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믿는 사회 vs 믿지 않는 사회
아니 왜 이렇게 집을 잘 꾸며놓고 커튼이 없을까.
내가 처음 도착한 에어비앤비 숙소 들어간 순간에 느낀 생각이다.
공항에서 숙소를 잡았던 뇌어브로 지역까지는 사실 멀진 않았다. 시내에서 15분 정도 전철 타고 들어가는 정도. 근데 케밥 골목이 펼쳐지고 그라피티가 난무한... 밤에 돌아다니다가는 총 맞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주인한테 몇 번이고 물어봤는데 코펜하겐은 정말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으스스한 날씨에 정말 이건 아닌데 내가 왜 힙플레이스를 굳이 골랐을까 힙하지도 않은데 하며.... 괜히 마음이 졸여졌다.
그런데 사실 그 집은 너무 멋들어지긴 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사진을 다시 봐도 참 예쁘다.
혼자 요리도 하고 책도 보고 구경하고 쉬면서 보내기에 정말 멋진 집이긴 했다. 집만 본다면.
근데 이 집에 반전이 있었으니 일단 샤워실은 있으나 세면대와 거울이 있는 화장실이 없었다. 게다가 샤워실 바로 앞은 창문이고 창문 밖으로 이웃집이 다 보였다. 이건 아니지.. 왠지 동네도 무섭고 북유럽 위험한 동네에서 꿀휴가를 보내긴 아까워 에어비앤비 수수료를 포기하고 나머지는 환불한 채 다시 짐을 짊어지고 시내 주변 호텔로 1박만 예약해서 옮겼다. 그렇게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호텔 침대에 누워서 힘없이 남은 9일간의 숙소를 예약했다. 피폐해진 마음으로..
정말 다행히도 나머지 숙소는 꽤 괜찮았다.
두 번째 호텔은 큰 길가에 있어서 돌아다니기 너무 편한 곳이고 조식도 정말 괜찮았고 마지막 5일을 보낸 에어비앤비는 정말 집주인도 너무 착하고 인테리어도 멋졌다. 그런데 역시 집에 커튼은 없고 창 너머 이웃집 설거지하는 것들이 다 보였다.
왠지 유럽, 외국 하면 개인 공간을 중요시할 것 같은데 층간 소음은 기본이고 신발은 다 문 밖에 나와있었고 자전거도 다 풀어헤쳐져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모노클 여행책에 있는 에세이 하나를 보고 의문이 풀렸다.
서로 돌보아주는 사회
에세이를 보면 2차 세계대전 때 덴마크에 살던 유대인들도 노르웨이나 주변 국가로 도피를 했다고 한다. 당시 덴마크 왕은 끝까지 이들을 지키려고 힘썼지만 물리적 한계로 그들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유대인들이 몇 년 간 피해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의 직장과 그들의 집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웃이 대신 집세를 내주고 동료가 대신 그 일을 해주고 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파에 누워 내가 훤히 보이는 창 너머 이웃집 사람들이 어쩌면 이 집에 강도가 들었을 때 대신 신고를 해주고, 도와달라 소리칠 때 쉽게 듣고 도와주러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긍정적인 관점이라 사실 실제로 이런 관점이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에세이에서 예로 나오듯 유모차가 밖에 나와있어도 (그 안에 심지어 애가 자고 있고 엄마는 가게 안에서 쇼핑을 하고 있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신뢰라는 것이 깊이 깔린 사회에서 타인이 조금 더 친근할 수 있고 조심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 축복일 수도 있겠다.
뜻밖에도 몇 번 이런 덴마크 인의 따뜻한 배려를 경험할 수 있었다.
둘째 날엔가 혼자 밖에 테라스에 테이블을 잡고 브런치 주문하고 커피 한 잔 더 시키고 싶어 가게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웬 할머니가 내 테이블 주위를 서성이길래 대뜸 날카로운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너무 친절한 얼굴로 내 팔을 잡으며 참새가 먹을 것 주위로 몰려드니 음식이 있을 땐 자리 비우지 말라고 좋은 시간 보내라며 본인 자리로 돌아가셨다. 괜한 경계심을 가졌던 것이 좀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그다음 날엔 주머니에 카드 하나 찌르고 동네에서 맥주 한잔에 저녁 먹으러 나왔다가 계산하려는데 주머니에 카드가 없었다. 나오기 직전 추울까 봐 바지를 갈아입었던 것..... 노마 자리에 생긴 레스토랑이라 꽤 괜찮은 곳이었고 괜스레 무식한 동양인으로 보일까 봐 내 폰까지 맡겨가며 빨리 지갑 가져오겠다고 하니 담당 서버가 쿨하게 아 됐고! I trust you를 날리며 천천히 갔다 오라고 한다.
덴마크도 샅샅이 보면 유토피아는 아닐 것이다. 노마 헤드 셰프도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반 덴마크인 반 크로아티아 인이라 발칸 개라고 보르며 인종 차별을 당했다고도 하고 이 곳도 극우파들이 꽤 활개를 친다.
하지만 일단 단편적으로나마 신뢰하는 모습, 배려하며 따뜻하게 서로를 대하고 챙기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꽤 색다른 일이긴 했다. 여행 말미에는 첫 에어비앤비 집을 괜히 나왔나 생각도 들기도 했고 주변이 무서워서 취소하겠다는 내 모습이 집주인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겠다 싶다.
#반전 여담
그래도 여행할 때는 조심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조심하고 안전하게 다니기!!! 그리고 에어비앤비는 복불복이라 이젠 그만 살아봐도 될 것 같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라기보다는 '낯선 곳에서 맘 편히 즐기는 거다!' 인간적으로 에어비앤비 수수료 너무 비싸다. 그리고 게스트 순간의 잘못으로 집 바꿔야 할 때 정말 노답이라 돈을 그대로 공중에 보내야 하는 리스크가 굉장히 크다. 호텔 추천!! 코펜하겐 숙소는 시내 안이나 아멜리엔 궁전 주위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