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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Nov 02. 2023

거지 누더기 틈 볕살


                             

                                                       

  이규태 글 「태양의 소유권」을 읽었다. 구, 소련의 볕살 해적海賊 추진 계획에 대한 내용이어서 인상 깊다. 당시 소련( 러시아)는 외계 지구 궤도에 지름 2-3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태양열 집열판을 하늘에 무수히 띄울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지구에 내리쬐는 햇살을 이것에 집열, 에너지 광속으로 전환 시켜 자기네 나라로 보낼 속셈이란다. 이렇게 모아진 태양열은 자국自國 전기 발전량과 맞먹는 분량의 전기라니 소련은 태양빛을 탐낼만하다. 이 글이 십 수 년 전 내용인 듯하다. 추후 이것을 성공 시켰는지는 필자가 확인 한 바는 없다. 

  이는 러시아가 에너지 광속으로 전환된 태양열에 대한 욕심이 분명하다. 오히려 이것이 작금昨今에 이르러선 겸손한 태도로 비치는 것은 어인 일일까. 그 당시 소련은 태양빛의 소중함에 눈을 뜬듯해서다. 지구 표면의 단위 시간에 조사照射되는 일정한 태양열 가치를 인간 삶에 유익하게 활용하려 한 점이 높이 살만하다. 한편 러시아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훗날 지구가 겪을 기상 이변은 염두에 두지 않은 처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늘 높이 띄운 집열판이 태양열을 다량 흡수 한다면 아무리 무한정 쏟아내는 빛이지만 한계는 있을 법해서다. 이로 말미암아 지구상에서 일조량 부족으로 농작물이 제대로 생장 못할 것이라는 기우는 지울 수 없는 터. 하지만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면 그 나라에선 태양에 대한 고마움을 일찍 터득 했다고나 할까. 

  사실 태양 광량光量은 전 세계인들에겐 공평한 자연 혜택이다. 날이 밝으면 하늘 높이 떠오른 붉은 태양은 전 세계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골고루 그 찬란한 빛을 발한다. 이로보아 태양만큼 공평公平한 것은 없는 듯하다. 빈자貧者, 부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태양빛을 날마다 선사해 주잖은가. 그래 태양은 불변의 빛이다. 지구에 인류가 생성한 이래로 단 하루도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날은 없다. 때때로 먹장구름이 태양을 가려도 굽히지 않고 이내 따사로운 빛과 광명을 안겨주는 고마운 태양이다. 여름날 용광로 속 같은 폭염에 그늘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하는 것도 태양이다. 

 어디 이뿐인가. 혹한에 꽁꽁 얼어붙은 심신을 녹여주는 햇살은 얼마나 고마운가. 이 기운에 의하여 봄 날 세상 만물이 싹을 틔우고 가을 날 열매를 맺게 한다. 어찌 보면 태양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주관하는 힘을 지녔다. 그래 생명을 존재케 하는 빛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진 않을 것이다. 이러한 자연 에너지인 태양의 기운을 머리 위에서 항시 느껴서인지 평소엔 그 혜택을 잊고 산 게 사실이다.

  산소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이치라고나 할까. 이게 아니어도 그동안 우린 감사엔 둔감 한 채 살아온 듯하다. 다 알다시피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그에게 베풀 선심에 대하여 물었을 때, 디오게네스는 이에 대한 대답 대신 그에게 볕 좀 쬐게 비켜 달랬다는 말이 있다. 디오게네스에겐 어떤 부귀와 영달보다도 당장 추위에 떠는 자신에겐 따순 햇살 한 줄기가 더 필요 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세상사 그 무엇에도 별반 욕심 없는 그는 오히려 온기를 전해주는 햇빛의 소중함을 더 가치 있게 여겼을 것이라는 추측마저 드는 일화이기도 하다.

 이규태가 자신의 글에서 밝혔듯이 속담에,‘거지 누더기 틈 볕살’이란 말이 있다. 이는 추운 겨울날 헐벗고 굶주린 거지에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게 한 줌 따사로운 햇빛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 세상사를 살펴보노라니 그야말로 ‘거지 누더기 틈’에 볕살일망정 내리 쬐주는 소량에 불과한 태양의 온정마저 부럽다. 인간으로선 저지를 수없는 비정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잖은가. 인정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으리만치 냉혹하고 살벌한 사건들이 전부이다. 이 탓에 세상살이가 더욱 각박하여 불안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엔 곳곳에서 칼로 사람을 해하는 범죄자가 날뛰곤 했다. 이즈막엔 40대 여성이 노인들만 골라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뒤 자신의 보험금을 타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아무리 세상이 배금주의拜金主義 사상에 물들었다고 하지만 어찌 이토록 비인간적인 죄질의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른단 말인가. 양심마저 마비된 범행 아니던가. 이는 물욕에 눈이 멀어서이다. 이 탓에 혼魂이 병들다보니 매사 감사하는 마음과 이타심을 상실해서다. 자신이 호의호식好衣好食 하겠다고 돈 때문에 타인의 귀한 인명을 해치다니…. 

  또한 남편이 홧김에 아내를 살해했다는 내용이며, 친딸은 물론 의붓딸을 수년간 성폭행 해 온 짐승 같은 남자를 비롯, 환락에 빠져 마약에 손 댄 연예인 소식 등은 세상 살맛을 잃게 한다.  

  날만 새면 태양은 어김없이 떠올라 머리 위에서 빛을 발하련만, 이 대명 천지에 인간 세계는 마치 어둠에 갇힌 지옥을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 꼴이다. 이런 세태에 사노라니 요즘 하늘 우러르기가 참으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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