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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강산 Oct 13. 2023

짜장면을 좋아하는 당신, 짬뽕을 용납 못한다면

나와 다른 것을 모두 악으로 간주하는 '정의 중독'

타인에게 '정의의 철퇴'를 가하면 뇌의 쾌락중추가 자극을 받아 쾌락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 쾌락에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며, 항상 벌할 대상을 찾아 헤매고 타인을 절대 용서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상태를 정의에 취해 버린 중독 상태, 이른바 ‘정의 중독’이라 부른다. 인지 구조가 의존증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의중독>, 나카노 노부코 저 中에서 p 


TV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는 항상 정치적 성향이 다른 토론자들이 등장한다. 서로 입장이 다른 토론자들 간에 갑론을박이 고조되다 보면 언성이 높아지고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게 반복되는 포맷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달라진 점이 있다고 한다. 


예전엔 카메라 불이 꺼지는 순간 언성을 높이던 토론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허허'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때론 나가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는데, 요즘엔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는 거다. 심지어 토론에서의 감정이 격해져 카메라가 꺼지고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도 한다.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동등한 토론의 상대로 인정하면 토론이 싸움으로 번질 일은 없다. 내가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해서 짬뽕을 시킨 사람과 싸울 필요는 없지 않나. '이 집은 간짜장을 잘하는 집이니까 짜장을 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한두 번쯤 권할 수는 있지만 상대가 짬뽕을 고집하면 그만두는 게 예의다.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의 말이다. 사장님이 짜장면을 시키면서 비서실장이 이하 짜장으로 통일하려고 할 때, 누군가는 나서서 '저는 짬뽕 먹겠습니다' 혹은 '이 친구는 짬뽕 먹겠다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와 뜻이 다른 상대방의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적, 더 나아가 '악마' 취급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사고가 확산하는 배경으로 우리 일상에 파고든 SNS를 지목하기도 한다. 





처음 페이스북(현 메타)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SNS는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소수의 거대 미디어가 독점해 온 대중 소통 수단을 개인들의 손에 쥐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SNS가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실어 나르는 대신 편가르기와 확증편향을 확산시키는 일등공신이 돼버렸다. 그 결과가 중도(中道)가 비어버린 여론의 양극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의 알고리즘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의 게시물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자신과 비슷한 의견에 둘러싸인 개인은 '내 생각이 옳았다'고 쉽게 확신하게 된다. 그 결과 나는 한없이 정의로운 사람이 돼버린다. 더없이 정의로운 내 입장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용납하기는 힘들다. 



일본의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 박사가 쓴 <정의중독>은 자기만 옳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악마시하는 현상을 뇌과학적 견지에서 분석한 책이다. 

'정의중독'이란 자신이 보기에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한 타인을 응징하면 뇌의 쾌락중추가 자극을 받아 도파민이 분출되는데, 이런 상태에 취해 처럼 벌할 대상을 찾아 헤매고 타인을 절대로 용서하려 하지 않는 중독 상태를 말한다. 책에선 SNS를 사람들을 정의중독으로 이끄는 주요 수단으로 지목한다.  


나카노 박사는 "정의 중독 상태에 빠지면 나와 다른 것을 모두 악으로 간주한다"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이면 '몰상식한 인간'이라 규정짓고 어떻게 공격할지 상대에게 최대한 큰 타격을 주기 위해 어떤 말을 할지 고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나와 상반된 의견을 가진 대상을 어떻게든 찾아 싸움을 걸면 그만큼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정의의 수호자'처럼 느껴지는 것"이라며 "정의 중독에 빠진 이들에게 SNS는 손쉽고 매력적인 도구"라고 말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모든 형태의 중독'은 '악'이다. "그것이 술이든, 모르핀이든, 이상주의든"이라고 말했다. 정의중독처럼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는 것도 중독의 한 형태다. 


나카노 박사는 우리가 정의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 또한 가능한 인물이다. 메타인지와 역지사지,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 때문에 흥분했을 때 떠올려야 할 매직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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