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다림이 주는 아름다움
아침 8시, 출근시간이 한창인 이른 아침, 중곡역 1번 출구 앞 신호등 사이 5M 피아노 건반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지나다닌다. 빠르게 걷는 사람도 있고 저 멀리서부터 긴 다리를 뻗으며 뛰어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호등의 선명한 불빛이 빨강인지, 파랑인지 신경 쓰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심지어 병아리 같은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메고 “빨간불이야! 엄마!”라고 외치는 어린아이의 말을 무시한 채 그 작은 손을 잡고 빠르게 뛰어 건너는 부모도 있다. 그 순간 출근이 바쁜 나 역시도 당연하게 '그냥 건너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다리는 바닥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무단횡단에 대한 경각심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정도의 작은 일탈은 ‘융통성’인 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엄연한 ‘범법’ 행위이다. 내가 사석에서 앞선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하실래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많이 나오는 답변은 전자에 가깝다. 물론 내가 본 횡단보도에는 파란불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융통성’을 선택한 듯 무단횡단을 한다. 이는 평일 오전 8시, 출근시간뿐 아니라 퇴근시간, 평범한 주말 오후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즉, 출근시간에만 한정되지 않고 평범한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항상 당연하다는 듯 무단횡단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그러고 있나?”라고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가슴 한 구석이 찌릿할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배우는 준법은 보통 신호등 빨간불에서 건너지 말고, 파란불에서는 손을 들고 주위를 살피며 건너는 것이다. 나 또한 역시 유치원 어린이집을 다닐 때 선생님 뒤를 따라 한 손은 짝꿍 손을 잡고, 한 손은 번쩍 들고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넜던 것이 생각난다. 28살인 지금, 길거리를 지나다 비슷한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고, 흐뭇하다. 어린 시절 ‘무단횡단 하지 않기’를 먼저 교육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선생님 입장에서도 설명하기 쉽고, 아이들 입장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그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기 쉽고, 지키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쉬운 것을 최근 들어 더 많이 지키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러는 것일까?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자. 3월로 들어선 요즘, 아침의 지하철은 출근으로 바쁜 직장인들과 개강한 학생들로 부쩍 만원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와서 지하철을 타야 지각하지 않고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 커피 한잔까지 하려는 여유를 부리려면 더 부지런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보다 30분 여유 있게 나왔지만 내 앞에서 열린 지하철 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꽉꽉 타 있었다. 나는 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고개를 들어 지하철 승강장에 있는 모니터를 쳐다봤다. 지하철이 어디쯤 있나 확인하는 화면에는 지하철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각 역마다 정차해 있었지만 지하철 3대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지하철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몇 정거장이 지나 나는 환승을 위해 어렵게 탄 지하철에서 내려야 한다. 내가 환승해야 하는 강남구청역은 항상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환승을 위해 줄을 서 있다. 그날은 특히 사람이 더욱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좁은 탑승장에는 사람들이 정말 질서 있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지각하지 않을까 급한 마음은 있었지만 질서 있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었고 당연하게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 하지만 그 차분함은 열차가 도착하기 전까지의 몇 분 안 되는 일시적 평화였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나자 질서는 없어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질서 있게 자기가 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민의식이 높은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일부 사람들은 지하철이 도착하자 줄을 무시하고 새치기하여 열차에 먼저 탑승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끼리 몸싸움이 일어났고 고함치며 다툼이 일어났다. 그 순간 질서는 무의미해졌고 다음 지하철이 도착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먼저 타려고 새치기를 하고 앞사람을 밀치고 밀며 사람들을 지하철 안으로 욱여넣었다. 얼떨결에 사람들에 밀려 지하철에 탑승한 나는 기분이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사람들한테 치이고 밀린 것에 기분이 나빴다기보다 사람들의 무질서함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 같다는 생각에 더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자신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욱여넣어진’ 사람들을 실은 지하철 안은 너무 붐빈 나머지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위태롭다’라고 느껴진 지하철 안 사람들이 급정거로 인해 일제히 쓰러졌다. 그 순간 ‘이태원 참사’가 생각났고,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넘어진 사람들을 도와 일으켜 세웠지만 기분 나쁘고 찜찜한 느낌은 회사에 도착해서도 계속되었다. 비이성적인 몇몇의 사람들로 인해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모두가 이기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새치기하지 않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것은 앞서 말했던 무단횡단 하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키지 않았다.
세상이 살기 힘들어지고 더욱 각박해지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여유 없이 더욱 급하게 행동하는 것도 맞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아니 쉽게 지킬 수 있는 작은 규칙, 준법들도 지키지 않는다면 각박하고 여유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이고 혼자 고립될 것이다. ‘이기주의사회’는 아주 오래부터 지적되던 사회문제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위험성에 대해 지금까지도 가볍게 넘기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사회문제’이기 전 ‘인간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급함’으로 다른 이들의 정당한 ‘차례’를 뺐으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성의 결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금 늦었다고 생각하거나 조금 급한 일이 있으면 좀 더 시간적 여유를 두고 나오면 될 일이다. 15분, 아니다 단 10분이라도 부지런하게 나온다면 여유 있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단 10분 때문에 아침부터 숨차게 횡단보도를 뛸 필요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새치기할 필요도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다투면서 감정 소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확신한다. 아침부터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순간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동안 자신의 기분은 항상 안 좋을 것이다. 기분 좋게 쇼핑을 해도 다음날 기분이 이유 없이 안 좋을 것이고, 저녁에 근사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어도 그 음식이 맛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굳이 자신의 일주일 기분을 단 10분으로 망가뜨리지 말아야 한다. 항상 ‘밝은 기분’으로 행복하게 살아도 부족한데 굳이 자신을 ‘저기압상태’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 간단하다. 앞선 두 상황과 같이 눈살이 찌 부려지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지 않기’를 실천했을 때 이러한 나 자신의 기분과 태도의 변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또한 변화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조금 더 좋은 나를 만들고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지키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하나씩 지켜나가면 된다. 평소보다 아침에 일찍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하지 않고 파란불이 될 때까지 기다려보고, 지하철도 새치기 하지 않고 질서 있게 다른 사람 뒤에 가서 줄 서보자. 내 마음 한편이 편해지고 스스로 나 자신을 성실하며 질서를 잘 준수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내 옆에 나와 같이 파란불 신호등을 기다리고 질서를 준수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나 스스로 뿌듯해서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소하고 작은 미소는 하루 종일 나를 기분 좋게 만들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질서를 잘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이는 나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 것이고 내 주변 또한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나는 카페에서 글을 마지막으로 다듬고 있다. 그리고 글을 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하루 일정을 끝내고 집을 갈 것이다. 나는 집에 가는 미래의 나를 상상해 본다. 지금의 나는 1시간 뒤 미래의 내가 5M 신호등 앞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젠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더불어 나는 지금 나도 모르게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대답한다.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다고. 덧붙여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으면 한다.
-류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