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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Aug 23. 2023

아마존의 글쓰기 문화

이제 제발 그만...

아마존은 글쓰기 문화로 유명하다. 아니, 악명 높다. 처음 들으시는 분들은 '글쓰기? 그냥 대충 쓰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단지 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기에 겪는 어려움이라 생각할 수 있다.


아마존의 악명 높은 글쓰기의 유래는 창업자 제프 베조스 (Jeff Bezos)가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금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좋은 4페이지의 글은 20장짜리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보다 훨씬 강력하고, 파워포인트는 종종 주제를 얼버무려 넘어가는 경우가 있으며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좋은 글을 쓰는 건 어렵다. Narrative, One-pager, 6-pager 등으로도 불리는 이 문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건,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를 제시하건 누구나 작성해야 한다.


나의 경우엔 내러티브 Narrative는 프로젝트뿐 아니라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때, 특히 다른 이해관계자(stakeholders)로부터의 지원이나 동의가 필요할 때 많이 작성한다. 이 문서를 작성하고 공유함으로써, 이 프로젝트의 배경과 목표, 목표 달성 방법 혹은 현재 달성률,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는 데에 겪고 있는 '도전('어려움'이라는 단어보다 'challenge'라고 표현한다.)'를 설명하고 데이터를 제공한다. 내가 필요한 지원이 재정적이건 인적자원이건 그를 자세히 서술하고, 그 노력을 투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 등을 숫자로 명확하게 보여준다.

 

간략하고 심플하지만 모든 주요 정보가 들어가야 하고, 어느 누가 읽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들었던 아마존 글쓰기 강의에선, 이 내러티브가 잘 쓰인 내러티브임을 확인하고 싶다면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읽어드리라고 하였다. 어머니께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이 잘 쓴 글이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문서가 완성되면 이해관계자들과 1시간 미팅을 잡는다. 대략 1~2분 정도 해당 프로젝트의 아주 크고 넓은 그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15~20분 정도 조용히 문서를 읽는 시간을 갖는다. 남은 시간엔 아주 맹렬히 그 문서에 대해 토론하고, 질문하고, 제안하고 또 칭찬한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큰 결정들이 내려지고, 보완할 부분은 보완하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는다.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된 글쓰기 조언은 글을 쓴 후 과감하게 반으로 줄이고, 그것을 또 반으로 줄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불필요한 미사여구나 주관적인 생각 등이 말끔하게 정리될 뿐 아니라, 어떤 정보가 진짜 중요한 정보인지 나 스스로가 알게 된다. 타인을 위한 글쓰기로 시작해서 결국 내가 배우는 것이다.  


조직이 크다 보니, 문서화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된다. 예를 들어 5인 기업에게 안전 교육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하루면 끝날 일이고, 혹 각각에게 교육을 해야 한다 치더라도 담당자 입장에선 5번만 하면 된다.

같은 상황을 5만 기업에 대입해 보자. (2022년 4분기 전 세계 아마존 정규직/비정규직 직원은 154만 명이었다.) 사람이 새로 들어오건, 재교육이 필요한 상황이건 모든 시스템을 되도록 문서화하고 자동화해야 할 것이다.


아마존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하고자 이 글을 시작했는데, 사실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이곳의 문화는 너무나 특이하다(peculiar라는 단어를 쓴다.).


글쓰기가 내 하루 일과의 대부분 시간을 차지할 뿐 아니라 말 그대로 머리에 쥐가 나는 때가 많지만, 잘 쓰인 내러티브를 볼 때의 그 벅찬 감정으로 이 글쓰기 고행을 견뎌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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