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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May 05. 2024

창가 자리 앉으면 생기는 일

순간의 선택들

1. 용산역에서 기차 타고 내려가던 객내. 나는 어김없이 방탄 음악을 봤다. 군대 가기 전에 완전체 마지막 공연. 부산 Yet to come 공연 실황. 이어폰을 꽂았다. 음악이 좀 새어나갔나. 건너 옆 자리에서 초등학생 남자아이 한 명이 나를 쳐다보더라. 아, 음악이 크구나 싶어서 얼른 줄였다. 그 순간 아이 눈빛이 실망으로 변했다. 이 녀석 꼬마 아미구나.


방탄 팬, 아미들 중에서 초등학생 팬들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특히나 남자아이 팬들이 제법 있다고 하더만 그 실체를 보는구나 싶더라. 새어나간 음악에 순간적으로 낯빛이 환했다. 그러다 음악 소리가 줄어드니 완전 실망하는 게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내가 하필 창가 자리를 앉아서 별반 해 줄게 없네.


그렇게 용산에서 오송 오는 동안 아이는 나를 계속 바라보고 건너 옆자리라 영상이 가시권에 안 들어올 텐데도 내 폰 화면을 어떻게라도 보려고 눈의 방향을 자꾸 모아갔다. 하필 오늘 창가 자리를 앉아서 뭐 별반 할 게 없네. 엄마에게 이어폰 안 가져왔다고 살짝 짜증 내더라고. 또 핸드폰 못 보게 해서 또 짜증도 내고. 아마도 데이터가 문제겠지. 그래 아미 맞구나, 하는 심증적 확증을 하면서 나는 쓸데없는 마음의 부심을 안고 음악과 영상을 즐겼다. 헤헤.


2. 오송역에서 집으로 가는 광역버스. 토요일이라 자리가 널널하다. 그래도 답답하다. 자리 촘촘한 광역버스보다 창문 열리는 일반 버스가 낫다. 이런 생각하면서 창가 자리 머리 기대고 집으로 행했다.


중간쯤 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타고 있었다. 아 창가 자리 내릴 때 나가기 힘들겠다 싶어서 냉큼 앞자리로 옮기면서 복도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몇 정거장 지나 어떤 사람이 탔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음성 메시지가 났다. 주섬주섬 다른 뭔가를 하더니 다시 태그. 그 시도를 서너 번 했다. 운전기사님은 쓰다 달다 말이 없었다. 그렇게 여러 번 태그를 하는 동안 계속 나오는 메시지는 동일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그 사이 한 정거장 지났다. 사람들이 또 탔다. 운전석 옆 앞에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 입장에 불편을 준다. 그런데도 어정쩡하게 서서 또 태그를 한다.


이때부터 나는 내 가방 안에 손을 넣어 지갑을 찾았다. 내 지갑이 내 손에 닿을 때까지 내리지 말라는 주문을 하면서. 승객이 다 타고 차가 출발할 즈음 내가 일어나서 태그 했다. 폰에 들어있는 카드는 내가 이미 버스비로 낸 카드이니 다른 카드가 필요했다.

“이것으로 할 테니 뒤에 자리에 앉아요”라고 말했다. 깨알 같은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하고 다시 내 자리 돌아왔다.


그런데 자리에 안 앉고 몇 초간 서 있다. 몇 초, 몇 분이 지나 자리를 잡아 앉았다. 내 앞을 몇 초간 지나갔는데 중학생쯤이구나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린데 모자를 쓰고 마스크는 코 위까지 다 덮고 쓰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나 싶은 생각. 그러거나 말거나 여하튼 목적지까지 잘 가라. 대전까지 나가면 아마 내릴 때 몇 백 원 더 내야 한다. 그래서 또 태그 해야 하는데 그것은 알아서 내리겠지 뭐.


3. 서울에서 세종 내려오면서 기차 안에서 본 초등학생과 버스 안에서 본 중학생. 둘을 보면서 나는 또 오만가지 생각들이 매칭되었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버스표를 잃어버린 적 있었다. 버스가 왔는데 안 타고 어쩔 줄 몰라할 때 그거 옆에 서 있던 어른이 눈치채고 “야… 얼른 타” 하면서 어른 승차권을 기꺼이 내 준 적이 있었다.


오늘 버스 안에서 본 중학생은 나에게 별다른 인사는 없었다. 나도 그쪽을 쳐다도 안 봤다. 그 사람 앉고 바로 내렸으니 더 볼 틈새도 없고. 시내버스 운전기사님도 어쩜 그렇게 한 마디도 안 할까. 태그 여러 번 하는 동안 쓰다 달다 한 마디도 안 하더라고. 어떤 기사님은 내려라, 혹은 계좌번호 가져가라 하는데.


여하튼 인생은 돌고 돈다. 내가 시내버스에서 자리를 옮겨서 복도 자리로 안 앉았다면 버스비 대신 태그 못 했다. 용케 옮겼으니 대신 태그했다. 기차 안에서는 창가 자리 앉아서 초등학생의 눈빛을 외면했고. 이렇게 순간순간에 따라서 다른 결정을 한다. 사는 게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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