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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Oct 08. 2015

칙칙폭폭, 착한마음 기차

<잭과팡> '기차여행',<야,우리기차에서 내려>

 나는 언젠가 한 보육원에서 1년동안 매일 아침 설거지를 했다. 내가 그때 자원봉사를 했던 건, 착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봉사를 할 때, 얻는 것이 무엇인지 또렷이 알고 있다. 그래서 기필코 봉사 대상자들을 동정해본 적 없다.


 동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착한 마음'만을 강요하면 안 된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착하게 살라.'고만 하겠는가. 만약에 착한 행동을 해야한다면 마땅히 동기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보상이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신나게 놀기'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EBS<잭과팡> '기차여행' 편을 소개한다.

<참고> 잭과 팡 11회 '기차여행'(2014.7.2방영)

http://www.ebs.co.kr/tv/show?prodId=111206&lectId=10208050

잭과 친구들은 종이로 만들어진 팝업 북 세계에 살고 있다. 어느 무더운 날, 잭이 친구들에게 눈이 있는 다른 페이지로 여행가자고 한다. 다른 친구들도 흔쾌히 여행을 허락한다. 다음 페이지는 사막이다. 잭은 더워보이는 낙타들에게 함께 여 가자고 한다.

그 다음 페이지는 정글이다. 잭은 고릴라들에게도 여행을 제안한다. 고릴라들이 기차에 타자 기차가 무너진다. 만능수리공인 키라가 종이기차를 오리고 붙여서 금세 수리한다.

 친구들이 눈 쌓인 높은 산에 도착한다. 잭이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로봇에게도 함께 가자고 한다. 기차에 더이상 탈 자리가 없어 친구들이 망설이지만, 잭이 나서서 친구들을 설득한다.

   "이렇게 뜨거운 날에는 누구나 힘들고 지칠거야."

기차가 위태위태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다 기차가 커다란 다리를 건너려다가 그만, 추락할 위험에 처한다. 마침 로봇이 기차를 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사히 눈의 나라에 도착한다. 잭과 친구들은 눈 속에서 재미있게 논다.


 EBS 홈페이지 소개에 '잭'은 친절하고 친화력있는 아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잭은 자기 성격대로, 날씨가 더운 날 친구들과 함께 눈의 나라로 여행을 갔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더위를 해결해주고싶은 착한 마음 때문에 말이다. 잭은 언제나 해결사를 자처한다. 잭이 못하는 것은 만능수리공 키라가 나서거나, 잭에게 도움을 받은 적 있는 누군가 해결한다. 물론, 잭과 친구들이 사는 세상이 팝업 북이기때문에, 어딘가에 톡 튀어나와있는 화살표를 잡아당거나, 종이를 오리고 붙이면 어떤 문제라도 쉽게 풀린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팝업 북이 아니다. '잭'처럼 위험을 감수하며 남을 돕다가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물론 잭처럼 '돕기 위한' 기차놀이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기사가 난, 한 할아버지의 사연이다.

<기사> http://www.huffingtonpost.kr/2015/09/23/story_n_8181552.html

유진 보스틱은 미국 텍사스 주 포스 워스에 사는 80세 노인이다. 그의 일과는 기차를 운행하는 것이다.  사진  기차는 그가 직접 만든 것이다. 기차의 승객은 그가 거리에서 구조한 개들이다.


이 할아버지는 용접공 출신으로,  '유기견'들을 위해 기차를 만들었다. '잭'이 친구들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오로지 개들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미담이 흔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용접공 출신도 아니고, 개들을 구하여 키울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등장하여 기차 놀이 하는 책들 중엔 이런 '희생' 만을 강조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왜 다른 친구들과 함께 기차에 타야 하지? 그것에 대한 개연성이 거의 없다. 어린이들이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 옳은 일일까?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존버닝햄 글, 그림, 비룡소>를 보자.

 한 아이가 기차놀이 하다가 엄마 말을 듣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꿈에서 강아지 잠옷집 기차여행을 떠난다.

아이는 기차에서 다른 동물들을 발견한다.

우리 기차에 어, 코끼리가 있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그런데 코끼리는 상아를 잘라는 사람들 때문에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아이는 코끼리랑 물놀이를 한다. 어, 물개도 있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물개는 바닷가에 물고기가 없어서 굶어죽을 것 같다고 한다. 아이는 물개랑 코끼리랑 연날리기를 한다.

아이는 기차에서 두루미를 발견한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두루미는 서식지의 물을 사람들이 다 퍼가서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와 친구들과 두루미는 우산을 쓰고 여기 저기 돌아다닌다.

친구들이 호랑이에게 또 외친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호랑이는 사람들이 숲에 있는 나무를 베어갔다고 한다. 아이와 친구들과 호랑이는 다같이 눈 싸움을 한다.

다음엔 북극곰을 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곰은 사람들이 자기를 잡아다가 털옷을 만들려고 한다고 한다. 아이와 친구들과 곰은 눈이 많이 내려 기차가 서자, 모두 힘을 합쳐 눈을 치운다.

  "이젠 돌아가야겠다. 아침 일찍 학교 가야 되거든."

그리고 아이는 집으로 돌아간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에서 아이는  꿈속에서 기차 여행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낯선 동물들을 발견했을 때 당황다. 곧바로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하고 경계를 표한다. 동물들이 각자의 사정을 호소하는 것은 그에 비롯한 것이다.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 환경오염이나 생태계에 인간이 끼치는 나쁜 영향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존재한다. 심지어 아이가 꿈에서 깨었을 때 어머니도 같은 맥락에서 행동한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웬 동물이 이리 많은 거니?"

하고 말이다. 꿈이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생기는 그 자체가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인간이 생태계를 못 살게 굴어서 많은 동물들이 멸종한 지구가 그렇듯 말이다.


 내가 한동안 그렇게 자원봉사에 열을 올렸던 건,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버린 친구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힘이 되지 못한 것이 못 견디게 서러웠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왕이면 나처럼 '결핍'의 아픔을 겪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아이들에게 설거지 말고 해줄게 딱히 없었다. 사랑을 단 기간에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7살 짜리 꼬마도 나를 어려워했다. 물 한 잔 떠다주어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셔도 되나요? 되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잭과 팡>'기차여행' 편에서 잭이, 자신이 위험에 처할 정도로 선행을 하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척 착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몇 번을 생각해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속 주인공의 행동이 더욱 납득이 갔다.  게다가 기차에서 발견된 딱한 사정의 동물들 누구도, 주인공이 현실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잡는 이가 없었다. 현실 속에 흔적을 남긴다해도 말이다. 그것은 착한 행동이 현실에 주는 이익이 분명하지만,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내가 보육원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느낀 순간은 아이들이 더운 여름날 나를 끌고가 수영장에 빠트렸을 때이다. 그제야 나는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같이 놀아요."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일은 '착한 마음'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꾸준히 하는 것이 좋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행동만이 유효하다. 그것은 우정의 법칙과 같다.


그러니까 누구든 '착한 마음' 기차에  오르려거든 명심하길 바란다. 

그 누구도 억지로 착해질 수 없단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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