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관 Jun 04. 2024

무한반복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응원하고 있다. 이건 꿈꾸는 인물, 재물 같은 것들이 현재의 환난을 극복할 힘을 준다는 사탕발림이다. 우린 제 생각을 믿으면서 행동은 지켜내지 않는다. 결심했다 해서 뿌듯하고 잘 될 착각에 빠지면서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정신과잉으로 행동이 결여된 햄릿 꼴이다. 나를 분석해보니 바보 같다. 그러나 한 번 실행한 것은 루틴으로 삼아 ‘바꾸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졌다. 일상의 습관 같은 것들도 시작하면 ‘바꾸지 않는다’. (바꾸지 않는다는 장점이 고집스러움, 융통성 없음으로 변질될 것을 경계한다). 문제는 도움 되지 않을 것들도 ‘바꾸지 않는다’는 거다.    

 

교회마당을 지나치면서 벚꽃 수선화를 감상했고 겨울장미까지 신기해했더랬다. 작년엔 없었는데 넝쿨장미 아래로 금계국이 만발했다. 인근 고교 여고생들처럼 노오란 깔깔거림이 반짝거린다. 그 위로 늘어선 넝쿨장미는 교회 피아노 소리가 들려서인지 오후의 뮤지컬에 취한 여인들 얼굴이다. 나갈 때는 눈부셨는데 돌아올 무렵이면 햇살도 부드러워져서 꽃의 윤곽이 선명해졌다. 우리가 물질로 인식하지만 색은 반사된 빛이다. 빛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조건에 따라 사물의 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품평은 더욱 안 될 일이다. 좋은 사람이란 것도 나와 잘 맞는 상대일 뿐이다.


사진 찍어볼까 망설이다가 결국 마당 안쪽까지 들어갔다. 망설였던 건 교회 마당이라서가 아니라 타인(무언가)을 구경하다가 내 방향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얼뜨기 진지함 때문이었다. 실컷 즐기고도 제 갈길 유지하는 게 고수일 테다. 일전에 자칭 걱정인형이라 했었는데 청승맞은 느낌이라 곰곰인형으로 바꿨다. 햄릿인형으로 하고픈데 비웃음 살 것 같다. 교회 마당이 나온 김에 카프카는 "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개별 인간이 지속적으로 선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일까?"(팔절판 노트) 라고 했는데 이걸 나는 "미래가 있는 한 인간은 착각을 버릴 수 없다" 하련다. 씁쓸하지만 내게 미래는 착각이다. 실행하지 않는 한, 살아있는 동안 무한반복 하는 착각이었다. 돈이 있는 한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논리도 성립된다. 이건 비교지옥으로 해석해도 되겠다.     


이런 중언부언은 그 사진의 초점강도를 높이고 배경을 흐리게 만들고 보정하다가 시무룩해진 탓이다. 어차피 금계국, 장미는 그대로인데 그걸 벗어나보려 궁리하는 내가 답답했던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고치지 못하는 것들은 있다. 누군가가 금계국을 심어놓았듯 내 꿈을 심어놓기로 했다. 그것이 잡초건 꽃이건 간에 돋아났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한다. 실행 했으니 됐다. 곰곰인형의 하루가 닫히고 있다. 누구라도 심장엔 바닷물이 잉크라 해도 모자랄 만큼의 이야기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길들여지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