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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청서 Oct 04. 2024

조각글, <여름 식사>

夏日飾詐





“눈이 부시게

햇살이 내리쬐는 날입니다”

‘눈이 부시다는 핑계로

눈가를 쓸었습니다’

 

“제 소중한 동반자 선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소중한 반려자가

타인의 손을 잡고 있네요’


“어울러 지내는 평생

행복하시고”

‘당신이 보낼 평생이

저와의 지난날을 덮기엔 턱없기를’



“눈 부신 오늘,

축하드립니다”

‘쓸었던 눈가에 맺힌 눈물

당신이 뵙고 역겨웠으면’



큰따옴표와 작은따옴표에는 의식적인 차이가 있다. 원초적인 욕망을 나름 구겨 게슴츠레 뜬 것이 작은따옴표 안에 들어있다면, 원초적 의식을 경련 된 입꼬리에 걸고 입을 멍청하게 움직이고 있다면 큰따옴표를 펼친 것이다. 눈이 부우셨던 여름에 내뱉은 말은 큰따옴표였음이 분명했다. 저의 반려자, 사실은 그저 동반자였던 그녀의 결혼식에서, 자극적인 작은따옴표가 내비쳐졌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 심욕이자 야욕이요, 역스럽기 그지없는 거북함이었으리라.


“비약이야, 씨이발”


결혼식 축사자의 입에서 나오기엔 한심한 말이었다. 흰 복장에 부케까지 들고 내뱉을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깎을 때를 놓쳐 길러진 손톱 위가 하얬다. 양쪽 팔이 서로를 감쌌다. 손이 아래팔 위로 포개어졌다. 흰 복장과 하얘진 손톱이 한 쌍의 액세서리 마냥 어우러졌다. 여름이라며 말도 안되게 따뜻했다.


여름이라 하면 일광에 화장이 다 녹아 끈적해지거나 장맛비가 억세게 내려 면사포쯤은 추적추적 망쳐야 정상인 것인데.


역시나 결혼식 축사자의 발상이라기엔 거북했다. 아래팔이 군시러웠다. 교양은 이미 하얘진 손톱에서 버렸다. 땀에 절은 것은 자신의 피부결 뿐이었다. 하얘진 손톱으로 직, 직 긁자 피부결에도 하얀 선이 그였다. 거무스름한 양심에 부합하는 표식이었다. 본디 밝은 것은 어두운 중에서 더욱 빛나는 법이다. 하얀 선은 이내 붉게 옮았다. 손톱 끝자락에 하얀 잔해를 남긴 채. 그러다 오분 지나서는 원래 자신은 실재하지 않았단 것처럼 사라졌다.

동반자는 원래 그런 거다. 법적으로 묶인 끈적한 사이는 동반자도, 반려자도 될 수 있지만은, 그저 시시덕거리며 저 애인과의 이야기를 짖껄이는 걸 들어줄 수밖에 없는 자신은 동반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반려자라고 호칭하진 못한다. 동반자는 언젠가 사라지는 거다. 감정을 쏟아내며 직, 직 댈 순 있을지라도 언젠간 사라진다. 결혼식에 흰 복장 입고 들러리 할지언정 검은 복장 못 입고 서약은 못 하는 게 동반자다. 당신이 보낼 평생이 저와의 지난날을 덮기엔 턱없기를. 평생을 약속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숨 하나하나 화 입기를.

점점 숨을 쉬기가 귀찮았다. 턱 막힌 가슴 구멍이 횡격막의 팽창을 막았다. 거칠한 감각이 기도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성가시게 굴었다.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의식하다 보면 숨을 쉰다는 것이 매우 귀찮아 견딜 수가 없었다. 주변의 무엇도 신경쓰이지 않고 감각적으로 주위가 뿌얘졌다. 그제서야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인위적으로 공기를 폐로 욱여넣었다. 그럴 때면 텁텁한 폐를 환기시키는 상쾌한 감각에 환상에 빠지다가도 금세 수축되는 횡격막에 또 한 번의 진저리를 느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감당하기 귀찮은 자괴감이 뇌리를 덮쳤다. 그러고는 비약이야, 비약이야 하며 뜻이 엇나간 단어를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대가는 생각보다 불쾌했다. 터무니없는 저주는 저에게 돌아와 수렁을 보였다.





[飾詐]

“눈이 부시다는 핑계로

눈가를 쓸었습니다”

 

“제 소중한 반려자가

타인의 손을 잡고 있네요”


“당신이 보낼 평생이

저와의 지난날을 덮기엔 턱없기를”


“쓸었던 눈가에 맺힌 눈물

당신이 뵙고 역겨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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