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테플리카 알제리 전 대통령의 통역이 된 적이 있었다. ‘해프닝’ 즉 ‘우발적 사건’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동시통역은 물론 일반 통역의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처지인 데다가 통역을 하게 될 문서울 일별 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끌려 들어간 일이었다. 그것도 양 방향으로 해야 했다. 소나기처럼 내 위로 퍼부어지는 말들을 얼마나 양쪽에 전달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등골에 식은땀이 솟는다. 평생 기억에 남는 고된 일이었다.
경제협력단을 이끌고 알제리를 방문한 한국 D시의 시장이 목적했던 것은 알제리 대통령과의 공식 면담이었다. 그러나 알제리에 도착한 이후까지도 면담 여부는 불확실했다. 알제 시장과 공식적 만남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지만, 시장은 초조해했다. 알제 시청에서 마련한 여러 프로그램에도 겨우 눈길만 던졌다. 공관의 도움으로 알제리 내무부 장관과 만났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면담을 혹시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장관은 큰 키에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는 것 같은 근엄한 얼굴이었다. 진지하고 신중하게 응했다. 그러나 확답을 하지 않았다. 노력해 보겠다는 말조차도 없었다. 방문단 전체가 낙심했다.
다음 날 새벽 6시로 기억한다. 갑자기 준비하고 대기하라는 전갈이 왔다. 경찰 호위에 둘러싸여 어디론가 갔다. 대통령 궁이었다는 것은 한두 시간 후에 알았다. 천장이 아주 높고 긴 소파와 응접세트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대기실로 들어가 한 동안 시간이 흘렀다. 다른 대기실로 옮겨 또 시간이 지나갔다. 또 다른 대기실로 옮겼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 대통령을 만나려면 몇 개의 방을 옮겨가며 대기해야 하는구나! 아침나절이 그렇게 무료하고 망연하게 지나갔다.
아마 12시 가까이 되었던 것 같다. 일어서라고 하더니 또 어디론가 데려갔다. 갑자기 넓은 홀이 나타났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저만치 서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깊숙이 반짝이는 푸른 눈만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푸른 눈? 대통령의 눈동자는 갈색이었다. 그런데 나는 선명하게 푸른 눈으로 기억한다. 기억의 왜곡이란!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면담을 허락한 것은 바로 전 해의 한국 공식 방문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 대통령은 유창한 프랑스어로 유머를 섞고 연설했으며 시의 한 구절까지 인용했다는 것 외에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간중간 말을 끊고 통역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다. 선 자리에서 받아 적을 여유도 없었다. 늘어선 사람들 한가운데 서서 연설을 끝낸 대통령은 식탁이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눈에도 맛있는 요리가 그득했다는 것, 나는 무언가 작은 음식 조각을 입에 넣었지만 그저 꿀꺽 삼켜야 했다는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알제리 최고의 식탁을 흘깃 보기만 하다니! 두고두고 아쉬웠다.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을 법한 경험이었지만,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 그처럼 기억이 완전히 정신이 블랙 아웃되었던 것은 입학시험을 치른 때 말고는 없었다. 시험 쳤을 때보다 더 심하게 탈진했다. 방문이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따로 듣지 못했다.
해프닝은 알제리의 언어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D시의 방문 준비팀은 공식 통역으로 시에 소속된 영어 통역사를 동반하게 했다. 임무를 맡은 사람은 알제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그 자신조차도 통역이 필요했다. 입국 서류를 작성하는 것을 도와야 했다. 알제리 측에서도 한국과 소통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의 외교 언어는 프랑스어였고, 그것을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양측 모두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다.
알제리의 국가 공식 언어는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다. 아랍어가 모어인 인구가 80%이고 베르베르어 인구가 나머지 20%인데, 베르베르인들 대부분이 아랍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으므로 아랍어로 통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어는 그들의 공식 언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프랑스어가 아직도 폭넓게 쓰인다. 프랑스어로 교육받은 세대가 아직 활동 중이고 경제 문화 학문 분야 등에서 프랑스와 긴밀한 교류하고 있다. 프랑스 내 마그레브 지역 연구소들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마그레브 출신들이다. 휴가철이 되면 지중해 건너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주자들도 프랑스어를 유지하게 하는 한 축이다. 현대 과학 기술이나 학문 이론 도입 등도 주로 프랑스어로 이루어져 대학 이공 계열에서는 교육 언어가 프랑스어다.
1962년 독립하고 세워진 알제리 신생 정부는 프랑스인 정착자들이 모두 떠나 교사도 없고 행정도 마비된 상태에서 버티면서 프랑스어를 없애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집트,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교사들을 대거 초청해 아랍어로 교육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의 아랍어는 알제리에서 사용하는 아랍어와 달랐다. 대 혼란이었다.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지정해 다시 쓰기 시작했다. 교육 인구가 늘어나면서 프랑스어가 오히려 늘어났다. 교육 수준에 따라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능력에 개인 편차가 크다. 특히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한 마디도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우리 일행을 일주일 간 방문 일정을 도와주었던 청년이나 가끔 공항에 데려다주었던 청년과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서 프랑스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23년에는 프랑스어를 제2 외국어의 하나로 격하했다. 프랑스 언론은 놀랍다며 보도했지만 이제는 알제리 사람들이 꼭 배워야 하는 언어가 아니다. 대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영어 인구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가 뚜렷하다.
아랍어 통역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대통령 면담과 같은 공식 석상에서는 원활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를 벗어나면 힘들었을 수도 있다. 알제리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랍어는 이집트 너머 동쪽 아랍 지역에서 사용하는 아랍어와 상당히 다르다. 아랍어 지역 연구자 한 분이 알제리를 방문하고 나서 서울로 돌아와 정말 의사소통이 힘들었다고 알려 주었다.
알제리에서 사용하는 아랍어는 7세기 이슬람과 함께 도입된 후 알제리의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발달해 온 방언으로 ‘다리쟈(Daridja)라고 부른다. 이집트, 시리아 등 동부 아랍어권에서 정립되어 온 현대 표준 아랍어와 어휘, 발음, 구문 등 측면에서 서로 다르다. 알제리는 현재 두 아랍어를 같이 사용한다. 표준 아랍어는 학교 교육에서 가르치고, 아랍어 국가들과의 국제적 소통에서 사용하며,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언어다. 알제대학 법학대 학장은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표정으로만 대화했다. 반면 베르베르어, 프랑스어 등의 영향을 받은 지역 언어 다리쟈는 일상생활의 주 소통 수단이다.
두 아랍어에 대해 두 견해가 대립한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다리쟈를 억제하고 표준 아랍어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는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표준 아랍어보다는 다리쟈를 공식 영역에 더 적극적으로 진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언어생활에서 어떤 주장이 더 높은 호응을 받을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최근 언어학자들의 논문에 의하면 광고 잡지 라디오 등 대중 매체에서 방언 아랍어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알 수 있다.
베르베르어는 아랍어화가 시작되기 이전 마그레브에 살았던 베르베르인들의 언어다. 아랍어에 의해 잠식되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집단 거주지들에 남아 있다. 2003년 알제리 공식 언어로 인정되었고 2016년 헌법 상 국가의 공식어가 되었다. TV와 라디오 방송국들이 개설되어 전파를 타고 있다. 다만 하나의 언어로 제대로 기능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표준화되어야 한다. 집단 주거지들에 따라 여러 방언들로 나뉘어 있고 집단 간 소통이 어느 정도 원활하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지역들끼리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가 물어보면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람부터 약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너무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다. 서로 고립된 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의사소통이 잘 될 것인가? 북부 카빌리 사람들과 2천 킬로가 떨어진 투아레그 부족 사이에 말이 잘 통할 것인가? 바짝 붙어 있는 우리나라 지역 사투리들도 그렇게 다른데!
베르베르어는 문자 차원의 문제도 있다. 옛 문자를 복원해 20세기 후반 파리에 이주한 카빌리 사람들을 중심으로 개발한 베르베르어 문자 ‘티피나그’는 특히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거리나 건물의 안내판 정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적 예술적 생산물이 따라야 하고 교육을 통해 전승되어야 비로소 공식 문자 언어로 실질적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알제리 사람들의 언어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사람에 따라 하나 둘 혹은 4개까지 언어를 구사한다. 극단적인 예는 동부 산악지대에 있는 베르베르 집단주거지 카빌리 사람들이다. 그들은 베르베르어, 표준 아랍어, 방언 아랍어를 말할 뿐 아니라 프랑스 지배 기간 동안 깊이 뿌리내린 프랑스어도 많이 사용한다. 게다가 그 언어들의 문자까지 있지 않은가? 단일한 문자와 단일한 말을 쓰는 우리로서는 거의 불가사의처럼 보인다.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으면 다른 언어로 자연스럽게 스위치 했다가 돌아온다. 우리가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수준보다 훨씬 더 정도가 높다. 아랍어로 말하다가 갑자기 프랑스어로 스위치 해서 한 문장 혹은 여러 문장이 이어지다가 다시 아랍어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랍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말이 들렸다가 안 들리는 청력 불연속이라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그들은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알제리 사람들은 외국어를 배우는 데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일까?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