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좋은 남자 같은 차
스웨덴에서 온 이 신사들은 꾸밈에 과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제일 상위에 위치한 이 세단은 높은 경쟁력을 지녔지만 들뜨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타입이다. 여느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사고뭉치 주인공의 보좌적 역할을 하는 캐릭터인데 사람들은 그런 이들에서 신뢰와 안정이라는 이미지를 가진다.
전장이 5.1미터에 가깝기 때문에 흔히 타사의 정통 플래그 쉽과 경쟁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차의 전장과 휠 베이스를 제외한 다른 구성들은 E세그먼트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S90의 경쟁력은 극대화된다. 가격을 비롯한 전체적인 포맷은 E클래스나 5시리즈와 경쟁함이 마땅하나 어째서인지 21년도부터 전장과 휠 베이스 그리고 편의장비 등은 소위 플래그쉽스러워졌다. 독일 3사를 비롯한 정통 플래그 쉽 대접을 받는 차들에 면밀히 비교한다면 그 상세한 구성도 조금 모자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격이 최소 4천만 원 이상은 더 비싼 그들에 비교했을 때이다. 같은 클래스들은 기능 혹은 편의적으로 S90에 따라올 수 없다.
볼보는 내 생각에 세그먼트 정렬에 있어서 독자적인 룰을 가지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흔히 규정하는 세그먼트보다는 자신들이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격을 올리는 방향을 자제하고 이 차를 구매하는 이들의 구체적 워너비에 맞춘 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차를 구매할 때 포커스가 플렉스나 개인적인 만족감 또는 주행성 같은 것이 아닌 합리성이라는 것에 달려있다면 구매 전 선택적 추론 후 볼보의 차들은 흔히 순위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 전략은 그 합리성이라는 것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게 된다. 필요한 만큼이라는 것은 그 이상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 그것이 주는 의미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기 위해서는 때로 줄 수 있는 약간의 아쉬움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볼보의 시리즈들은 마치 교과서처럼 제품적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대가 바뀌며 변하는 디자인은 꽤 진보적이지만 같은 세대의 제품들은 너무 보수적이다 싶을 만큼 같은 룩을 유지한다.
또한 구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통일된 2리터 가솔린 엔진을 토대로 터보와 슈퍼차저를 조합해 출력을 통제하고 있는데 시리즈 내에 덩치가 가장 큰 XC90 같은 차량에도 기본적으로 2리터 가솔린 엔진을 토대로 하는 것이다. 페이퍼 출력은 400마력 이상을 넘나드는 출력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터보와 슈퍼차저의 최대 구동 시를 근거로 하기에 운전 중 극한을 비롯한 모든 상황에서 3리터 이상의 엔진이 주는 자연스러움에 비할 수는 없다. 하나 이 역시 필수적인 가감속 시와 일상적 주행의 범주 내에서는 출력적 이로움을 선사해 주기에 결국 합리적 성과로 귀결 나게 되는 것이다.
S90에는 이러한 합리적, 가성비적 매력이 수없이 많다. 특히 시선을 차량내부로 돌리면 그것은 더 극대화된다. 실내의 재질은 시리즈의 통일적 생산성을 바탕으로 그 질을 세그먼트 내에서 최상위로 끌어올린다. 가죽은 최고급 나파가죽이며 그 쓰임이 광범위하다. 우드는 리얼우드로 치장된다. 오레포스 기어노브는 전자식 기어노브의 기능적 아쉬움을 크리스털의 심미적 아름다움으로 덮어버린다. 그리고 누구나 칭찬을 마다하지 않는 바우어 앤 윌킨스의 오디오 시스템은 시각적으로나 그 성능적으로나 한치의 모자람도 없다. 이러한 사운드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유리는 앞뒤 모든 부분이 이중접합유리로 되어있다. 또한 상위등급인 T8에서는 뒷좌석에 에어서스펜션까지 제공되어 편안함을 더한다.
길어진 전장과 휠베이스는 차량의 뒷좌석에 앉았을 때 감동적인 느낌마저 선사한다. 다리를 꼬아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레그룸과 도어 및 후방유리의 전동식 선쉐이드가 제공되며 조그 다이얼을 이용해 조수석을 컨트롤할 수 있다. 또한 열선과 통풍을 기본적으로 제공한다. 22년 식부터 바뀐 터치식 조명버튼들은 감성적 만족감을 더한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독일산들에 비해 그 두께감부터가 다른 암레스트는 그 인색하지 않은 성의에 감탄하게 된다.
아울러 넘치는 안전사양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렇게 합리성의 마법에 빠져있다 잠깐 정신을 차리고 본다면 차량의 부분적 맥락에서는 벤츠의 중후함과 정숙함, BMW의 주행적 스포티함 그리고 아우디의 기계적 충실함에 비해 분명 모자람이 있다. 전반적 NVH는 벤츠의 정숙함에 못 따라가며 주행성은 신사답게 운전하는 이들에게 알맞다는 주석을 달지 않는다면 너무도 무미건조한 수준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차량이 가지는 정량적 메커니즘은 아우디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볼보는 동 세그먼트를 의식하거나 비교하기보다는 기본과 그 이상이라는 자신들만의 룰로 무장했다. 따라서 결국은 다른 브랜드들의 차들과 기본 경쟁선에 설 수 있으며 합리적 포커스가 일치한 구매고객들에게 더 확실한 매력적 구매요소들을 어필하게 되는 것이다.
차는 급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그먼트 내에서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상위등급에게는 못 미친다는 소리다. 하나 이러한 룰을 S90은 무시하고 있다. S90은 분명 E클래스 등과 경쟁해야 하나 그들에 대비해 분명 여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 보이게 만든다. 또한 실제로 그것들은 매력적이다. 이것은 볼보의 전략적인 우수성이라고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S90에 끌렸고 그렇기에 시승을 하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시승 후 아쉬움의 요소가 있다한들 구매리스트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게 만든다.
그래, 아무렴 이 가격이면…