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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a Jul 09. 2023

01 프롤로그

팔순 부모님과 유럽여행 ✈ 느리면 어때? 덜 보면 어때?

프롤로그


아빠 팔순 잔치를 위해 만든 플랜카드. 사진은 엄마 칠순 때 쵤영한 리마인드 웨딩 사진.


사건의 시작은 아빠의 팔순을 한 해 앞둔 생신 때였다. 

“아빠, 내년이 팔순인데 받고 싶은 선물 생각해 두신 것 있으세요?” 

그러자 대뜸 하시는 말씀이 “패키지가 아닌 네가 하는 여행 있잖아... 그런 자유여행을 하고 싶어, 너랑...”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아빠는 이런 사람이었지.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에 있어서는 분명하게 당신의 의사를 표현하시는...’ ㅠㅠ 

아빠 칠순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 올해가 칠순인데 받고 싶은 선물 있으세요?” 그러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임플란트 하고 싶다.”고 하셨던 분이셨으니까... 

워낙 눈도 높은데다 까다로워 의사를 묻지 않고 선물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굴에 바로 표가 나는 투명(?)하신 분이기에 우리 가족은 아예 아빠에게는 대놓고 물어보는 편이다.

그렇기에 이번 팔순을 앞두고도 이왕이면 필요하신 것 해드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물어본 것인데... 이런 답변이 올 줄이야~~ㅠㅠ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빠는 당신의 속내를 여러 번 드러내셨던 것 같다. 예전부터 배낭여행을 떠나는 나를 늘 부럽게 생각하셨던 아빠... 한 번은 당신도 나처럼 더 늦기 전에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며... 70의 나이에 혼자 배낭을 메고 전라도 목포를 거쳐 제주도 올레길을 일 주일간 다녀오신 적도 있는 아빠였다. 

몇 년 전 부모님 두 분을 유럽 패키지 여행을 보내드린 적이 있는데, 다녀오신 후 좋았냐는 질문에, 엄마는 “자식 덕분에 너무 좋은 구경했다.”며 좋아하셨던 반면, 아빠는 “다음에는 너희들과 함께 가는 자유여행이 아니면 패키지로는 안 갈란다.”고 하셨던 아빠였다.      


“너랑 자유여행 함께 가고 싶어.” 이 말에 엄마가 얼른 한 술 거든다. “우리 일본에서 렌트카로 다녔던 거 너무 좋았잖아. 패키지는 솔직히 노인들이 다니기에 일정이 너무 빡빡해 힘들어. 아빠가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시는 것을 보면 이번이 아무래도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다. 우리 딸이 좀 고생하면 안 되겠어?” 내가 생각할 때 아빠보다 엄마가 더 가고 싶은 것이 틀림없다. ㅋㅋ  


부모님과 조카가 함께 한 일본 큐슈 자유여행. 이 여행에서는 70이 넘은 부모님과 초딩과 중딩 조카를 다 만족시키는 여행을 준비하느라 고생 좀 했다. ㅠㅠ


까지껏 가지 뭐~~~이래뵈도 부모님과 초딩 조카들을 함께 데리고 렌트해 일본자유여행을 한 경험도 있고, 초딩과 중딩 조카 네 명만 데리고 일본여행을 다녀온 경험도 있지 않은가!! 그때도 주위에서는 너무 무리가 아니냐고 염려했으나, 그런 염려를 무색하게 할 만큼 아무런 사고 없이 성공적인 여행 경험이 있는 내가 아닌가...    

빌바오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탑승 모습. 이번 여행은 여러 번의 비행기와 렌트카 등 많은 거리를 이동한 장거리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분명 많은 차이가 있다. 4박 5일의 짧은 일정이 아닌 2주간의 긴 여정... 여행 동선에 있어서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장거리라는 사실... 그중 가장 큰 변수는 부모님이 이제는 많이 연로하신 80의 노인들이라는 사실... 아무리 널널하게 짠다고 하더라도 과연 부모님이 2주 가량을 아무 탈 없이 잘 다닐 수 있을까? 아무 사고 없이 무사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다른 형제들이 다 만류한다. 가까운 동남아를 갔다 오는 것은 몰라도 장기간의 유럽여행인데다... 자유여행은 너무 무리가 아니냐는 염려가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행은 감행해야 했다. 이건 어쩌면 아빠가 그동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진정한 버킷리스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그리고 결정적인 엄마의 한 마디는 나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아빠가 하루가 다르다. 기억력도 자꾸 떨어지고... 말수도 점점 줄어들고... 아마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그러니 우리 딸이 좀 고생스럽더라도 우리에게 좋은 추억 만들어주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안 갈 수가 있는가? 무조건 가야지~~~


김밥 맛이 어떻냐는 질문에 아빠 왈 ~~~ 무슨 소리냐구요? 입안에 김밥이 있어서 말을 못 하겠다는 말씀... 모두가 빵~ 터졌답니다. ㅋㅋ


이미 아빠는 가고 싶은 곳도 생각해 두셨다. 바로 뉴질랜드... 패키지 여행에서 만난 일행들 중 한 분이 뉴질랜드가 너무 좋다고 극찬을 하셔서... 

하지만 우리의 최종 여행지는 스페인과 프랑스로 정해졌다. 그 이유는 바로 둘쨋딸이자 수녀님의 합류로 인해... 수녀원에서 특별히 허락을 해주셔서 함께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수녀님이랑 함께 가는 여행이라 자연이 아름다운 뉴질랜드에서 가톨릭 성지가 많은 스페인과 프랑스로 여행 일정을 바꾼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에게도 아주 생소한 뉴질랜드보다는 이미 한 번 여행을 다녀온 장소인 스페인과 프랑스를 가는 것이 훨씬 더 예측이 쉽고 위험 부담이 적다는 것도 여행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아빠에게는 “성지순례를 가는 조건으로 수녀원에서 보내주신거야.”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지만... 

아빠는 기대도 안 한 둘째딸도 함께 간다는 것이 마냥 좋으셨던지 여행 목적지 따위는 더 이상 안중에 없으셨다. 두 딸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나라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딸들과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지... 


여행을 다녀온 후 사진을 정리해보니 아쉬운 점이 네 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 별도 없다는 것. 몇 장 되지 않는 모두가 나온 사진. 이곳은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옹플뢰르.

     

나는 여행 10개월을 앞두고 과감히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또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이 비행기표 못 바꿔요. 지금부터는 숙소부터 시작해 하나 하나 예약할텐데 만약 엄마, 아빠가 몸이 안 좋아 여행을 못 가는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는 천만원 넘는 금액을 고스란히 날리는 거예요. 그러니 두 분은 여행 가는 날까지 건강에만 각별히 신경 쓰셔야 해요.”라고 반협박까지 잊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부모님은 10개월 동안 행복하게 하루 하루를 마음 설레며 보내셨다. 

한번씩 부모님 집에 가는 날이면 예약한 숙소도 보여드리고 갈 여행지에 대해서도 미리 보여드렸다. 그럴 때면 마치 소풍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아이마냥 좋아하셨다. 

아빠와 엄마는 나의 협박성 거짓말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며 그 어느해보다도 건강관리에도 신경 쓰며... 나를 볼 때마다 얼마 남았다... 손꼽아 여행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팔순 부모님의 소원 프로젝트인 유럽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누군가 나에게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일을 꼽을 것이다. 만약 이때 주위의 만류로 가지 않았다면...? 닥칠 어려움을 염려해 선택을 미뤘다면 어땠을까? 지금쯤 아마도 후회로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우리가 여행에서 귀국한 날이 2020년 1월 14일이다. 그로부터 일 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었다. 2년 넘게 여행은 봉쇄되었고, 아빠는 여행 다녀오신 후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파킨스병으로 진단 받으셨고, 엄마는 지난 1월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지금은 두 분다 재활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엄마는 여행 다녀온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만나면 여행 이야기부터 하신다. “아직도 가끔 그때의 꿈을 꿔. 그 집 생각나니?”라며 이야기를 푸신다. 아마 남은 생애 두고 두고 떠올릴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인 <느리면 어때? 덜 보면 어때?>에 걸맞은 사진.  옹플뢰르의 성 카트렌 성당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계신 엄마. 아마 기도를 청하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벽난로 앞 여유롭게 쉬고 계신 아빠. 이때 두 딸들은 뭐하고 있었을까? 막내딸은 짐 푼다고 난리, 둘쨋딸은 저녁밥 한다고 난리~ 이번 여행에서는 두 딸들은 바쁘고, 부모님은 널널~


여행 다녀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난 <팔순 부모님과 유럽여행_ 느리면 어때? 덜 보면 어때?>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부모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의 이야기가 담긴 여행책을 마지막 선물로 드리고 싶다.     

지금부터 펼쳐질 이 여행기에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며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다섯 명의 자식들을 어떻게 대학공부까지 시키셨는지... 그 과정에서 아낌없이 드러난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 이야기도 함께 담고자 한다. 당신의 삶을 온전히 자식들을 위해 내어놓으신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에 감사드리며 이 여행기를 두 분께 바치고 싶다.  


엄마 칠순 기념 리마인드 웨딩사진. 처음엔 "다 늙어 무슨 웨딩촬영을 찍냐?"며 귀찮아 하시더니, 찍고 나서는 안 찍었으면 후회할 뻔 하셨다며 두고 두고 보시는 사진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우리를 마냥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더 이상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어도 해드리지 못 하는 날이 옵니다. 
그때는 후회를 해도 소용 없습니다.
지금... 바로 지금...
부모님의 소원 프로젝트 한 가지를 실현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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