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미안하다 얘들아
다짜고짜 사과부터 선빵으로 날리고
이제 변명을 시작해 볼게
그 날은 할머니의 생신 전 주 토요일 저녁이었어. 일이 바빠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한다던 여비(너희 아빠)가 갑자기 다음주부터 더 바빠질 것 같다며 할머니 생신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어. 지금 당장 출발하자고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저녁에 갑자기 할머니댁에 가게 되었지. 식사 후 저녁 8시쯤 삼촌이 카페에서 음료를 사다 준다기에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부탁했는데 디카페인이 없어서 콤부차를 사 오시더라고.. 카페인에 약해 디카페인을 주문했는데 카페인 가득한 차를 사온거지.. 그래도 날 위해 사다 준 삼촌에게 감사하는 마음에 예의상 몇 입 마셨어. 결국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바람에 새벽 5시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이러한 엄마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너희는 평소처럼 8시에 기상했어. 그리곤 나를 깨웠지.
"엄마, 일어나!"
"엄마, 나가!"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잡아 올리며 몸을 일으켰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은 집에서 쉴 수 있으니까 너희 낮잠 잘 때 같이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었지. 그런데 여비가 또 변덕을 부렸어. 갑자기 광명동굴을 가자고 하네. 일이 바쁘다더니 그 정돈 아니었나 봐. 너희에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체험활동이 될 것 같아서 준비를 시작했지. 낮잠 자기 전에 빨리 갔다 올 생각이었어. 그런데 이번엔 여비가 쇼핑을 하러 할머니댁 근처 지하상가를 가자고 변덕을 부렸어. 그렇게 우리는 갑작스럽게 또 할머니댁으로 향했지.
할머니 댁에 가는 길에 다행히도 추뚱이는 낮잠을 잤지만 방뚱이는 자지 못했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야. 지나가는 길에 상설매장에 들러 쇼핑을 하는데 그때부터 방뚱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어. 이때라도 집에 돌아가야 했어. 그러나 할머니댁에 코앞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었던 우리는 결국 일정을 강행했지. 이때 할머니께 연락을 드렸어야 했어... 할머니댁 앞에서 연락을 드렸더니 전화를 받지 않으셨거든.. 하나 둘 씩 어긋나기 시작한 거야.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근처 국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어. 3인분을 시켰는데 너희가 먹지를 않더라. 음식값은 또 어찌나 비싼지... 남은 음식이 너무 아까워서 꾸역꾸역 처리하고 쇼핑을 하기 위해 지하상가로 발걸음을 옮겼어.
낮잠도 안 자고 밥도 제대로 안 먹어 컨디션이 최악이었던 방뚱이가 드디어 폭발했어. 계속 안아달라는 거야. 나는 디스크가 있으니까 여비가 대신 안아주려고 해도 아빠는 싫다고 계속 나한테 안아달래. 어쩔 수 없이 안아주었지. 넓고 넓은 지하상가에서 방뚱이를 안고 쇼핑하다가 결국 할머니를 만나지도 못하고 귀가했어.
잠도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방뚱이를 안고 다니느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던 나와는 달리 너희는 오는 길에 차에서 쿨쿨 꿀잠을 잤어. 이때 재웠으면 안됐는데... 체력을 모두 회복한 너희들은 잘 준비를 다 하고 누워서 계속 장난을 쳤어. 너희를 재우며 잠깐 졸았는데 그 사이 머리맡에 걸어 둔 젖은 수건(가습용)을 가지고 노는 바람에 베개와 소매가 축축하게 젖어있더라. 순간 어찌나 화가 나던지... 가까스로 참고 다시 재워보려 했어.
그러고 나서 또 잠깐 졸았더니 어디서 찾았는지 내 핸드폰을 가지고 둘이 놀고 있더라... 핸드폰을 빼앗고 다시 재우는데 이번엔 아예 일어나서 둘이 옹알이로 대화를 하며 자지 않는 거야.. 결국 나는 폭발하고 말았어.
"야! 누워!! 안 누워?! 엄마 나간다?! 어?! 빨리 누워! 조용히 안 해?!"
아차 싶었어. 너희가 피곤하지 않은 것도 내가 피곤한 것도 다 내 잘못인데, 너희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화를 내야 할 대상이 잘못되었던 거지. 엄마의 큰 소리에 둘 다 누워서 억지로 잠을 청하긴 했지만 두고두고 화를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어.
감정조절 훈련이 조금 더 필요하겠다...
변명이 길었지..?
다시한번 사과할게
미안하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