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밖 다문학적 심리상담사의 치열한 윤리강령 탈출 생존기 그리고 해방기
상담의 시작이 상담자의 신뢰를 입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내담자들의 주호소 문제를 분석하고 전문가적인 면모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하는 그들 밑바닥에는 '상담자가 권위를 먼저 입증해야 내담자가 마음을 연다'는 철저한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깔려 있다. 학위나 자격증이라는 성벽을 먼저 보여주어야 신뢰가 생긴다는, 그들만의 오만과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마음훈련소의 현장에서 마주한 내담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이미 소위 '권위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갑질에 마음이 다쳐 피를 흘리며 찾아온 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온전히 존중받는 '태도' 그 자체다. 신뢰는 자격증이 아니라, 상처받은 이의 곁에 서는 치유자의 태도에서 싹트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권위주의적 발상은 상담실 담벼락을 넘어 우리네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그중 가장 흔하고도 교묘한 도구가 바로 '인사'다. 권력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기 위해 늘 인사를 가장하지만, 나를 통제하기 위한 선 넘는 언어들은 인사라는 이름 뒤에 숨어 적나라하게 존중의 경계선을 침범한다.
흔히 아이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오가는 "신랑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이나, 아이들의 "너네 아빠 얼마 벌어?"라는 서열 매기기가 그 예다.
사회가 강요하던 그 수많은 '당연함'이 사실 나를 길들이기 위한 가스라이팅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필자는 비로소 반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것은 관계를 끊어내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타인의 반응에 저당 잡혔던 내 감정의 주권을 되찾아, 나만의 건강한 '심리적 경계선'을 긋겠다는 능동적 행위인 것이다.
나를 대상관계의 중심에 세우기로 결심한 순간, 가장 먼저 되찾아온 것은 '인사조차 내 마음대로 할 권리'였다. 상대가 내 인사를 씹든 말든,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관두는 주체적 선택. 그것이 여왕벌의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첫 번째 균열이다. 누군가는 버릇없다 하겠지만, 그 또한 타인의 서운함이 작용된 사정일 뿐이다. 물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의 선택이다. 다만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내 평온을 해치면서까지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지금부터는 누구와 어떻게 인사할지, 우리의 경계선을 세우는 일부터 다시 바로잡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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