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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카페에서

오렌지향기 바람에 날리우고

나만의 아지트

by 동메달톡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연애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질까. 어떤 작가가 말했다. 하루에 카페를 세 군데를 돌면서 글을 쓴다고,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글을 쓴다는 말이 어찌나 공감되던지. 공간을 세 군데를 돌면서 미팅을 하면 일이 잘 진행될까, 세 군데의 공간을 바꾸어가면서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쏙 들어올까, 세 군데의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글을 쓰면 글이 잘 나올까. 주섬주섬 챙겨서 또 카페를 갔다. 사람들은 카페에 왜 갈까. 사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러 카페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유들이 다양하다.



80년대에 대구 동성로에 <오렌지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라는 카페가 있었다. 지금은 없다. 비슷한 이름으로 다른 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목조계단을 타고 삐거덕거리면서 2층을 올라가면 정말 작은 다락방 같은 공간 하나가 나왔다. 이렇게 작은 다방에는 도대체 누가 오나 싶을 정도이다. 어쩌다 우연히 알게 된 거기 작은 다방에 유독 혼자 잘 갔다. 가게 이름이 길고 특이했다. 낯설었지만 좋았다. 거기다 다락방처럼 낮은 천정에 삐걱거리는 나무의자, 나무계단 그런 것이 좋았다. 문득 그곳에 가 있으면 세상과 단절되어 버린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렇게 혼자만의 아지트 같은 공간을 아끼고 사랑했다.




캔바AI 생성_오렌지 바람에 날리고


거기 카페에서 나는 작은 틈새 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즐겨했다. 창문이 가로로 가로질러 작게 나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무심코 밖을 보면 사람 머리만 보였다. 눈을 또 내리깔면 사람 신발만 보이기도 했다. 당체 사람의 전체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틈새 사이에서 무엇을 온전히 볼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밖을 우두커니 보는 것을 좋아했다. 대구 동성로, 동아백화점 근처…모두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거리에서 틈새로 사람을 원없이 구경했다. 닭벼슬 같은 머리를 하고 멋을 낸 사람. 나이키 신발 사이에 삐죽거리는 아식스 운동화. 프로스펙스 운동화. 그리고 월드컵 운동화. 신발의 계급이 마치 거기 틈새 창문에서 다 나열된 느낌들. <오렌지 향기 바람에 날리고>는 나의 아지트가 아니고 무슨 관찰자의 창고 같았다. 원없이 구경하고 원없이 생각을 하는 그런 창고 말이다.


가게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다방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으나 뭔가 모를 낭만을 가지고 있나 보다 생각했다. 후에 어른 되어서 <오렌지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는 이태리 오페라의 음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오페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잘 즐기지 않는 장르라 여전히 무식하다. 그럼에도 저 긴 제목이 범상치 않는 고유명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공간은 의도적으로 작정하고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태리 남부 사람들의 감성을 의도적으로 주고 싶었을까, 뭔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가면 압도되는 그 무엇이 있었거든. 어쩌면 주인장은 거기 오는 사람들에게 오페라의 줄거리처럼 이리저리 얽힌 삼각관계의 사랑을 맛보게 하고 싶었을까.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다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그 덕분에 저 문장을 다시 보았을 때 환희하면서 찾아봤다. 이것이 단순히 주인장 머리에서 나온 가게 이름이 아니었구나, 하는. 오페라에 삽입된 이태리 음악이다.



<오렌지향기 바람에 날리고>는 1987년의 드라마 제목이기도 했다. 또 이문세의 노래 가사이기도했다. 영화 ost인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잘 모르겠다. 그 당시에는 그냥 긴 카페 이름이 특이했다. 요즘 새삼 그 카페가 생각나서 AI에도 물어봤다. 혹시 낡은 사진 한 장이라도 있을까 봐. 없다. 날고 기는 인공지능도 사람이 뭔가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뭐든 찍고, 써 두는 것을 해야 하나 보다. 아쉽다. 그 시절을 같이한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혹이나 흑백 사진 한 장이라도 있을까. 설마?



긴 다방의 이름을 30년 지나서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공간이 주는 힘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선명하게, 또렷하게 거기 공간이 생생하거든. 둔탁한 나무의자, 빛바랜 두꺼운 탁자, 거기에 즐비하게 꽂혀있던 LP판. 두꺼운 안경 끼고 붙박이처럼 앉아서 시집을 들고 있었던 이름 모를 타인. 창문 틈으로 보이는 한 줄기 빛. 모두가 생생하다. 어쩌다 다른 사람과 같이 간 기억도 있지만, 내 안의 기억은 언제나 혼자 갔다. 그 시절, 여자 아이가 혼자서 다방을 가는 것이 흔하지 않아서 나를 쳐다보는 낯선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낯선 시선은 내 안에서 하나도 기억 안 된다. 거기가 좋았고, 거기가 편했다. 그게 전부였다.


캔바AI 낮은 책장의 책들_오렌지 바람에 날리고




어른 되어서 <오렌지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와 같은 분위기의 공간을 못 찾았다. 북카페, LP판 있는 카페, 그런 곳이 있었으나 그 감성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 했다. 비슷한 공간이 있었겠지만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종종거리고 살아서 사실 어떤 것도 안 들어오기도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구 동성로의 <오렌지향기는 바람에 날리우고>는 나에게는 다락방이었다. 아니 안식처이기도 했다. 어떤 부분 부분에서 마음이 움츠려 들었을 때 나 혼자 우두커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단기 어린 나이에. 그래서 행복했다. 카페는 그렇게 나의 숨구멍이었다.



당신의 기억에 머물고 있는 공간에의 기억, 공간에의 추억에는 어떤 카페가 머물러 있는지 묻고 싶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카페는 어떤 색으로 여전히 자신의 감성 옆에 있는지도 궁금하다. 옛사랑의 기억이든 혼자 떠나는 카페 투어이든 뭐든지 좋다. 내 안에 머물고 있는 공간으로의 그 카페를 끄집어 보는 것 어떨까. 나만의 아지트를 상상해 보면 어떨까.



나만의 아지트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사람들이 한결같이 다락방을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것이다. 다락방이 주는 공간은 이상하게 나만의 아지트라는 느낌이 든다. <오렌지향기 바람에 날리우고>그 카페는 결국 그 시절 나만의 아지트였고, 보물 창고였다. 그래서 불쑥불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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