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도 Aug 12. 2023

2023년 6월 발리 여행-3

날숨에서 망고냄새가 날 때까지.

여행지에서 내가 가장 먼저 가는 곳, 그리고 마지막에 한 번 더 가는 곳은 그곳의 현지 마트이다. 첫 번째 방문에서는 이곳의 음식과 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그리고 사고 싶은 것들을 대강 스캔한 후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이 다 들어갈지, 가방 안의 공간을 계산해 본다. 마지막 방문에서는 그 간 먹고 배운 것들을 토대로 기념품을 사는데, 주로 그 나라의 향신료나 양념 등을 산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부른 배를 움켜쥐고 가장 가까운 마트에 걸어가 보기로 했다.

 KFC 대신 JFC가 대세인 이곳. 푸근한 KFC 할아버지 대신 샤프한 인도네시아 아저씨의 얼굴.

모두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거리, 인도도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은 길을 굽이 굽이 지나, 관광객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마트에 도착했다. 현지인들이 우리를 보는 신기한 눈초리가 재미있다.


동남아 여행의 꽃은 단연 열대과일 과다섭취 아닐까? 날숨에서 망고냄새가 날 때까지 망고를 먹고 가리라 다짐하며, 가장 크고 실한 망고를 골라 저울에 달아보니 단 돈 900원! 이젠 한국도 망고 값이 많이 내렸지만, 동남아 현지에서 먹는 망고의 맛은 확실히 다르다. 망고 특유의 진하고 달큼한 향이 훨씬 강하달까? 드셔보신 분들은 모두 공감하실 거다.


과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천국이다. 우리가 망고스틴이라 부르는 과일은 여기에선 망기스라 불린다.


욕심을 억누르고, 망고 딱 한 놈만 골라서 숙소로 가는 길. 아, 이게 행복이지 싶었다. 이국적이기에 충분한 낯선 동네, 맛있는 음식과 과일 그리고 선선한 날씨. 가끔은 이렇게 새로운 곳에 와서 감각을 깨워주는 게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규칙적인 일상에서 오는 안도감도 좋지만, 다른 지역을 여행하며 맡는 냄새와 약간의 긴장감은 '아직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게 많구나.'라는 좋은 자극이 된다.


돌아오는 길, 곳곳에 조화같이 완벽한 꽃이 떨어져 있다. 숙소 안에서 이 꽃을 보았을 땐, 장식용으로 일부러 뿌려놓으신 걸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선 그저 흔한 꽃인가 보다. 이방인의 눈에는 감동이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엔 아무리 봐도 조화 같아서, 몇 번이고 만져봤다. 이게 생화라니! 자연은 위대하고 아름다워!


뉘엿뉘엿 저무는 때의 숙소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나중에 집을 사게 되면 반드시 주방을 이렇게 꾸며야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어두었는지 모른다. 천장의 조명, 라탄 지붕과 둥근 식탁이 주는 따스함이 좋았다. 이 공간이 너무 좋아서, 둘째 날 이후로는 조식을 이곳에 차려달라 부탁드렸다.


배가 부르고 마음이 편안하니, 잊었던 여독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주변에 가보고 싶은 레스토랑들이 너무 많아 조금 참았다가 늦은 저녁이라도 먹으러 나갈까 싶었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오늘은 이쯤에서 동네 탐방을 마치기로 했다.


나의 여행 초보때를 생각해 본다면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다. 그땐 그저 본전! 이곳의 모든 것을 보리라! 는 다짐 하나로, 내 피곤함은 뒤로 한 채 갈 수 있는 곳은 안간힘을 써서 다 가봐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그 여행지는 그저 피곤했던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지금은 다르다. 쉬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였다. 아무리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을지언정, 난 지금 서울의 집이 아닌 발리에서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3년 8월 홍콩 여행-에필로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