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완두 동시
1. 작품명 : 줄다리기
세로로 하는 줄다리기 본 적 있어?
기다란 줄 붙잡고
끙차끙차 영차영차
꿈틀꿈틀 끌려가다
바들바들 당겨오다
대롱대롱 송충이는,
긴 줄 하나 붙잡고
하늘과 줄다리기 중이야
하늘을 당겨오는 중이래
온몸으로
재 하늘을 세우는 중이지
2. 작품명 : 소화기
얼굴은 뻘겋고
속은 부글부글
불만 가득 한 저 애,
구석에 서 있는 쟤 말이야
불만 보면 달려가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들어
집채만 한 불도 쟤 앞에선 전부 재로 변할걸?
그러니 쟤 앞에선 불만은 절대 사절이야!
3. 작품명 : 고장 난 참새
1학년 참새들이
쉴 새 없이
까불거린다
얘들아, 가만 좀 있어
얌전한 건 참새 아니고-
무거운 건 참새 아니고-
가만한 건 참새 아니지-
참새는 까불이 장난이야
애들아, 장난 좀 고만해
고장 난 라디오처럼 재재잭거리고
고장 난 선풍기처럼 달달달거리고
새는 풍선처럼 풍풍풍 날아오르지
참새는 고장 난 장난이지
장난 없는 새것은 없다고
고 장난스러운 얼굴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쉴 새 없이
까불거리는
얘들아-
참!
새
야
4. 작품명 : 소리쟁이
철들지 말아요, 우리
녹슬지 말아요, 우리
소리쟁이가
바닷가 버려진 폐선처럼 녹슨
소리쟁이가
일찍 철들어 녹슬어 버린 소리쟁이가
철들지 말아요, 우리
녹슬지 말아요, 우리
차랑 차랑 차라랑
지나가는 바람에게
녹슨 심장으로 자꾸 노래를 한다
5. 작품명 : 육교 위에서
아-우 으-으 우-아
육교가 소란하다
알지 못할 소리를 내지르며
뒤틀리는 몸과
바둥거리는 허리에 묶은 끈을
바투 잡은 손이
육교 위에서 출렁거린다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병을 가진 아들과
굳어가는 아들의 시간을 어떻게든
끌고 가려는 늙은 아버지의
하루에도 몇 번씩
아버지와 아들이 건너가는
육교의 길
육교 위 승강이가 오늘도 팽팽하다
6. 작품명 : 미확인물체
납작한 비행물체가 하늘을 뒤덮었다.
미확인물질을 가득 싣고 길목마다 쫙 깔린
외계 행성에서 온 UFO 부대
잠자리 겹눈
같은,
우주선에 살짝
입구가 열리며
바깥을 살핀다.
지구를 점령하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산수유 우주선 속 외계 병사들
가지마다 착륙하는 노란 우주선 아래로
은하를 건너온 빨간 우주로켓 추진체가 나뒹굴고
병사들이 와!! 하고 우주선을 뛰쳐나오는
순간,
우주 행성 미확인물질이 사방으로 퍼진다
지구인들은 그걸 봄이라 부른다
7. 작품명 : 지렁이 짜장면
급하게 달리던
초보 소나기 배달원이
떨구고 간
굵은 짜장면 한 마리
웬 짜장이냐?
똥파리 식구들
몇 날 며칠 배 두드리며
잔치 중인데
빈 그릇 찾으러 온
베테랑 소나기 배달원
말라붙은
지렁이 짜장면 한 가닥까지
사사삭 챙겨서 간다
8. 작품명 : 파도라면
파도를 위해서라면
주의보 따위는 상관없지
출렁이는 바다로 뛰어들지
넘실대는 너울에 올라타지
폭풍 속으로
집채만 한
파도라면
부서지는 하얀 포말은
서퍼라면 빠져드는
짜릿한 맛 거품 스프
겁 없는 도전자들이 들끓는 파도라면
용기가 태평양만 하겠다
천만번 달려들고 부서지고 넘어지고 올라서서 처박히는
도전이라면,
또다시 헤쳐가고 일어서고 올라타 뒤집히고 내려꽂히는
심장이라면,
서핑이라면
이라면
맛보고 싶다
9. 작품명 : 똑바로 치자
향이 넘치는 치자
흥이 가득한 치자
제자리에 앉히자
자꾸만 돌아다
보며
키득거리는 치자
치자, 똑바로 좀 앉아
여전히
사방팔방
돌아다보는
치자 씨
화분에 옮겨 심을 때
치자 향까지 통째로
옮겨심기는 쉽지만
치자를 제자리에 앉히긴 힘들어
그치만 똑바로 앉았다 치자
꽃은 모두가 앞이니까
10. 작품명 : 화단
튤립은 부러져 누워있었다
할 말이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서둘러 머릴 내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심성 없이 마구 달린 운동화 때문이라고 했다
제 역할을 못 한 울타리 때문이라고도 했고
개미도 무당벌레도 지렁이도 할 말이 많았다
넘어진 튤립 옆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댔다
얘기 꽃이 피었다
화단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