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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Dec 14. 2023

별자리 달력

운명을 믿으시나요? - 구스타프 홀스트 "행성"

한해가 지나고 새해가 가까워 오며 서서히 마무리 지을 일은 흘려보내고, 새로운 일은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 준비를 하고 있다. 얼핏 보면 굉장히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 같지만 나는 영화 기생충 중 송강호의 대사에 무릎을 탁치며 깊이 공감하고, 내 인생 최고의 영화대사로 꼽을 정도로 무계획적인 삶을 지향하는 게으름뱅이다.


“너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 인생이”


-영화 "기생충" 중 기택의 대사  


아이러니한 점은 나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 왜냐하면 불안하니까. 불안을 지우기 위해 다이어리를 펴고 이리저리 아이디어를 끄적이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신년운세를 찾아보거나 자기개발에 관한 영상을 본다. 내일 먹을 점심 식사도 메뉴도 결정 못 하면서 몇 개월 뒤의 일이 그걸 본다고 그대로 이루어질리도, 내 인생이 뻥하고 시원하게 뚫릴리도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도 이만큼 노력하고 있어."라고 나 스스로에게 위안을 얻는 것이 아닐까?


최근엔 너무 궁지에 물리는 상황이 있어 오랫동안 안 가봤던 점집 전화번호를 누를까 말까 고민도 했었다. 한창 젊을 때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니며 미래를 묻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아주 당연한 이치를 깨달으면서 발길을 끊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리고 신년을 맞이하는 계기로 슬그머니 점집에 대한 유혹이 마음 한 켠에서 고개를 들었지만 어차피 일어날 일 미리 안다고 뭐 달라질 게 있나 싶어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먹자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세상이라도 모든 걸 다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채우면 채우는 대로 결핍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고,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할 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커진다는 사실에서 결국 인간은 아무리 똑똑한 척해도 우리가 절대로 완벽히 알 수 없는 거대한 진리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한낱 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1894년 파리가 세계의 중심이던 당시 체코에서 파리로 상경(?)한 시골뜨기 화가 알폰스 무하는 우연한 기회에 눈 앞에 온 행운을 잡았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랄만한 이 사건은 알폰스 무하라는 무명화가를 하룻밤 사이에 대스타로 만들었다.


꿈보다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무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직원들이 모두 휴가를 떠난 인쇄소에서 홀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차피 가족들은 체코에 있을테고, 가난한 외노자인 그는 휴가를 즐기기 보다는 차라리 일터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 마음 편했을 지 모른다.


그때 급하게 파리 르네상스 극장의 매니저가 인쇄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해 첫날 공연할 연극의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당시 슈퍼스타였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공연이 코 앞인데도 제안된 포스터 디자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모두 거절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매니저는 급한 마음에 크리스마스 휴일에도 문을 연 인쇄소를 찾아 해메다 결국 무하가 근무하는 인쇄소까지 오게 된 것이다. 사정을 들은 인쇄소 사장은 무하에게 포스터 디자인을 맡겼다. 아마 그는 무하가 "다른 외노자들처럼 명성을 찾아 파리로 흘러들어 온 무명화가"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무하는 약 2m에 달하는 석판화를 12월 30일에 완성한다. 일주일도 안되어 완성된 유례없이 독특한 화풍의 포스터는 콧대 높은 여배우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새해 첫날 공개하자 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아 하루 아침에 돈방석에 앉게 된 무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에게 이 모든 게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파리로 오기 전부터 정해진 그의 운명이었을까?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였던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화가인 알폰스 무하가 만들어 낸 작품을 보면 이성보다는 감성이, 딱딱하고 계산적인 논리보다는 상상이 가득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이성으로 상징되던 시대상과 모순되는 그의 작품에 왜 대중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열광하는 것일까?



점성술을 상징하는 황도 12궁이 그려진 "별자리 달력" 표지를 보고 있노라면 기술과 혁신의 도시 파리에 살고 있던 무하를 비롯한 파리지앵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 낸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과학으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비논리로 점철된 운명론이다. 머리로는 이성과 논리가 맞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과 마음에 이끌려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뜻밖의 행운을 잡기도 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혹자는 신의 장난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 아닌가? 모두가 알다시피 인생의 역경과 굴곡은 때때로 우리의 선택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시에 우리를 덮친다. 파리지앵들도 이를 잘 알기에 무하의 작품에 열광한 것이 아닐까?


음악에서도 과학자들이 통탄할 만한 점성술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한때 MBC 뉴스데스크 오프닝 음악으로 친숙한 벨에포크 시대의 끝자락에 작곡된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모음곡"에서 말이다. 태어난 순간의 별의 위치와 별의 움직임에 따라 인간사가 결정된다는 그들의 사상은 별들에게 각각의 역할을 주고 이를 바탕으로 의인화했다. 친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홀스트가 과연 점성술을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소재에 목마르던 차에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점성술의 모티브를 차용했는다게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행성의 순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아니라 지구가 빠진 채 "화금수목토천해"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악장마다 점성술에 영향을 받은 곡답게:


1. 화성: 전쟁을 부르는 자

2. 금성: 평화를 부르는 자

3. 수성: 날개 달린 정령

4. 목성: 환희를 부르는 자

5. 토성:  과거를 부르는 자

6. 천왕성: 마술사

7. 해왕성: 신비로운 자


라는 흥미로운 부제가 붙어있는데, 곡의 분위기를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과거 점성술 신봉론자들이 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흥미롭다. 그리고 무관심했던 우주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딱딱한 과학책보다는 허무맹랑하지만 재밌는 동화책이 효과적이랄까?!


또한 신비로운 세기말적 분위기가 가득한 이 곡은 구성도 구성이지만 악기 편성도 다채로워서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당시의 작곡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정작 작곡가는 이 곡의 흥행에 대해 시큰둥했다지만 무하의 작품처럼 홀스트의 행성 모음곡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어 아직까지도 다양한 장르 -특히 영화음악-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는 곡이 주는 신비하고 웅장한 분위기도 분위기겠지만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힘에 의해 움직이는 천체에 의해 정해지는 운명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무의식 어딘가에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쪽에서는 이성과 논리로 모든 현상을 규명하려는 가운데 다른 한 켠에서는 기원전 시작된 낣아빠진 점성술에 의지하는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는 현상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조그마한 핸드폰을 들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지하철과 버스를 탄다. 거리의 커다란 전광판에는 우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에 관한 뉴스가 보여진다. 사람에 치이고 일상에 찌든 우리는 한숨을 푹푹 쉬다가 검색 플랫폼을 열고 새해에는 좋은 일이 생기나 싶어 신년운세를 찾아 본다. 괜찮은 사주 어플이 없나 더 찾아보는 것은 덤이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나 당시 유럽인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인류 중 가장 뛰어나다는 천재들이 모여 이뤄낸 과학과 기술의 혁신은 우리의 삶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불안을 없애지는 못 했다. 그들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천재나 평범한 사람이나  결국 한 치 앞의 미래도 모르는 채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일본의 유명 호스트인 롤란도가 말했다. "미래를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무섭지 않나요? 저는 모르는 것이 좋아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리고 매순간 꿈을 꾸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늘 실수투성이인 무지렁이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아니겠는가? 누가 알겠는가? 나의 절실함에 하늘의 별님들이 감동해서 복이라도 내려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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