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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y C Nov 21. 2023

창작 또는 기술

예술과 산업 사이에서

Real & Mimesis


창조된 생명 그리고 만들어진 물건


'normal woman' 2008


어려서부터 그림만 그리다가 미술 전공자가 되었고 미술가로 삽니다.

부자 집에 태어나 풍족하게 지원받으며 그림을 그렸다면, 디지털 스킬을 습득하거나 컨셉 아티스트 경력을 가지거나 하지 못했을 텝니다.

가진 것 없이 그림만 그리다 보니, 게임개발 회사를 10년이나 다니며 적성에도 안 맞는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그 기간에 그렸던 그림들을 어쩌다 들춰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아무리 그렸다 해도 어쩜 그렇게 졸작들만 렸는지.... 쩝

사람 사귀고 눈치 보는 일에 서툴다 보니 오해나 비난도 흔하게 받았고 정신적 심리적 폭행도 당해봤습니다.

세상 속에서 필자는 그냥 바보 호구였습니다.


변덕도 아주 심합니다.

연필이나 펜으로 그림 그리다 보면, 붓으로 색을 칠하고 싶어 지고....

컬러 페인팅을 하다 보면, 흙으로 조형을 하고 싶어 지고.....

흙으로 모델링을 하다 보면, 나무나 돌로 조각을 하고 싶어 집니다.

그림이나 조각이 다소 식상해지면, 뭔가 또 다른 형식은 없나? 하고 찾는 게 필자입니다.


'긴장' 연필, 2015
'San Francisco' 유화, 2013
'폰티우스 필라투스'  유토, 2014


그런 작업들을 반복하다가 새로운 형식으로 접한 것이 '디지털 페인팅'이었습니다.

신입 때는 버벅거리는 저사량 컴퓨터로 그리면서, 어서 빨리 고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랬었습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엄청난 고퀄리티의 컨셉아트들이 온라인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세계를 도배하기 시작했는데, 필자는 어쩐 일인지 뜻대로 고퀄의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요구하는 그림이 저사량 게임의 원화들만 오더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가졌던 스킬과 컨셉에 맞는 아이디어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R&D 과정 없이 필요에만 맞춰 그리다 보니 그리된 것이기도 합니다.

뭐~ 다른 변명거리나 이유들은 아무렇게나 만들기 나름입니다.


그래서 억지로나마 시간을 내어 고퀄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쓸데없이 시간 낭비만 는 일도 많았습니다.

욕심이 앞서서 번번이 그림을 망치는 일상이 반복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에서는 창의성이나 작품성 같은 것들이 급속도로 사라져 갔고, 돌파구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작품 그리고 상품'에 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normal woman' 평범한 여자를 그려봤습니다.

과학 기술은 발전해서 예술성을 초월하는 창조적 기술력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같은 것들이 사람의 육체까지 침범해서 만화에서나 보던 슈퍼 인간이 평범한 존재로 세상 가운데 자리매김 하게 될 것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서 그린 니다.


언젠가는 양자 물리학을 뒤적거리다가 '양자 컴퓨터에 의한 순간이동 기술개발 가능성'을 담은 영상을 봤습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기억나는 대로 말을 맞춰보면, 원자[양자?] 단위로 사람을 분해시켜 데이터화하고, 다른 장소에서 그 데이터를 재생시킨다는 겁니다.

즉, 사람이 온전하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서 사람이 분해되어 사라지고 데이터화되면, 다른 쪽에서 그 데이터 대로 다시 복제해서 결과적으로 사람이 순간이동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실체는 죽어버리는 거잖아. 그 데이터만 있으면 무한 카피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또 귀찮기도 해서 그냥 물음표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김광석 형님 목소리로 AI가 부른 김광진의 '편지'를 듣고 받은 충격이 아직도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옥주현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룬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재생시켜 놓는 습니다.

AI가 그린 빈센트 반 고흐 스타일의 그림을 보면서 밀려오는 당혹감에 몸서리치기도 했습니다.

고등어가 그림을 배우고 있을 때 고흐 스타일을 흉내 내어 자화상을 그렸었습니다. 고흐의 기법은 따라 하겠는데 인상적 느낌은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AI는 그걸 하고 있었습니다.

나름 미술 전공자로 자부하는 필자의 눈에도 정말 고흐가 그린 것인지 아닌지 분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존심이 상해 이미지 스샷 받아 확대 분석해 보니, 기계적인 붓터치가 관찰되었고, '그럼 그렇지'라며 구차한 안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흔히 정신승리라고.... 쩝

정말 스페셜한 각종 영역의 대가들의 예술성, 작품성, 창의성이 이제는 평범한 제품이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이 사람의 예술적 창작의지를 말살시키게 된다 할지라도 필자는 큰 걱정하지 않습니다.

충격은 받고 그 놀람에 어리둥절 당황할지라도, 창작자로서의 자존감이 상처를 받을지라도, 그 절망감이 영구적이거나 재기불능일 라는 염려 따위는 하지 않는 니다.

나는 사람이고 AI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물건과 다른 것은 실패와 성공을 오간다는 것이고, 좌절에 빠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인데, 물건은 고장 나면 고쳐주지 않는 이상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자동으로 고치는 앱과 하드웨어가 보편적으로 상용화되고, 심하게 말해 기능을 가진 물건이 영구적인 기능 수행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그 과정은 '사람의 절망과 재기'와는 전혀 그 가치가 다른 것입니다.

혹시 언젠가 AI 때문에 지상에 사람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에게는 모방될 수 없는 생명이  있고, AI에게는 미메시스만 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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