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마산 가포에는 ‘소낙비’라는 카페가 있었다.
한여름에 시내버스를 타고 그녀와 카페에 갔다. 그땐 그랬다. 이유 없이 염세주의자가 되어 불만 가득한 젊은 날을 보냈다. 무엇이 그리도 괴롭고 힘든 청춘들이었을까. 작은 일에도 눈물이 흐르고 작은 몸짓에도 까르르 웃음이 넘쳤다. 특히 여름날 소낙비 카페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흔들리는 우리의 질풍노도를 잠재워주었다. 카페는 흙바닥이어서 비가 오면 더 질척거렸다. 어둑한 조명 아래 시답잖은 대화가 오고 가다 보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아, 모기다!” 팔다리를 흔들어 가며 후덥지근한 날씨에 뜨거운 커피를 마셔댔다. 아이스커피도 있었지만 커피는 뜨거워야 제맛이라는 편견이었을까.
잿빛 하늘과 습한 날을 좋아한 우린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가포 바다에 갔다. 지금은 아득한 옛이야기 같은 그 카페는 사라지고 없다. 그래도 그때 바다는 지금도 말없이 수평선을 만들어주고 있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온 그해 직장발령과 함께 야간대학에 입학했다. 고달픈 주경야독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첫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파악하고 제시간에 맞추어 일을 끝낸 후 통근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였다. 직장에서 성인식 기념으로 무궁화가 그려진 금반지를 받았다. 자랑스러워야 할 직장생활인데 어느 순간 반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주어진 업무는 한 치의 실수가 허락되지 않았다.
학교 마치고 막차를 타면 피곤함에 정신이 멍했다. 하루는 버스에서 내리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알이 빠진 줄 알고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눈을 받들고 있었다. 극도로 피곤하여 눈알이 빠질 듯한 경험을 그때 했다.
직장업무로 스트레스도 많은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미숙과 덜컹대는 버스를 타고 가포 카페에 갔다. 직장에서 쌓인 불만을 마구 토했다. 제법 시간이 지나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바다 멀리 수평선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늘에 달이 떠 있어 이따금 달빛에 일렁이는 물결이 바다의 존재를 알렸다. 낮은 산 그림자는 그 위에 흑백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달빛 때문이었을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파도 소리 들리는 밖으로 향했고 미숙도 놀라 따라나섰다.
“에잇!”
내가 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뽑아 힘껏 바다를 향해 던졌다.
“야, 와 이라노! 니 미쳤나?” 놀란 미숙은 나의 돌발행동에 당황스러워했다.
“근데 왜 이리 속은 시원하니?” 정말이지 속이 펑 뚫리는 기분이었다. 상황을 눈치챈 미숙이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버린 반지 내가 훗날 찾으러 갈 거다. 반지 던진 곳이 달이 저리 떴을 때, 저 산 끄트머리네.” 우리는 마주 보며 한바탕 웃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니 아주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난다. 미숙은 힘들 때 힘이 되어준 고마운 친구였다.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젤 좋은 것을 나에게 주는 친구, 약속하지 않고 찾아가도 반갑게 만나주는 친구, ‘니는 여름에 시원한 소낙비 같은 친구다’ 말해 주던 친구였다.
참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 그녀는 없다. 아니 정확히 생각의 차이로 멀어진 지 몇 년째이다. 간혹 소식은 들린다. 지인에게서 소식만 전해 들을 뿐이다. 그녀도 내 소식을 듣고 있을까. 그녀도 비가 오는 여름날 가포에서 보낸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 그녀는 없지만, 비 오는 여름날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한 그녀에게 고마움을 보내본다. 부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202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