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부모님과 유럽여행 ✈ 느리면 어때? 덜 보면 어때?
앞으로 펼쳐질 낯선 여행이 궁금해진다.
여행의 성공 비결이 들어 있는 24인치 캐리어
유럽에서 내 집처럼 밥 먹기
여행 일주일 전... 드디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동안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적은 체크리스트를 펼쳐놓고 폭풍 온라인 주문을 시작한다. 엄마가 카톡으로 “뭐가 자꾸 배달된다고 문자가 오네. 뭘 그리 많이 주문한 거니?” “배란다에 차곡차곡 쌓아 두세요. 제가 여행 전날 가서 짐 쌀게요.”
도대체 뭘 그리 많이 주문했냐구요?
짜잔~~~
이것이 바로 이번 여행의 성공 비결이 들어 있는 24인치 캐리어...
토종 한식파인 엄마를 위한 특별한 여행 미션
유럽에서 내 집처럼 밥 먹기
이것이 바로 20인치 캐리어 세 개에 4명의 짐을 싸고... 가장 큰 24인치 캐리어는 온전히 한식 재료로 가득 채우게 된 배경이다.
여행 하루 전날 부모님 집에 가니 내가 주문한 것이 산더미다. ㅋㅋ 아빠는 뭘 그리 많이 가져가냐고 하신다.
“아빠, 엄마 기억 안 나요? 전에 두 분 유럽 여행 가셨을 때 아침으로 드시라고 2인분으로 준비해드린 한식을 엄마 혼자 다 드신 거...”
그렇다. 엄마는 이렇게 위(?)대한 분이시다.ㅋㅋ 패키지팀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셨던 아빠는 그 팀에서 현지식을 가장 잘 드셔 주위를 놀라게 한 반면, 엄마는 좀체 입맛에 맞지 않아 식당에선 조금 드시고 아침, 저녁으로 숙소에 돌아와 내가 준비해드린 라면포트를 이용해 누룽지와 함께 한식을 드신 분이다.
또 몇 년 전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간 일본 자유여행 때도 그랬다. 물론 내가 외국에 가면 철저하게 현지식을 먹는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우리랑 식성이 비슷한 일본이라 전혀 한식은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그런데 4박 5일간의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 일본의 유명한 라멘집을 가려던 나에게 “오늘은 한식을 먹으면 안 되겠니?”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차 했다. 여행 후에 엄마는 일본 여행이 너무 좋았는데, 단 하나 음식이 조금 힘들었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까...
이 두 번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24인치 캐리어에 온갖 한식 재료를 가득 채우게 한 배경이 된다. 이번 여행은 80이 다된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유럽여행으로, 철저히 나의 여행 스타일을 버리고 부모님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 그런 내가 생각한 이번 여행의 성공 첫 번째 열쇠가 ‘음식’이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도 내 집처럼 밥 먹기’라는 미션으로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운다.
아침은 무조건 한식으로 밥 먹기
점심은 현지식
저녁은 일 주일에 2~3회 수퍼마켓에서 현지 재료를 구입해 현지식과 한식을 병행할 것...
그렇게 끼니를 계산하고 그에 맞춰 주문을 하다보니 24인치 캐리어에 차고 넘친다. 온 몸을 던져(ㅋㅋ) 캐리어 위에 올라가 눌러야 겨우 지퍼가 닫힐 정도...ㅋㅋ 그중 쌀을 3㎏ 가져 갔는데, 그것도 엄마가 “스페인 쌀로 지은 밥도 먹어보고 싶네...” 하셔서 3㎏지, 그 말씀이 없으셨다면 5㎏를 가져갔을 지도 모른다.ㅎㅎ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럽에서 내 집처럼 밥 먹기” 미션 성공~~
나는 솔직히 그 지역에서 먹어보고 싶은 것도 많아서 아쉬움도 있었지만, 엄마가 대단히 흡족해 하셨다. “그러면 됐지...뭐~~~~ㅠㅠ”
엄마에게 있어서 장기간의 유럽여행에서 가장 걸리는 것이 음식이라면, 아빠에게는 화장실 문제이다.
몇 년전 두 분이 유럽 패키지 여행을 다녀오신 후 아빠가 다시는 패키지 여행을 안 가겠다고 꺼리는데는 화장실도 한 몫을 했다. 연세가 있으신데다 전립선이 좋지 않아 아빠는 소변을 잘 참지 못 하신다. 빡빡한 패키지 여행에서 한번 버스를 타면 3~4시간을 족히 가야 하는 상황에다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처럼 화장실이 없는 곳이 많아 다니면서도 늘 스트레스를 받으셨다고 한다. 물은 될 수 있으면 잘 마시지 않으면서... 그렇게 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이동에 그만 결국 참지 못 하고 버스 안에서 실수를 범하셨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론 여행을 꺼리셨던 아빠다.
그런 아빠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줄 비상의 성공 아이템을 마련했으니... 바로 휴대용 소변기...
여행 보름 전 미리 구매해 아빠에게 보여드렸더니 너무 신기해 하신다. 하나를 뜯어 제품을 보니 주머니 안에 모래 같은 것이 담겨 있다. 물을 부으니 이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며 뭉치는 것이 아닌가... 아하~~ 고양이 배변 모래의 원리구나... 우리 모두는 박수를 쳤다. 이제 안심하고 물도 원할 때 마음껏 마시며 아무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다고...
이 소변이 약간의 심리적 요인도 작용을 했는지 아빠는 가져간 휴대용 소변기를 한 개만 쓰고 고스란히 남겨 왔다. 물론 두 딸이 화장실이 보일 때마다 “아빠, 화장실 다녀 오세요.”라고 챙겨 드린 것도 있지만, 자유여행이라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휴대용 소변기가 있어 언제든 원할 때 볼 일을 볼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지 않았을까...
캐리어 안에 들어 있는 온갖 물건들이 낯설다. 혼자 여행하면 절대 챙기지 않았을 것들이 캐리어 안에 가득하다. 이런 낯선 물건처럼... 앞으로 펼쳐질 우리들의 여행도 이렇겠지... 혼자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나의 여행 패턴에서 한참을 벗어난 그런 낯선 여행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캐리어 안의 낯설음이 싫지 않다. 낯설음에 대한 거부 반응이 아닌...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빠, 엄마, 언니와 함께 하기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 펼쳐질 낯선 여행이 궁금해진다.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