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cilia Choi Oct 25. 2023

양성원&엔리코 파체 듀오 리사이틀

우리가 음악회에 가는 이유

예술의 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음악회 시리즈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오늘 첼리스트 양성원과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의 듀오 리사이틀이 IBK홀에서 열렸어요.


IBK홀은 주로 실내악 연주가 열리는 연주장인데, 이웃인 콘서트 홀과 비교하여 상당히 아담한 편입니다. 연주자의 명성을 생각하면 콘서트홀도 가득 메울 수 있을 것 같은데 IBK홀이라니 저와 같은 관객에게는 행운이지요. 왜냐하면 무대가 좁고 관객석과 가까워 연주자의 숨소리조차 들을 수 있어 더욱 생생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현자"라고 불리는 양성원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서 말이죠...행운이죠. 연주장을 들어서면 과연 어떤 음악을 들을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듣던대로  첫 곡인 슈만, 5개의 민요풍 소품에서부터 과연 대가의 연주란 다르다는 것을 들려줬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지만, 마치 작곡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악보를 첼리스트가 읽어주는 느낌이었어요. 중년 남성의 회고록이랄까요. 어렵지 않고 쉽게 술술 제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이어서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2번은 과연 멘델스존답게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으로 출발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지만, 명확한 아티큘레이션, 자연스런 프레이징 그리고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의 절묘한 합이 만들어내는 다이내믹 덕분인지 익숙한 노래를 듯는 듯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열정적인 첼리스트의 연주에 빠져 듣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연주 외에 눈길을 가는 것은 첼리스트의 매너였습니다. 건너 건너 좋은 평판을 몇 차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만, 정말 소문이 사실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달까요. 무대 매너도 그렇지만, 악장 사이에 들리는 소음에도 가벼운 웃음과 유머스러운 제스처로 대처하셔서 자칫하면 싸늘하고 불편해질 수 있는 연주장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 주셨어요. 여유있고 배려심 넘치는 에티튜드는 배울 점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세번째 곡인 야냐체크의 첼로와 피아노의 동화는 짧아서 아쉬운 곡이었습니다. 각 악장의 특징을 드라마틱하게 살리는 연주를 들으며 연주자 분의 곡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목은 동화였지만 저에게는 한편의 소설 같았어요.


마지막 슈트라우스의 소나타는 오늘 연주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연주였어요. 리차드 슈트라우스의 곡을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 연주 덕분에 좋아하게 될 정도입니다. 연주자 분들 모두 힘이 어디서 나는지, 앞의 세 곡만으로 충분히 힘드셨을 텐데, 열정이 넘치는 연주에 감동이었습니다. 연주를 들으면서 타성에 빠진 김 빠진 연주를 1시간 듣느니 오늘 같은 연주 "한 소절"만 듣는게 더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음표와 프레이즈를 성의를 다해 진심으로 연주한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그리고 그 진심이 담긴 연주가 음악적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우리가 굳이 집에서 씨디나 유튜브로 들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음악회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히 댄스 음악도 아닌 클래식 음악회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춤을 추지는 않지만, 열정적으로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연주자를 보는 시각적인 만족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연주장을 채우는, 연주자에게서 관객에게로 전달되는 텔레파시와 같은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함이 존재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 특별함을 항상 모든 연주회에서 느낄 수는 없지만 오늘은 느낀 것 같습니다. 혼신을 다해 연주를 하는 연주자를 보며 감동도 받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적인 호흡이랄까요. 연주자의 숨소리에 맞추어 그가 연주하는 곡에 빠져들면서 "시간 예술"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격정적인 연주 뒤에 나오는 여유로움, 그리고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시 같기도, 소설같기도 때로는 한편의 영화 같기도 해서, 전혀 난해하지 않고 음악을 듣는 것 자체로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앵콜곡 2곡 중 한곡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소나타 3악장이었습니다. 네, 말을 더 해 무엇합니까? 최고였지요. 가을에 연주장을 찾는 관객을 배려하는 최고의 앵콜곡이 아니었나 싶어요.


오늘 연주는 연주자의 고매한 인격과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도, 그리고 진심이 만들어 낸 정말 훌룡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작곡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가 점점 연주자 자신이 음악과 하나가 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진정한 음악을 들려준 연주자들에게 어쩌면 "첼리스트" 또는 "피아니스트"보다는 "음악가"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Bravo!

 


매거진의 이전글 2023 킹스 싱어즈 내한공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