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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Feb 10. 2018

내가 뽑은 인턴

면접관과 인생의 선배가 되다

최근 나에게 일어난 가장 찡한 일을 얘기하자면 팀에서 반년 가까이 함께 일한 정든 인턴을 떠나보낸 일이다. 채용 면접 시, 면접관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간부들 뒤에 앉아서 지원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나름 평가를 하고 있던 터였다. 입사를 위해, 장학금을 위해, 인턴 자리를 위해, 주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면접을 보던 내가 누군가를 선택하기 위해 참여한 면접이었다. 



2개의 조로 나누어 본 면접이 모두 끝이 났다. 간부들은 예상을 했던 바와 같이 말을 화려하게 잘 하던 아이를 추천했다. 반면, 나는 그 옆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면접을 보던, 조용하지만 나름의 강단이 있어 보이던 친구를 끈질기게 원했다. 화려한 스펙의 친구를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첫째, 이 자리는 "인턴" 자리였다. 권한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력 있게 해 나가야 하는 실무자의 자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 일을 했을 때 자존심 상해한다거나, 요령을 피운다거나, 업무를 만만하게 본 나머지 실수를 하거나 조직에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실제 재작년의 경우 간부들이 적극 추천하던 친구를 채용하였는데 그 친구는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고 먼저 퇴사를 하였다. 업무를 할 때에도 요령을 피우는 것이 보였다. 둘째, 말을 화려하게 하던 친구는 똑똑하지만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 학습된 면접 테크닉이 뻔해 보였다. 면접관의 눈을 한 명 한 명씩 마주치며 면접에 임한다거나, 옆 사람이 발언을 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습을 보인다던가, 면접이 끝난 후 손을 들어 추가 질문을 한다던가, 회사 홈페이지를 본 것을 어필한다던가, 내가 구직활동을 위해 면접 연습에서 다루었던 모든 테크닉이 쏟아져 나왔다. 그 모든 테크닉을 익힌 것이라면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인데 왜 그게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결국에는 '팀워크'이다. 나는 누군가 제시한 모범 답안을 줄줄 읊는 사람보다,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받아들일 여백이 있는 사람과 일을 하고 싶었다. 그 외 나름 충격을 받았던 면접자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면접에서 10대 시절 너무 놀아서 도망치듯 유학을 갔다는 개인사를 털어놓더니 나중에 가서는 옆의 지원자들을 보며 많은 자극이 되었다며 본인은 여기까지로 생각한다는 자폭 발언을 이어갔다. 그 친구와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언변과 스펙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유독 말을 잘하는 여성 지원자들 틈에서 기가 죽었을지라도 본인의 장점은 끝까지 보여주는 일말의 적극성은 있어야 했다. 



물론 첫인상만 보고 사람을 판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에는 나와 함께 일하게 될 친구를 뽑는 자리였던 터라, 간부들은 결국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내가 최종 선택을 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원했던 친구였기 때문에 그 친구가 끝까지 따라오지 못한다면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내 책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애정이 있었다. 단순 반복 일을 주기도 했지만 나는 최대한의 자율권을 주도록 노력했다. 본인이 처음과 끝을 맺은 일이라면 본인의 이름으로 보고를 한다거나 협력기관과 접촉하도록 했다. 여러 가지 미팅을 할 때에도 나는 이 친구를 배석하도록 했고 무엇보다 협력기관 사람들에게 인턴이 아닌 직원으로 소개를 하곤 했다. 다른 팀 인턴들은 메일 계정이 "intern"이 들어갔던 반면, 나는 메일 계정을 관리하는 동료에게 일반 직원과 같은 이름이 들어간 메일 계정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팀 내 직원이 이 친구에게 본인이 하고 있는 일과 무관한 단순 업무를 맡기려고 할 때, 나는 그 직원에게 향후 그럴 일이 있을 경우 나에게 먼저 말할 것을 요청했고 그 친구가 하던 단순 업무는 외주를 맡겨버렸다. 



나와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배워 가길 원했다. 내가 유럽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한국 직원들의 도시락 주문만 하느라 마음고생하던 경험은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은 안 했으면 했다. 그런 내 마음을 고스란히 느꼈던 탓인지, 이 친구는 나의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단순한 업무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끝까지 일 매듭을 짓곤 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연장을 했었을 때에도 나는 간부들에게 어필하여 얼마 전 다녀온 해외출장에 이 친구를 대동하도록 했다. 진정성 있게 일을 해 준 친구에게 감사했다. 마지막 날, 이 친구가 써준 손 편지를 읽으며 다시 한번 마음이 찡해졌다. 언젠가 후배가 생긴다면, 나와 같은 선배가 되어주고 싶다는 이 친구의 말에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을 지켜도 되겠다는 안도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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