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비치는 나의 마지막 인상을 생각보다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안 볼 사람이잖아.”라는 말은 누구나 입에 담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장난으로라도 한 번쯤은 내뱉었던 말이다. ‘마지막 인상’에 대해 그전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군생활 하면서 마지막 인상이 그 사람을 떠올리는데 큰 부분을 차지함을 깨달았다. 상대방에게 남긴 나의 마지막이 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그 사람이 기억하는 내 모습이 결국 쌓이고 쌓여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우리의 대부분의 만남은 마지막이 정해져 있지 않다. 내 인생의 마지막도 알 수 없으며, 상대방과의 인연도 끝을 정해놓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상대방과의 다음 만남에 기약이 없을 때, 그때를 그 사람과 마지막이라고 암시한다. 예를 들어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친한 친구들과는 마지막이 아니겠지만, 일부에게는 내가 졸업식, 혹은 그 무렵 행했던 행동과 언행이 나의 마지막 인상이 되고, 그것이 그 사람들의 ‘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이 정해져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특수한 상황이다. 모든 관계에서 끝은 알 수 없지만, 졸업이나 퇴사, 퇴직, 전역 등 집단 내에서의 관계가 단절되는 마지막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큰 이벤트다. 마지막을 아는 것. 내가 상대방에게 내 마지막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때를 아는 것. 어쩌면 내 모습을 좋은 방향으로, 혹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남길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군 생활의 마지막은 전역이다. 총 26명의 마지막을 봤고, 그중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단 2명이다. 남은 24명이 나에게 모질게 굴었거나,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그들이 이 집단을 떠날 무렵의 모습이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것 같다. 일부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준 탓에, 그동안 같이했던 추억들조차 기억하기 부끄러울 정도였다. 나와 그 사람의 인연은 전역 후 끝이겠지만, 그 사람의 모습은 나에게 지금 남긴 그대로 기억될 것이다.
휴가를 나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다. 대화가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만남도 있었는가 하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만남도 있었다. 내가 상대방에게 만남에 대한 성의를 표한 만큼 상대방이 나에게 성의를 보이지 않을 때. 대화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과 함께하는 행위에 집중하게 될 때. 내가 그 사람과 마시는 커피의 양을 쳐다보게 될 때. 그때 나는 그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만남이 그 사람과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인연의 마지막을 정해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했던 마지막 순간이 좋지 않았다면, 그의 ‘마지막 인상’이 좋지 않았다면 그 인연은 거기서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이런 마지막 인상을 이제 나에게 적용해 본다. 내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나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나는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아깝지 않게 내 마지막 모습을 잘 마무리했을까. 상대방에게 비친 내 마지막 모습이, 나와의 인연을 마지막으로 내몰지는 않았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고, 내가 사랑했던 연인들과의 만남도 함께 떠올리며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반성한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정해진 마지막’을 어떻게 매듭지을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