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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상 Jun 02. 2024

슬기로운 석사 생활_2

시사하는 바가 많은 출발

본 학기는 3월부터이지만 교수님은 2월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학기 들어가면서 연구실 생활을 하면 적응하는데 힘들 수 있기 때문에 한 달 먼저 출근해서 연구실에 적응하라는 말이었다. 사실 빨리 출근해서 연구실 사람들과 친해지고 빨리 실험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2월 출근은 적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무급이라고 했다. 설명하자면, 정식 출근이 아니어서 행정상 월급을 줄 수 없다고 한다. 나와 같이 랩실에 들어간 동기는 나 빼고 2명으로 그중 한 명은 나와 학사 동기이다. 이 친구는 여름방학 때 학부 인턴을 해서 랩실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알 수 있었고 나한테 랩실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 친구도 같은 상황으로 인턴 때도 월급은 줬다면서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같은 학교의 다른 랩실의 친구는 1월부터 랩실에 출근하고 있다고 해서 물어봤더니, 행정상으로 월급을 줄 수 없어서 교수님 사비로 월급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교수님 말이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해서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다. 사실, 도피성으로 급하게 왔기 때문에 그런 거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3월에 월급이 나오는 것에 감사했다.

취업하고 회사 동기들과 얘기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월급도 매우 짰다. 나의 대학원 생활 월급은 80만 원으로 최저였다. 사실 월급 부분은 예민할 수 도 있기 때문에 대학원 생활 때는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회사 동기들과 얘기하면서 나의 월급을 듣고 다 놀랬다. 100만 원도 안 되는 곳은 처음 본다고 했다. 나도 그때 깨달았다.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학원 생활 동안은 몰랐기 때문에 불만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즐거운 한 달

첫날, 랩실에 출근할 때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연구, 어떤 실험을 하는지는 당연히 몰랐고 대학원의 시스템조차 몰랐다. 그저 교수님이 9시까지 출근하라고만 해서 학교에 갔다. 근데 교수님 방은 잠겨있고 나는 어디로 가야 될지 몰랐다. 대학원은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의 방이 떨어져 있고 대부분 대학원생들끼리 지내며 같은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교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도 안될 정도로 짧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을 알지 못했고 알려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막막했다. 그래서 인턴을 했던 친구한테 전화해서 물어봤고, 옆에 있는 방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친구가 없었으면 정말 곤란한 상황이 많았을 거 같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 출근을 했고 기존에 있던 대학원생들과 인사를 마쳤다. 사람들은 편하게 대해줬고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실험하는 재미도 있었고 사람들과 나가서 점심 먹고 커피 마시는 재미도 있었다. 대학생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교수님을 생각보다 안 봐서 더 좋았던 거 같다. 그렇게 2월을 보내고 다 같이 수강신청도 하며 새 학기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코로나의 시대

그러나 새 학기를 맞이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2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전화가 와서 내일은 출근하지 말고 일단 집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그때는 출근을 안 한다고 해서 그냥 좋았다. 한 일주일 정도만 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1학기 동안 제대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집에서 그저 논문만 읽으며 이론 공부만 했다. 6월에 다시 첫 출근을 했다. 3개월 만에 실험을 하려니 실험 방법이나 기기 사용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게 리셋 돼서 다시 처음부터 배우면서 실험을 하게 됐다.


연구 주제의 변경

늦게나마 실험을 배우고 있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태양전지에 대해서 실험하자고 했다. 랩실에서 실리콘 태양전지는 했었기 때문에 낯선 단어는 아니었지만, 랩실에서 하지 않던 차세대 태양전지를 하자고 했다. ‘태양전지를 주력으로 하는 랩실도 아닌데 왜 갑자기 차세대 태양전지를 하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교수님은 우선 태양전지부터 공부하면서 어떻게 실험할지를 구상하라고 했다. 이전에 하던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에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불만 없이 공부하고 실험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내 삶의 방향과 내 가치관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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