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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Sep 02. 2023

앞을 보고 다닙시다.

스몸비를 아시나요?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넋 빠진 시체 걸음걸이에 빗대어 일컫는 말.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를 합성하여 ‘스몸비(smombie)’라고도 한다. 스마트폰 좀비(또는 스몸비)는 2015년 독일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매인 세태를 풍자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IT용어사전


스마트폰 중독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다. 끊임없이 메일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고, 유튜브 쇼츠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쉴 새 없이 새로운 뉴스거리를 찾는다.


2주 전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한참 인스타그램에 빠져있다가 '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이게 나한테 왜 중요하지?'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누가 오마카세를 먹든, 호캉스를 가든 명품백을 선물 받든 그게 배가 아프거나 질투가 나서 밤에 잠을 설치는 성격은 아니다. 부러움에 좋아요를 누르고 다음엔 나도 가야지라고 다짐하긴 한다. 다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콘텐츠와 먹을거리들에 피로함을 느꼈다. 내가 다른 곳에 써야 할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까짓 거 인스타 끊어보지 뭐?라는 생각에 아이폰 메인 화면에 자리 잡고 있던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어플을 완전히 삭제한 것도 아니고, 계정을 탈퇴한 것도 아닌 단지 내 눈에 아이콘이 보이지 않게 숨긴 정도이지만 왠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현재 인스타그램을 끊은 지 2주 차, 내가 느낀 장단점은 아래와 같다.


단점:

1. 가끔 심심할 때, 시간을 가볍게 때우고 싶을 때 볼 게 마땅치 않다. 내가 유튜브보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선호하는 이유는 비디오(소리)보다 텍스트가 좋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정보만 빠르게 골라보고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게 좋다.

2. 직접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3. 가장 큰 단점: 음식점이나 카페 등 대부분의 장소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영업시간이나 메뉴 등을 공지한다. 그러한 정보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인스타그램을 켤 수밖에 없었다.


장점:

1. 삶이 충만해졌다. 빈 시간은 책 읽기로 채웠다. 덕분에 요즘은 내용이 무거운 자기 계발서나 재테크 관련 서적보단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좋아졌다. 읽을 수 있는 '쇼츠'랄까?

2. 먹고 싶은 게 적어졌다. 인스타그램에 쏟아지는 화려한 음식 사진들, 끊임없는 먹방을 보며 나도 모르게 먹고 싶지 않은 것도 먹고 싶어 졌던 것 같다.

3. 사소한 자신감이 생겼다. 조금 뜬금없는 예를 들어보자면 마치 담배와 같다. 나는 담배를 매우 싫어하는데, 물론 그 악취도 이유이지만 담배라는 도구에 매번 의지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담배를 피운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크다. 매번 담배를 사는 번거로움이 있고, 흡연구역을 찾아야 하고, 좋으나 싫으나 눈치를 봐야 하고,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현재 흡연자도 아니고 과거에 흡연자였던 적도 없지만, 그러한 이유로 담배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봤던 적이 없다. 인스타그램에도 비슷한 기전이 작용한 것 같다. 크고 작음을 떠나 내가 불필요하게 의지했던 것을 끊어냄으로써, 어떠한 것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고작 인스타그램 하나 끊은 것치곤, 꽤 큰 성취이다.



유독 한국에 앞을 안 보고 핸드폰만 보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핸드폰만 보고 다닌다. 한 번은 하도 궁금해서 다들 뭐 하나 들여다보니 십중 팔고는 인스타그램 아니면 유튜브이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친구에게도 대체 한국에서 유독 길에서 핸드폰을 보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친구는 아마 한국이 길도 잘 되어 있고 안전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기뻐해야 하는 걸까?


더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을 때만큼은 어깨를 넓게 펴고, 고개를 들어 세상을 더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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