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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Nov 03. 2023

코코의 정원

마음이 힘들 때는 흙을 만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베란다 가드닝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여러 화초를 키웠지만, 나의 능력의 한계인지 베란다라는 제한된 환경 탓인지 하나, 둘 이별을 하고 지금은 주로 제라늄과 바이올렛 그리고 몇몇 화초 서너개가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매일 청소도 하고, 씨앗도 만들어 받고, 초록 가득하고, 때때로 꽃이 활짝 피는 나의 조그만 정원을 보며 좋은 음악과 차를 마시며 가드너의 생활을 즐겼건만,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인지라 정원에 대한 나의 열정은 점차 식어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시들었다 싶으면 물을 주고, 도저히 못 참겠다 싶으면 쓸고 닦는 누가 봐도 돌보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시간이 없어서기도 하지만, 나의 게으름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인정하기 싫어서  베란다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저 창 너머로 화분들을 바라보며 열악한 환경에서 꿋꿋이 꽃을 피우고 푸릇푸릇 새잎을 틔어내는 식물들을 보며 미안해 하며, 때때로 그 생명력에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이 버려진 장소가 새 주인을 만났다. 아주 귀엽고 깜직한 외모에 털이 북슬북슬한 새 주인은 처음엔 손님으로 왔다갔다하다가 원주인이 무관심해진 걸 알았는지, 이제는 자기가 주인인양 원주인이 버리고 간 의자와 탁자에 자기 멋대로 자리를 잡고 일광욕을 즐긴다.


원주인인 나는 처음에 당황했지만, 이렇게라도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귀여운 강아지에게 뭔들 안 아까울까. 게으름으로 인해 그저 더욱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 해 미안할 뿐. 기왕 이렇게 된 것 너라도 마음껏 사용하라고 쿠션으로 전용 계단도 만들어 주었다.


나의 강아지 코코는 주로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정오 쯤에 양털이 깔린 의자에 앉아 내리쬐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꾸벅꾸벅 낮잠을 즐긴다. 가끔 창문을 열어놓으면 무얼 아는지 모르는지 밖을 한참 구경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의자에 앉는 것이 무언가 불편해 지면, 또는 지겨워 지면, 편평한 탁자로 자리를 옮겨 또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내가 코코를 창 너머로 구경하듯이, 코코도 창 너머로 나를 감시(?)하곤 한다. 부엌으로 가는지, 밖에 나갈 준비를 하는지, 자다가도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동그렇게 뜨고 내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다. 강아지도 눈치가 있어서 자신도 같이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안다. 또는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본인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나가자고 보채도 이해못한 척 의자에 앉아 꼬리만 흔들기도 한다.


코코의 눈높이에 베란다 정원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하다. 강아지의 낮은 시선에 어쩌면 이 정원은 나름 숲속처럼 울창한 녹음이 우거진 멋진 공간일수도 있기도 하다. 나에게는 한없이 부족하고 구멍이 숭숭 난 공간이지만, 코코에게는 적당한 높이에 넓은 앉을 공간도 많고 햇볕도 잘 들어오는 그리고 밖의 세상도 구경할 수 있는 꽤 훌룡한 휴식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핑계일 수 있겠지만 코코의 취향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치우는 것도 망설여 진다. 사람도 취향이 다양해서 어질러진 공간에 안정감을 느끼는 이도 종종 있지 않은가? 다만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코코가 현 상태에서도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 누추한 정원을 즐긴다는 것이다. 매일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나의 부족한 정원을 채워주는 코코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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