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나단 Jul 26. 2023

중증장애인, 그가 내 고용인이 되었다.

그리고 고용인은 나의 친구가 되었다.


“곧 출발하는데 진짜 안가? 몸만 오라니까?”

항상 피곤하고, 조급하고 예민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 간다고 안했잖아, 가서 돈 많이 쓰고와”

“매번 빼지 말고 얼굴이라도 비추라니까?”


어딜 가나 이목을 끄는 인기쟁이 과대가

연합 MT라며 몇일 동안 지치지도 않고 귀찮게 한다.

나의 답은 정해져 있다.

“내 알바냐?”

그런데 솔직히 가고 싶다.     

편입과 휴학, 복학을 반복하며 친구는 커녕

학교에 적응하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친구나 만들라며 이럴 때마다 찾아와 찔러대는 녀석들도

매번 같은 나의 답변에 별 기대는 없어 보인다.


오늘은 돈이 입금되는 날!

억지로 자신을 위로하며 나의 고용인이 있는 기숙사로 향한다.

꽤나 더웠던 그날,

평소처럼 방문을 여는데

나의 고용인이자 동거인인 A가 아침과 같은 자세로 휠체어에 앉아 이야기한다.

“다녀오셨어요?”

이 학교에 적응하기도 전 만난 나의 고용인 A는 장애인이다.

심지어 혼자서 용변 처리도 어려운 중증장애인.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뻣뻣하고 마른 몸,

활력도, 표정의 변화도 없는 A를 보면 나까지 힘이 빠진다.

 

돈이 필요한 나는 A를 만나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려면 학비라는 것이 필요하다.

배가 고프면 식비라는 것이 필요하다.

해보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은 또 왜 이리 많은지.

‘혹시 숨 쉬는 데도 돈이 들까?’

이런 생각 하는 놈의 집안은 대개 여유가 없다.

당시 난 돈 되는 일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꽤 열심히 찾아다녔다.

덕분에 잠은 항상 부족하고

교내에선 장학금을 준다는 일 말고는 뒷전이니 학점도 형편없었다.

매번 편돌이 친구한테 폐기 음식 뜯어내는 것도 지겨웠다.

저녁을 대충 때우고 물류센터로 향하는 날이면

이상하게 술판을 벌이며 웃는 사람들,

양손 무겁게 쇼핑해오는 사람들만 눈에 띈다.

‘저놈들의 돈과 시간은 어디서 나는 거지?’

난 억지로 부러움을 숨기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곤 했다.     






손이 필요한 A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A의 개인적이고 궂은일들을 도맡아줄 건강한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의 눈엔 내가 뛴 것이다.

“근로장학생을 해보라고? 생활지원사? 그게 뭔데?”

편입, 휴학을 반복하며 새 환경에 정신 못 차리던 난 교내 그런 일자리를 알 턱이 없었다.

“교내 장애학생을 지원하는 센터에 소속되어 저와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거에요.”

사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관심도 없었다.

단지 근로장학생의 시급은 내가 하던 어떤 일보다 높았고 편해보였다.

‘어차피 구면인 녀석과 같이 살며 시키는 것만 하면 되잖아? 심지어 기숙사비도 굳는다!’

나는 바로 그날 A의 생활지원사가 되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같은 일과가 반복되고 있다.

“야! 이리 와봐”

라고 하면서도 고쳐 앉는 것조차 힘든 A에게 직접 다가간다.

그리고 습관처럼 활동 확인서(매달 내 활동을 증명하는 일지)를 들이민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사인해줘” 

본인 이름 몇 글자 쓰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꺽이고 뒤틀린 손으로 어렵게 펜을 잡은 A, 나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이름을 쓴다.     

난 항상 A와 같은 방에서,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진짜 영혼 없이 똑같은 질문을 꺼내고는 한다.

“밥 먹으러 가자”, “산책하러 가자”, “운동하러 가자”

A의 대답도 항상 똑같았다.

“힘들어서요”, “아시잖아요”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야! 일단 따라 나와 나가자”

난 억지로 그의 옷깃을 잡아끈다.

평소와 다른 나의 행동에 A는 눈치를 살피며 자세를 바꾼다.


여기 저기 착용하는 보조기는 왜 이리 많은지

“이거 벨크로 위에부터 묶는 거지?”

“야 발목 보조기 어디 뒀어?”

“전동휠체어 충전됐냐? 길 가다가 멈추면 너 두고 온다!”

A의 개인 일정들과 재활 운동 등을 위해 매번 하는 일인데도 할 때마다 헷갈리고 정신없다.

‘역시 데리고 나가기도 힘들다.’

목적지는 학교 후문의 식당!

혼자 가면 편할 길, 그러나 오늘은 문턱 하나, 계단 하나에도 온갖 기행이 필요했다.

그렇게 도착한 식당 앞에서 A는 나의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죄송해요”

A가 평소 입버릇처럼 건내는 말 중 하나다.

매일 한껏 위축된 A의 모습이 답답했지만 오늘은 왜인지 더 싫다.

‘니가 고용주인데 나한테 왜 미안하냐?’

이상하게 오기가 생긴다.

‘그래 방구석에 할 일 없이 앉아있는 것보단 낫겠지?’

아마 그 때부터 였을까? 중요한 일과가 생겼다.

난 혼자 가면 빠르고 편했던 길을 무조건 A와 함께 나서기 시작했다.


“혼자가면 심심해”

A에게는 이렇게 말했지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 정해진 일상에 작은 의미라도 만들고 싶었을지도?

난 취미나 개인적인 모임, 심지어 귀찮아서 대충 끝내버리던 살림도 옆에서 지켜만 보던 A를 참여시켰다.

"오늘은 너한테 특별한 임무를 주지!"

"대청소할거야 빗자루 들고 응원이라도 해봐"

"빨래나 걷자 바구니 옆에서 노래라도 부르고 있어!"

바보 같은 녀석, 매번 그걸 시킨다고 하고 있다.

그것도 내가 민망할 정도로 열심히!

어느 날은 듣도 보도 못한 옛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뭐냐고 물어보니 아버지께 전화해 신나는 노래 좀 알려달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야 아버지가 내가 너 괴롭히는 줄 아시겠다?”

어느 날 A는 지나가는 말로 항상 누군가 함께 있어야만 했지만 무엇을 함께해본 적은 없다고 한다.

“이리 줘봐!”, “저기 구석에 있어”, “이쪽으로 좀 비켜있어”

A가 평생 듣던 말이었다.


‘음, 왜 요즘 이 녀석에게 오기가 생기지?’     

A와 나는 점점 더 먼 곳으로, 많은 것을 하러 다닌다.

그리고 혼자로는 버거워 친구 한 명을 추가로 영입한다.

같은 과! 같은 학년! 바로 옆방! 함께 기행을 펼치기 완벽한 조건!

그 후로 A가 못 가본 곳을 찾아다닌다.

사실 A의 첫 경험 들을 위해 기행을 펼치고 있을 필요는 없다.

활동지원사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성취감은 아무도 모를걸?    

 

학교 앞 건물 2층에 있는 맘스터치
시내의 아울렛 백화점과 영화관, 지하철
결국 탑승을 거절당했지만 시외버스터미널 등 이곳, 저곳 그냥 다닌다.
햄버거하나 먹으려고 20대 남자들이 계단에서 힘쓰며 난리를 치고
평소 이용될 일이 없어 방치된
장애인 전용 좌석과 엘리베이터를 가동시키며 승리의 미소를 띄우기도 한다.
우리 일상은 이랬다.
3명의 바보들이 교내, 교외 어딘가에서 행인들의 시선을 끈다.
친구 하나 없던 나는 덕분에,
강제로 학교에서 꽤 유명인이 되어 반갑게 인사할 사람들이 많아져 있다.  



부피가 큰 휠체어를 움직이며 타인에게 불편함을 선사하던 A는 혹시라도 남을 귀찮게 할까 방문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주구장창 기다리고 보는 답답한 녀석

난 그런 A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일부러 짓굳은 농담을 던진다.

“무슨 죄졌냐? 뭘 멍하게 있어 박차고 들어가!”

“한여름에 우리 걸어 다닐 때 너 차타고다니냐?”

같이 다니다보니 매번 눈치만 보던 A는 어느새 농까지 던진다.

“이거 수입차에요, 독일차”     

학교 규정상 학기마다 활동지원사가 맡은 장애인은 교체된다.

그러나 A는 학기마다 나에게도 비밀로 하고 장애 학생 지원 기관을 방문해 억지를 써왔었다.

“그 형하고 같이 살게 해주세요.”


난 지금껏 전례 없던 이 상황과 사정도 모르고 당연한 듯 몇 년을 그와 함께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모험들을 끝내고 함께 졸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의 시선을 살피던 A는 남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강단에 서있다.

“내 친구들은 나를 장애인으로 대하지 않아요.”

나 또한 내 친구를 남의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타지에서 다른 삶을 산다.

A는 박사학위를 수료 중이고, 나는 사회복지사로 생활한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른 삶을 사는 우리는 여전히 친구다.

A에겐 딱히 말하지 않았지만,

학창시절 나의 가장 행복했고 기억에 남는 꿈은

변함없이 앉아만 있던 그가 씩씩하게 일어나 내게 직접 다가오는 꿈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 같은 꿈이었다.

물론 기적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고 없어도 된다.

“형 잘 계셨어요? 요즘은 어떠세요?”

한결같은 친구의 목소리에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집 나간 탕자가 돌아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