런 느낌은 아니고 주로 가벼운 나이트캡 느낌의 혼술, 혹은 홈술, 홈텐딩을 즐긴다. 그리고 자주 가는 단골 바가 몇 군데 있어서 그곳에서도 종종 마시는 편. 내가 그다지 가리는 술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향이 없는 술은 잘 찾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면 희석식 소주, 혹은 보드카 같은 술 말이다. 향이 없는 술은 자체의 퀄리티가 낮을수록 알코올 향, 다른 말로는 ‘부즈’가 지나치게 그리고 때로는 역하게 느껴질 정도로 튀고 그것을 가리기 위한 감미료가 첨가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향은 역한데 단맛만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싫다. 물론 고급 보드카는 얘기가 조금은 다르지만 무색, 무취, 무미의 술임에도 가격적인 면에서 메리트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비싸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어찌 됐든 선호하지는 않는 편. 나에게 술을 즐긴다는 것은 그 한 모금에 담긴 향과 원료의 정수를 즐긴다는 것의 동의어인 것 같다. 게다가 색감마저 아름답다면 입과 코 그리고 눈까지 즐겁게 하는 술이지 않은가? 그런 술은 주로 칵테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독보적인 색감을 자랑하는 칵테일이 하나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에비에이션’이 그 주인공이다.
먼저 에비에이션이라는 칵테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보면, 보시는 것처럼 위와 같은 색감을 지닌 칵테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업장에서는 저것보다는 색이 연하게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저 사진의 칵테일은 브랜디 베이스의 바이올렛 리큐르인 Rothman & Winter 社의 Crème de Violette를 사용했기 때문. 그럼에도 상당히 매혹적인 색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재료적인 측면에서 보면 진 사워와 유사한 면이 조금은 있지만, 계란 흰자와 설탕 시럽이 빠지고 그 자리를 제비꽃 리큐르인 크렘 드 바이올렛과 룩사르도 社의 체리 리큐르인 마라스키노 오리지날레가 대체한다. 부가적인 설명을 하자면, 몇몇 리큐르에 ’크렘‘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는데, Crème의 뜻은 우리가 생각하는 크림의 의미보다는 Rich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이해가 쉽다. 즉, 풍부한 재료의 함량을 지닌 리큐르라는 뜻이다. 사실 저렇게 아름다운 색을 표현해 주는 재료임에도 칵테일에서 바이올렛 리큐르가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적다.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아마 비싼 가격과 특유의 튀는 색감 그리고 맛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 게다가 아는 사람만 찾는 느낌의 술이라 칵테일에 진심인 바가 아니라면 계륵 취급을 받거나 외면받는다. 그래도 에비에이션은 대표적인 클래식 칵테일의 한 종류로써 꽤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칵테일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술이다.
에비에이션의 첫 등장은 1916년 발행된 Hugo R. Ensslin의 Recipes For Mixed Drinks에서 비롯된다. Hugo R. Ensslin은 당시 뉴욕에 위치한 Hotel Wallick의 헤드 바텐더였고 칵테일 크리에이팅에 있어 꽤나 정평이 난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최초의 레시피는 현대의 레시피와는 맛이 추구하는 방향이 전혀 달랐다. 당시의 레시피는 레몬이 주는 신맛이 메인이었다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레몬의 비중은 낮추고 체리와 바이올렛의 비중을 높여 칵테일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부각한 느낌. 비율에서 오는 차이 때문에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풍미를 자랑하게 되었으며 색감 또한 진해졌다. 결과적으로는, 나의 사견이지만, 재료의 Hint만 주는 칵테일에서 Scent를 남기는 칵테일로 탈바꿈한 셈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모든 칵테일이 그렇듯, 에비에이션 또한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블루 문’이 있다. 블루 문이라는 칵테일은 추후에 기회가 되면 꼭 소개하고 싶은 칵테일 중 하나. 꽃에 꽃말이 있는 것처럼 블루문이라는 칵테일도 나름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칵테일을 팔기 위한 상술에 불과한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잠깐 다른 쪽으로 새어나갔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찍어 뒀던 에비에이션을 감상하며 맛을 회상해 본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의 에스테르로 주무시기 전 에비에이션 한잔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