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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Nov 08. 2023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

나의 최후의 순간이 올 때 - 모짜르트 "레퀴엠"

인간으로서 죽음과 세금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세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신의 영역인 죽음과 한낱 미물인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를 동급으로 놓는다는 점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막상 고지서를 받고 나면 얼굴에 시름이 가득해 진다. 원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라고 중얼거리며 한 숨을 쉬지만 그런다고 고지서의 숫자가 뿅하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달마다 이름을 달리하며 도착하는 고지서를 보며, "세금" 즉 "돈"이란 걸 과연 뭘까 생각해 본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돈을 만든 사람은 자신의 소소한 발명으로 파생될 훗날의 모든 사태를 예견했을까?뉴스를 틀어봐도 인간 세상의 나쁜 일의 대부분은 돈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돈은 악마가 만든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한다. 꼬리를 감춘 악마가 인간의 무리에게 접근해서 이렇게 말한다. "자, 봐봐, 그렇게 거추장스럽게 물건끼리 교환할 필요없다고...이게 "돈"이라는 건데 말야...얼마나 쓰기 편한지 알아? 이거 보라고...정말 편하지?". 그래서 그런지 돈을 잘 굴리는 이들은 악마의 후예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우리는 내심 돈을 정말 증오하면서도, 그리고 동시에 사랑한다. 아니 숭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쨋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돈의 노예다. 모든게 돈으로 측정된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권력도, 명예도, 그리고 비틀즈가 부른 "머니 (Money)"라는 곡의 가사처럼 사랑도 돈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들도 예술을 업으로 삼는 사회 구성원으로써 돈을 위해 캔버스에 붓을 놀리고, 하나하나 음표를 그려나갔다.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배도 고프고, 당장 집에 가면 부인과 아이들이 손가락만 빨며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데 고객님의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예술에 대한 고집을 지키면서도 고객님의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중도를 찾아 예술가들은 울고 웃으며 작업을 계속한다. 지금의 유명한 예술가라면 붓만 쓱쓱 갈겨도,  악보 한 페이지동안 쉼표를 그려대도 "아이고, 마에스트로"하며 대부분 굽신거리며 부르는 대로 값을 지불하겠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에겐 허용되지 않는 삶이라 -특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록- 그들은 흥정에 능해야 했다. 만약 이재에 능하지 않다면 유능한 대리인을 내세워 값을 잘 받아내야 했다. 작품에 대한 가치를 매길 때 상대가 선무당이라면 협상은 더욱 골치 아프다. 열심히 영혼을 갈아 작품을 만들어 선을 보이면 어릴 때부터 떠받들여 자라온 높으신 나으리들은 지적 허영심에 가득 차서 이리저리 흠을 잡는다. 작품을 사줄 갑님은 갑님인지라 당장 돈이 궁한 예술가들은 배알이 꼴려도 어쩌랴...당장 오늘 저녁 먹을 빵이 없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돈이 웬수다.

 

이렇게 돈에 고통받던 예술가 중 한 명이 바로 고전음악의 영원한 스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골 마을 잘츠부르크가 낳은 어쩌면 유일무이한 세계적인 대스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삶은 그의 재능과는 다르게 실제로 반짝반짝 빛나지 않았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일찍이 천재소년으로 명성을 날렸건만, 음악가의 삶이란 부유한 후원자를 만나지 않는 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삶이었다. 세상을 잘 아는 아버지는 어떻게든 자식의 앞가림을 하고자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여 성인이 된 모차르트의 일자리를 주선했지만, 모짜르트는 아버지도, 잘츠부르크도 싫었나 보다. 아버지가 힘겹게 마련한 일자리도 마다하고 당시 북부 유럽의 문화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한 도시 빈으로 진출해 왕의 후원을 받으며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까지 한다. 여기까지는 아버지를 벗어난 그의 삶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행히 아버지에게 보란듯이 큰 성공을 거두지만, 젊은 모짜르트 부부는 경제관념없는 남편과 철없는 어린 아내의 합작으로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족족 써버리고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선다. 멀리 잘츠부르크의 늙은 부친은 그런 아들 부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들이 수백년이 지나도 클래식 거장으로 전 세계가 아는 위인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고, 분명 "내가 자식 농사를 잘 못 지었어...내가 헛살았어..."라고 후회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못된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 때, 정말 돈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귀찮았던 건지 너무 멀어서 못 간다는 핑계로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신의 천벌인지, 아직 젊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덮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4년 후 이름모를 고열로 모짜르트는 쓰러지지만, 빚쟁이들의 독촉에 그는 마음 편히 쉴 형편이 아니었다. 마른 수건 쥐어짜듯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며 부지런히 악상을 떠올리며 곡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 검은 옷을 입은 어느 심부름꾼을 통해 진혼곡을 의뢰받는다. 당시에는 익명이었지만 훗날 밝혀진 바로는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라는 이가 외뢰한 레퀴엠 즉 진혼곡은 20살의 어린 나이에 요절한 백작부인을 위한 곡이었다.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의 제안에 모짜르트는 덥썩 의뢰를 받아들인다. 의뢰받은 곡 외에도 오페라까지 고열과 복통을 감내하며 써내려갈 수 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모짜르트의 천재성? 막대한 부채? 아니면 의연 중에 직감한 자신의 마지막?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의뢰인인 발제크 백작은 파격적인 계약금을 제시하며 빠른 시일 내에 작곡해 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부인의 죽음은 핑계고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려고 했던 사악한 의도가 있음이 훗날 밝혀졌다). 그러나 발제크 백작의 예측과는 달리 작품의 완성보다 모짜르트의 죽음이 먼저 다가왔다. 남편이 숨을 거두자 아내인 콘스탄체는 막대한 위약금을 갚아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남편을 잃은 슬픔보다 남겨진 빚이 더 무서웠을까? 그녀는 남편의 서재를 샅샅이 뒤져 악보 초고를 찾아내어 제자인 남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에게 달려간다. 어떻게든 이 저주받은 유작을 완성시켜야 자신과 어린 두 자식의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술애호가로서 슬픈 일이지만 이렇게 돈이라는 건 때론 예술보다도, 더 나아가 죽음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하긴 우리가 이슬만 먹고사는 존재들이 아니니 예술가들이 돈을 위해 예술혼을 불태우는 걸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그저 "고매한" 예술이라는 환상에 갖혀있을 뿐, 그들에게는 죄가 없다. 그리고 죽은 남편이 되살아나 빚을 갚을 것도 아니고, 어머니로서 모짜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본다.


요절한 천재 작곡가와 빚더미에 앉은 그의 어린 미망인의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이제 더 옛날 남부 유럽으로 넘어가보자.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탈리아 로마로 말이다. 그리고 이 로마에는 어쩌면 가장 신성한 도시라 할 수 있는 바티칸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신의 도시 바티칸도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성령의 힘으로 하루만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뚝딱 거대한 대리석 성당이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조각과 그림이 생겨나는게 아니니 말이다. 물론 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들의 영혼에 성령의 힘이 깃들어 아름다운 영감을 불어일으키고 신실한 신앙심으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지만, 그들 역시 위장이 비면 꼬르륵 배가 고픈 육신을 가진 주님의 피조물들이었다. 거기다 처자식이 주렁주렁 딸린 가장들이었으니 노동의 댓가는 꼭 지불받아야 했다.


교황이라고 돈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는 없으니, 다사다난한 르네상스 시대때 그들도 돈에 서서히 쪼들리기 시작한다. 어쨋든 면죄부라는 희안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하기는 했지만, 그건 아직 먼 훗날의 일이다. 결국 신의 대리인, 율리우스 2세와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는 돈문제로 옥신각신 작품을 그리니마니 싸우고 만다. 서로 빈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에서 폭력사태까지 겪자 결국 미켈란젤로는 파업을 선언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다. 신의 대리인의 거처를 만들고,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영광스러운 소명의식으로 붓을 놀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제자들이 도망가버리는 와중에도 이리저리 돈도 안주고 오히려 까다롭게 굴며 협박을 일삼고 더 나아가 폭력까지 쓰는 의뢰인에 당연히 화가 날 만도 하다.


교황으로서도 내전으로 엉망이 된 로마를 정비하고, 연달아 일어나는 전쟁 비용에, 성당 건립 비용까지 마련하려니 인색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긴하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기에는 한낱 인간인 교황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안하무인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뛰어난 실력을 가졌기에 이리저리 구슬리며 겨우 붓을 들게 했지만 이 예술가가 성격이 자기만큼 괴팍하고 고집도 쎄다. 명색이 교황인데 비천한 예술가 녀석이 투덜거릴 때마다 못 마땅했을지도 모른다. 나름 인자한 "만인의 아버지"로서 너그럽게 굴려고 해도 '모두가 내 앞에서 나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데, 이 녀석은 무슨 배짱인가?' 싶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시스티나 성당 내부, 저 멀리 최후의 심판이 보인다. 물질을 초월한 예술에 대한 인간의 집요함을 느낄 수 있다 (출처:infobae.com)



 

고향으로 도망간 미켈란젤로는 우선 밀린 대금의 "일부"를 지불받는 조건으로 다시 로마로 돌아왔지만, 미켈란젤로보다 더 사악한 인간들을 상대했던 교황은 어리숙한 예술가보다 한수 위였다. 말 그대로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고된 천장화 작업은 끝났지만, 새로운 작업이 계속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바로 애증의 상대인 교황의 영묘를 만드는 일이었다. 교황의 설득 아닌 설득에 어영부영 넘어갔는데, 그는 얼마 후 선종하고, 새 교황이 등극하면서 미켈란젤로에게는 다른 창작욕구가 떠올랐다. 지겨운 영묘작업을 계속하는 것은 미켈란젤로에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계약에 따라 보수를 받는 동안 일을 계속해야 하니, 정말로 돈 때문에 영혼을 쥐어짜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다행히 후임교황의 새로운 의뢰로 해방되었긴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미켈란젤로라도 돈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게해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금욕적인 그였다고는 해도 생계를 책임져야할 가족들이 줄줄이였으니, 가장으로서 열심히 망치를 두들기고 붓칠을 했을 그를 생각하니 삶의 무게가 느껴지며 자못 숙연해진다.


어쨌든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그들의 작품 어디에서도 경제적 궁핍에 대한 고뇌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돈에 쫓기면서도 적어도 작품에서는 그에 대한 내색을 안 한 체 그들의 창작열을 쉴 새없이 불태웠다 (물론 미켈란젤로는 "인간적인" 복수는 소소하게 남겼다). 나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니 말이다.


다시 모짜르트의 죽음 당시로 돌아가자. 그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펜을 놓치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죽은 뒤 남은 가족들이 빚쟁이에 시달릴 것을 걱정해서 최대한 가장의 의무를 행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의뢰받은 진혼곡이 결국 자신을 위한 노래라고 중얼거렸다는 문헌이 남아있다는 걸 보면, 빚도 빚이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한 인간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그는 모티브로 사용된 루터교 찬송가 "내 최후의 순간이 올 때"를 임종 직전까지 수십, 수백번 흥얼거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작업이기에 결코 악보를 놓을 수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의 마지막을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기에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미켈란젤로는 투덜거리면서도 고된 작업을 계속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또는 의무감 말이다.


내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 돈일지라도, 최후에 내 마음이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돈이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점점 물질이 중요해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우리가 우리 선조의 위대함을 기리거나, 후세가 우리를 기억할 것은 물질을 넘어선 사명감을 가지고 남긴 정신적 유산이라는 자명하다. 하지만 그런 유산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영화나 문학작품에 남겨진 위인들의 삶을 보라. 어렸을 때 읽은 그들의 이야기는 수십페이지로 요약될 수 있는 너무나 쉽고 간단한 그리고 재밌는 삶이었지만, 성인이 되어 삶을 겪어보니 그들의 삶은 나같은 소인배는 꿈도 못 꾸는 하드한 삶이다. 재능도 없고, 용기도 없는 나로서는 우편통에 꽂힌, 이메일로 날아드는 수많은 고지서를 살피며 푸념이나 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보며 끄적거리면서 신이 허락한 나의 조그마한 업(業)에 만족할 수 밖에...언젠가 이 물질적 고뇌에서 해방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위대한 예술가 둘이 이뤄내지 못 한 그 자유가 과연 나에게는 허락이 될까? 어쨋든 삶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에는 모든 걸 마음편히 놓아버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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