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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Nov 30. 2023

왜 인문학인가?

인문학이 진짜 무서운 이유

왜 인문학인가? 왜 문화예술인가? 사실 인문학이 밥 먹여주는 것 아니고, 문화예술이 밥 먹여 주는 것 아니다고 한다. 인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한다. 아니 인문학이, 문화예술이 밥 먹여준다고 생각한다. 왜 밥 먹여주는 것일까. 인문학은 기초체력이니까. 기초체력이 든든해야 뭐든 할 수 있으니까.



운동선수가 본업의 운동을 잘하기 위하여 바로 본업을 하지 않는다. 축구선수가 바로 축구공으로 슛 날리는 것을 하지 않고, 농구선수가 바로 드리블해서 슈팅을 날리지 않는다. 한 골 더 넣고, 한 골 더 막기 위하여 근력운동을 하고, 유산소 운동을 한다. 기본기가 단단해야 한 골 더 넣고 이길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 국대 양궁선수들의 훈련을 기사로 접한 적이 있다.  마음수련명상으로 심리훈련을 하고, 잠실 야구장과 고척돔에서 훈련을 하기도 한단다. 주변의 시끄러운 환경에서 오롯이 활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또 여러 변수에서 순간적인 판단을 잘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렇듯 본업의 운동을 잘하기 위하여 이렇게 기초 체력을 다진다.



어디 운동선수뿐일까. 배우나 가수들도 연기를 잘하기 위하여 발성 연습을 한다. 이 역시 기초 체력이다.



이렇게 기초체력이 중요하다. 인문학이 바로 기초 체력이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이고. 요즘 자기 계발서들 많이 읽고 많이 팔린다고 한다. 자기 계발서가 나쁘다는 이야기 아니다. 자기 계발서 열 권 읽으면 그 사이 적어도 한 권은 인문교양서나 예술서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그 자기 계발서도 스며든다는 생각이고, 남의 성공법칙이니 방법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취사선택하여 나에게 맞는 적합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인문교양서나 예술서가 어렵다면 가벼운 소설이라도 읽어야 한다.



왜 소설이냐고? 사실 소설은 작가의 상상세계를 무한정으로 경험할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삶에서 극한의 어려움도 볼 수 있고, 극한의 버티기나 뛰어넘기를 통하여 자신을 챙기는 것도 소설에서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타인이 행하는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관계의 허상 혹은 진심을 볼 수 있다. 일종의 인생 리허설을 미리 한다. 그래서 소설도 중요한 장르이다는 생각이다. 90년대에 비하여 소설이 덜 나와서 안타깝기도 하다.



문화예술도 비슷한 맥락이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덕분에 그들의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다. 특히 솔로로 활동한 리더 RM이나 래퍼 슈가의 솔로 음반 <인디고>와 <D-day>를 들으면 이것은 음악이다는 고유 영역을 넘어서 인문학과 사회학이다. 그래서 전 세계 아미(팬덤명)들이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왜 좋아하느냐 하면 메시지 때문이라고 한다. 그 메시지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다.



RM의 솔로 앨범 <인디고>의 첫 곡은 “Yun”이다. 우리나라 성의 ”윤“을 뜻한다는 것은 곡을 듣고 검색해 보고 알았다. 음악 사이사이에 웅얼웅얼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 처음에는 음반이 불량 온 줄 알았다. ”욕심을 버리고, …“ 가사에는 ”그는 말했지 늘, 먼저 사람이 돼라 “라고. 여기 “그”는 윤형근 화가이다. 사실 잘 몰라서 찾아봤다. 기하학 추상화로 유명한 화가였다. RM 김남준이 앨범에 동봉해서 보내준 엽서들이 그의 작품이라고. 김남준의 음악을 들으면서 미술 작품을 봤고, 그가 전하는 음악의 메시지에서 굵직한 인문학 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인문학 사유가 있다면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인문학이 진짜 무서운 이유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했고.



음악을 하는 김남준도 평소 책을 많이 읽기로 소문나 있다, 인문학이나 예술서를 많이 읽는데 음악 창작의 기초체력이 인문학 읽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 인문학이고, 왜 문화예술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삶의 기초체력이다는 생각이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유연해지는 훈련이 결국 인문학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먹고사는 일을 잘하려면 자신의 단단함이 있어야 하고, 힘들 때 쓰러지지 않는 자아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인문학이라는 생각이다. 또 다른 쉼표의 한 부분은 문화예술이고. 단단한 자아, 유연한 사고, 그것을 만들어주는 것이 인문학이 한 부분을 차지한다면 인문학이 진짜 무서운 이유가 이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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