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글쓰기와 관련하여
여행을 좋아했다.
지금은 좀 애매하다.
해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다 보니 여행이 별거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간판에 글씨가 다르고, 건물 모습이 다르고, 사람들의 생김이나 옷차림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지'라는 생각이 크다. 여행 간다고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여행을 떠올리면 장시간 비행을 상상하며 이미 너무 피곤하다.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귀찮다.
누가 어디를 가자고 하면 그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일단 상대방으로부터 대답을 채근하며 나올 다음 말들을 차단하기 위해 내가 먼저 잽싸게 이런저런 질문한다.
한참 생각을 하고 결론은 느릿하게 내리는 편인 것 같다. 결정만 하면 실행하는 것은 훨씬 쉽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설레고 가슴이 벅차다.
여행 중에 숙소는 주로 호스텔을 이용하는 편인데 숙소에는 정말 짧게 씻고 잠만 자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발길 닿는 대로 다리가 의지대로 멈추지 않고 자동으로 움직이는 느낌으로 걷고 또 걷는다. 가본 곳이 아니라 새로운 곳이라면 항상 흥분되고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마음이 머물고 싶은 곳에서는 1년씩 살아보고 싶다.
며칠짜리 방문으로는 온전한 매력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관광보다는 그곳에 잠시라도 터를 잡고 그곳에 살며 거기 사는 사람들의 역사와 현재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
모든 일에는 계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부적인 것을 지금 어떻게 결정할 수가 있지? 당장 한 시간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MBTI 검사를 하면 다른 건 중간쯤에서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데 'P' 만큼은 저 담벼락에 가까이 붙어 있다.
그런데 나는 항상 계획적으로 단계를 밟아 가고 있다. 내 머릿속의 복잡한 구성을 표현해 낼 방도는 없지만 나름의 관련을 엮으며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릴 때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반 대표로 선발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나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항상 좀만 더 수정을 해 오라고 하셨다. 뭘 더 수정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뽑히긴 하는데 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에 자신이 없다.
지인들과 대화에서는 말이 하면 할수록 술술 나오는 것 같은데... 두뇌 회전의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랄까.
글도 그럴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끼며 여행 사진첩의 사진만큼 꽉 찬 이야기를 어딘가에 풀어놓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