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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 Nov 24. 2015

지우에게

첫번째 편지

나의 사랑하는 딸, 지우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이 공간을 만들어 두고 내내 쓰지를 못했구나.

나에게 여분의 시간이란 네가 잠들었을 때, 버스를 타고 하는 1시간 여의 출퇴근길에서 뿐인데 고인 이야기를 어디서 어떻게 해얄지도 모르겠고, 왠지 하늘에 계신 너의 외할머니에게 먼저 편지를 써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러자니 버스 타고 가는 길에 눈물이 터질지도 모르겠고.. 여러가지 이유로 미루다 이제야 편지를 쓴다.

오늘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아침에 어린이집 등원길에 다른 반 언니 오빠들 모두 견학을 간다고 문에서 쏟아져 나오던데 너도 따라 가고 싶었던건지, 문앞에서 많이 울었지. 평소 즐거운 걸음으로 등원해왔던 터라 내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니까 선생님이 괜찮다고, 엄마가 있으면 더 오래 운다고 빨리 가라고 하셔서 돌아나오는데 마음이 많이 안 좋았어. 이런 날이면 더더욱 내가 이렇게 작고 여리고 엄마가 필요한 너를 두고 무얼하고 있는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우리는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진단다.

엄마는 엄마의 일을 이어나가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는데, 과연 이게 잘하는 일일까 요즘 자꾸 헷갈려.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데, 커 가는 순간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는데, 그렇다고 엄마가 지우를 낳기 전의 '나'를 모두 놓자니 걸어보지 못한 길을 선택하는 거라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 사실 나는 이렇게 내내 갈등하면서 원래 하던 일을 놓지 못할 거란 것도 잘 알고 있어. 욕심대로라면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너와 함께 보내고 싶은데, 세상에 그렇게 맘대로 되는 일 있겠니. 이럴 때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렇게 밀고 나아가고 있는 것이 잘 하고 있는, 나의 엄마, 하늘에 계신 너의 외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고 안타까워. 엄마, 내가 태어나면서 자라는 내내, 나의 곁에 있어주었던 우리 엄마라면 어떤 대답을 해줬을까. 늘 끝까지 일을 놓지 마라, 아이는 하나만 낳아 키우라며 '나'를 잃지 않길 강조했던 엄마는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면서 어떤 기쁨과 슬픔을 느꼈을까.

조금 있으면 집에 가 너를 안을 수 있겠구나. 어제는 현관 앞에 서서 "엄마 왔네!" 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는데, 오늘도 그렇게 나를 반겨줄거지? 사랑하는 나의 딸, 조금 있다 보자.

11월24일 흐린 날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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